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전봉석 2024. 1. 27. 04:11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시 109:4

 

 

더는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나는 침울하였다. 주님, 하고 부르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뜻을 같이 하여 선을 이루고 주님을 나타내는 데 있어 서로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아이에게 기타를 가르치기로 한 친구에게 그 애와 저 애도 말해보며 같이 해줄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비록 그러저러하나 셋이 같이 기타를 배우며 주를 찬송하고, 스스로의 늪에서 한 발짝씩 걸어 나오는 상상을 하며 잠시 기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자가 들어오길 서로 의논하여 홈스쿨링을 하기로 하고 모 단체에 가입을 하였다고 했다. 순간 힘이 쑥, 빠지는 기분이었다.

 

오늘 말씀 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시는 말씀이 저를 향하여 들려지기를. 결국 그리 결정하였으면 그리하여 주 안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오늘 예수님의 고별 설교를 들으며 자꾸 울렁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세상의 여러 어려움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곧 이혼할 것처럼 더는 희망이 없는 사이에서 의논하여 아이 교육을 그리하기로 하였다니 나로서는 뭐라 더할 게 없었다. 이는 마치 연애하는 사람 같아서 혼자 마음을 졸이다 서러워하는 것이다. 나름은 죽어라 하고 어찌 설득하려 했으나…. 그러니 그 길을 누가 알 수 있겠나? 부디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그러하기를. 하여 어느 훗날 우리가 다시 이야기를 나눌 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66:10, 119:71).

 

어찌하든지 찬송과 영광이 올려지기를. 어차피 우리 가는 길은 시련의 길과 같아서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요 16:3).” 다만 나는 아이를 생각한다. 양가감정은 단순하게도 부모의 변덕으로 생겨난다. 이에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면서 양극성성격장애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일 텐데. 이번에도 모 정치인을 공격한 이가 겨우 열네 살 어린아이로 욱, 하는 감정으로 그냥 그리 했다고 하니. 여러 현상과 일련의 상황이 겹치면서 나는 아이를 두고 기도할 뿐이다. 저들 부모야 자신들이 부르심을 받아 그 길을 가고 있다고 하니 더는 내가 가타부타 말할 게 없는 일이지만, 스스로 사회와의 단절이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나는 두려웠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된 짐승의 속성과 하나님의 생령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신앙을 가지고 살면서 부대끼는 게 없다면 그 삶이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최소한 우리의 속성은 죽을 때까지 짐승의 것을 벗어버릴 수 없다. 이에 영적으로 무지한 것도 죄다. 기껏 주께 계명을 받던 날,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 32:3-4).” 우린 늘 하나님을 갈망하나 그러한 바람이 허튼 것을 숭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2).”

 

스스로도 아는 바 우리 안의 속성이 우리로 짐승이 되게 한다. 이러한 우리의 속성을 주님은 아시고,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요 16:4).” 행여 아차, 싶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앞에 인정하고 주께 의뢰하면 좋을 것을.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내 안의 생각이 혹은 아집이 우리 영혼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7-8).”

 

우린 항상 성령을 구하고 성령과 함께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해야 한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성령 곧 주의 생기가 내 안에 계셔 우리가 생령이 되지 않고는 우리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다. 아론도 마침 그리 생각하여서 금고리를 거둬서 송아지를 만들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기다렸으면 좋았을 걸, 믿고 의지하며 참았으면 좋았을 걸,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1-2).”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우리로 기다리며 구하게 하심은,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주가 하실 터인데…. 나는 지금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아이의 일을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하다. 성경은 일러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아, 또 그만큼의 시간은 흘러 아이가 어른이 되고 저들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알까? 나도 그렇고, 뒤늦게 주의 은혜를 알고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탄식하는 마음이어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결국은 죽어야 살 일이다. 내가 나를 죽이지 못할 때, 성령으로 우리의 도우심을 바랄 뿐이다. 하여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 16:9-11).” 오늘 우리가 믿지 못함이 죄였고,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심이 의였으며, 곧이어 세상 권세 잡은 것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그러므로 범사에 주를 인정한다는 것, 행여 오늘의 여러 일이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해도 그것으로 주께 감사함이었으니… 혼자이지 않고 어찌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고 아뢰겠으며, 슬픔이 아니고 어찌 기쁨을 소망하며 주를 바랄 수 있을까?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성령이 알게 하신다. 하여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14-15).” 말씀 앞에서 마음을 진정하며 이 또한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겠으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37:5-6).

 

더는 내가 할 수 없는 지점에서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른다. 성령이 충만할 때 더는 타협하지 않는다. 내가 나로 지지 않는다. 내 안의 흙의 속성, 그 짐승의 숭배를 멈출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그러므로 오늘의 이와 같은 마음에서 나는 더욱 주를 간절히 불러 주의 뜻을 바란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다른 무엇을 더 바랄까?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내 안에 수시로 이는 염려와 근심까지도 포함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 오늘 이 근심으로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리라. 하면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22).” 오늘이 아니다. 이 땅에서가 아니다. 그리하여 더욱 간곡하게 주께 구하기를 바라였던 것인데, 결국은 또 갈 데까지 가 봐야 할 모양이다.

 

거리도 멀고 아이도 소심하여 안 될 걸 알면서도 우리 아이가 기타를 같이 치며 찬양을 했으면 하고, 줌으로나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말은 건네 두었다. 안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 나는 다만 주의 이름으로 구하여 볼 뿐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4).” 이는 곧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26-27).”

 

나는 다만 믿음 뿐, 아버지께서 친히 사랑하실 것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1-32).” 그러므로 오늘 내 안에 두시는 이 마음, 속상해서였을까? 다른 때보다 이번 주는 내내 너무 일찍 눈을 떴고 그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달려 나와 주 앞에 아뢰기를 여러 번이었으나…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나의 슬픔을 아시고 위로하시는 주님께,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109:1, 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

 

‘나의 가는 길을 주가 아시나니’ 비록 이 일이 짝사랑하는 것 같이 홀로 지치고 외로운 것이라 해도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1-12).” 그리하여 오늘의 이 일도 주가 허용하심일 테니, 저들로 주의 살아계심 앞에 그 은혜가 크고 귀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2, 26).

 

고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