[묵상글]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전봉석 2024. 1. 21. 05:3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9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2-14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할 때 주님은 하나의 길을 여신다. 우리로 바른 문을 열고 들어가게 하실 때 다른 문을 닫으신다. 더러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데, 나는 거기에서 자유함을 느꼈다. 사는 동안 여러 여지가 있다는 것이 복인 줄 알았는데 그것으로 옳은 길을 미루기 일쑤였다. 이는 본성이어서 알면서도 그러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선택의 여지를 두고자 하여 이 사람 저 사람 두루 알고 지내기를 수고하였고, 어떤 일에 있어서는 그것으로 성공하고 출세한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늘 길은 하나였고, 그때마다 옳은 길을 알면서도 돌아왔던 것을 인정한다.

 

목사고시 면접 때 두 번씩이나 떨어지고 다시 그 앞에 앉았을 때 누가 물었다. 그때 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을 당당히 하였다. 그때 저이가 물은 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으면 그리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비로소 한 길 뿐이어서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라고 말하였던 것 같다. 나의 길이 되신 주, 이 길로 들어서게 하시기까지 그 온갖 곁길을 다 막으셨다는 것을 안다. 종종 믿음의 사람들과 대화할 때 저들의 공통된 간증도 그러하였다. 다른 길, 하는 족족 그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그때는 그렇게 이해할 수가 없어 답답하고 원망하기도 하였는데….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이와 같이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하시는 오늘의 말씀에서 새삼 나의 이 길이 비로소 바른 길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나는 이제 이러한 사실 앞에서 눈물짓는다. 이게 와 닿지 않아 친구는 답답해하나 나는 저가 바른 길을 가고 있음을 곁에서 응원한다. 하여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가짜가 많고 거짓이 늘어간다는 것은 참이 진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분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겔 44:23).” 이에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8).” 가령 나는 믿는 이가 성공하여 좋은 성과를 낼 때 한편으로는 주 앞에서 조마조마하다. 부디 저의 성공이 후에 아니 한만 못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기를. 대체로 그리 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인정과 성공이 우리 영혼을 해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안일한 영혼은 삭은 지팡이 같다.

 

이에 주가 나의 중보자가 되시나니, 오늘 예수님은 이를 중심으로 설교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그러므로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1-2, 3).” 주가 나의 이름을 부르실 때, 내가 다른 길에서 배회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7).” 이에 달라진 점을 시인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2-14).

 

나는 무엇보다 나의 죄과 곧 죄책을 멀리 옮기셨다는 데서 자유함을 느낀다. 먼저는 과거의 숱한 죄책으로부터 해방시키셨고, 오늘의 죄과로부터도 얽매이지 않게 하시며, 장래의 죄책까지도 앞서 도말하셨다. 하여 저는 단언하건대,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주를 믿고 살면서 죄를 짓지 않게 하심은 물론 설령 죄를 지었다 해도 훗날 주 앞에 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대언자시다. 이로써 하나님은 나의 그 어떤 죄에 대하여도 그 값을 묻지 않으신다. 이미 다 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죄를 멀리할 수 있는 마음도 주셨는데, 더는 예전에 사랑하던 것을 좇기 않게 하신다. 이에 오늘 주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이 놀라운 사실 그 진리 앞에서, 우리는 병들었어도 하는 일이 실패를 거듭하여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것은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로다.’ 하는 확신이 나를 붙들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누구 앞에서, 나는 이 말씀으로 더는 주저할 게 없다고 하니까 저는 의아하여서 되물었다. ‘내 것이 없이 주의 것이니, 어찌 그러한가?’ 하며 덧붙어서 자유의지가 어떻고 하는 저의 지식을 말하는데서 나는 그 답이 있다고 했다. 곧 나는 더 이상 나의 자유의지를 운운하지 않는다. 내가 주의 것이면 주가 나의 모든 책임이시다. 그런 가운데서는 성공도 실패도 내 몫의 책임이 아닌 게 된다. 곧 나는 주의 것으로 주께 모두 맡기었을 때 이 땅에서의 실패라 해도 감사하고, 더는 가망이 없다 해도 다행이었다. 나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 그것이 나를 안도하게 하였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더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달리 또 다른 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 죽으나 사나 이 한 길 뿐이라는 것. 그때 나는 목사고시에서 저들이 그만두었으면 할 때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또 낙방을 준다 해도 다시 하면 되고, 그러느라 헛수고일 것 같은데 그것으로도 나는 됐다고 하면서 오히려 저들 면접관 목사님들께 그러니 떨어뜨려도 괜찮다고 했던가?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나는 오늘 말씀도 그리 듣는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눅 10:22-23).”

 

곧 오늘을 살면서 이제 이와 같은 말씀을 나의 것으로 듣고 알고 믿음으로 가는 길이라면 그것으로 됐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이것으로도 답은 충분하였다. 곧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설마 이런 나를 두고 이상하다 할 자가 누가 있을까?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더는 다른 이유도 필요치 않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다행이다. 하여 누구처럼 다소 여분이 있어 이리 갈 수도 있고 저리 갈 수도 있다는 게 나는 복으로 여겨지지가 않는다. 누구의 성공이 그리하여 다소 불안한 것은 행여 오늘의 저것이 가까운 훗날에 돌이킬 수 없는 다른 길로 이르게 할까 하여서…! 그래서도 나는 교회마다 복을 운운하면서 이 땅에서의 어떤 일과 연관 짓는 것에 불안하다. 누가 어찌저찌하다 주께 벌 받는 것이라고 말할 때, 나는 저의 죄책이 가련하다. 그 또한 주의 복일 것을, 가까운 미래에 곧 알게 하시기를. 하여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139:2-4).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 나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삼으셨다. 그러면 다른 게 뭘 더 필요할까?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 12:10).” 곧 오늘의 징계가 더욱 주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결국 내가 오늘 여기 있다는 것으로 이미 족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은 일하시는데,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0:16).” 이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17).”

 

아들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책임지시는 일일진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7-29).” 아, 이 놀랍고 귀한 진리의 말씀 앞에서 나는 안도한다.

 

어떤 어려움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그것으로 주 앞에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살든지 죽든지, 나는 주의 것이라! 이 놀라운 은혜 하나로 모든 게 다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벧후 1:12-14).” 하여,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95:7).

 

그리하여,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1-2).

 

기압골의 영향으로 허리가 또는 어디 관절이 아프다. 몸을 뒤틀고 바르는 파스를 문질러서 진정시키면서 나는 주께 아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3-5).

 

마음의 여러 근심이나 어려움을 안고서도,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8).

 

나는 이를 확신하는 것은 ‘주의 것’이라는 데서 증거를 삼는다. 그리하여 말할 수 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그리하여서 지금도 누구에게 고백하듯이 반드시 어느 가까운 훗날에 우리 모두 주 앞에 섰을 때 찬송하며 감사할 것이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이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2-14).

 

하여,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5-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