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전봉석 2024. 3. 11. 04: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29, 32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 1:6

 

 

오늘의 이 모든 것이 은혜이고 감사이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우리의 생활은 오늘을 위해 예비되었음을 알겠다.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이 모처럼 다들 한 자리에 모였다. 어느덧 나이들이 들어 늙으신 부모 앞에 섰으나 모두가 주의 부르심에 응하였고 그 사명을 잘들 감당하고 있었다. 이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하시는 오늘의 말씀이 충만하였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를 때 그 사이는 점점 벌어지기 마련인데, 주일에 맡기신 사역을 잘 감당하고 멀리 인천에까지 와서 아버지의 판순을 축복하고 감사하였다. 마침 친구가 보내온 성경구절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곳이 오늘의 나의 감격을 대변하는 것 같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씀을 많이 사랑한다. 오늘의 이 모든 것은 이미 창세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신 일이다. 이는 우리로 그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 모든 게 그의 기쁘신 뜻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게 하셨다.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다. 어제도 다들 모였을 때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받았던 말씀으로 오늘 이 길을 가고 있음에 감사하였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신 7:8-10).”

 

나는 우리로 주를 사랑하게 하심이 귀하였다. 내 안에 주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게 하심이 은혜이다. 가끔씩 나는 오늘의 나로 인해 놀란다.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신기한 것은 내가 저를 미워하며 멀리할 때에도 그리하셨다는 것이다. 하여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우린 결코 ‘어쩌다 어른’ 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왕상 8:56).” 어릴 적 치기어린 감정으로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하고 나이가 들면서 주를 멀리하고 살았던 것을…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7-18).”

 

서로의 처지에서 각자 주어진 상황을 감내하면서 주의 길 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다들 이 길을 가지 않겠다고 그토록 도망치고 멀리하다 붙들렸던 것인데, 모두가 말씀 앞에 승복하게 하심이 복이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 17:19).” 이에 우리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이를 이제는 안다.

 

앎으로 모든 것을 걸었다. 마치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몰랐을 땐 몰라도 알고 보니 이 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이 말씀이 가장 귀하다.

 

마침 친구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내온 말씀과 어제 모여 모처럼 온 가족이 주 앞에 감사하고 축복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때가 악하고 시대가 어떻다고 하지만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1).” 하신 말씀과 같이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4-5).” 오늘 이 말씀에 나와 우리 형제들이 속하였음을 감사하였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습 3:13).”

 

우리로 그러할 수 있게 하심으로 오늘 이 길을 간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남들보다 낫다는 게 아니라 우리로 이를 절감하고 오직 주 앞에 엎드릴 수 있게 하심이 귀하였다. 곧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8).

 

개인적으로는 또한 에베소서의 말씀이 나의 놀라운 간증이 되게 하셨다. 모태신앙으로 누가 주와 함께 산다고 살다 뜻하지 않은 나이에 주의 부르심 앞에 섰을 때, 구원의 확신과 두려움이 그 믿음을 희미하게 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게 신비하게도 서로 합하여 당시 나는 목사고시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가? 하고 있을 때였다. 저가 주의 영광에 들어가기 50일 동안 우린 매일 아침 성경을 나눌 수 있었는데 그때 내가 무얼 알고 에베소서 이 본문을 시작으로 말씀을 전할 줄은 몰랐다. 말은 그 듣는 자의 것이나 말하는 자로 듣게 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전하는 동안 나 또한 막연하였던 확신은 단단해져 헐렁하였던 믿음을 단단히 붙들게 되었다. 그때 알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때론 지금의 어떤 상황이 우리로 힘이 들어 좌절하게도 하나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전 3:1, 잠 3:6).” 하심을 우리는 이제 확신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이를 오늘 바울은 설교하고 있다. 그리하여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롬 11:6-7).”

 

이 놀라운 진리는 역설적으로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8).” 그래서 왜들 그처럼 어려운가? 하고 이해가 간다. 나는 왜 그리도 먼 길을 돌아왔는지 후회가 또 슬픔이 밀려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11).”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15).”

 

이와 같이 한 구절의 말씀으로 모든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것이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7-18).” 우리가 자랑할 것은 은혜뿐이라.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0).”

 

말씀을 되새기면 모든 꼬였던 문제들이 어찌 그런가?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두렵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21-22).” 곧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이를 믿음으로 얻고 받아들이기까지 우리 안의 죄 된 속성은 여전하여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 이에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더는 하나님을 멀리하던 옛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천만금을 준다 해도, 천수만수를 누릴 수 있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를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0-32).”

 

이로써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이 놀라운 신비의 세계는 어찌 다 알 수도 감당하기도 어렵다. 아,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3-36).” 하여 다시 또 묵상해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1-2).

 

비록 우리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또한 잘 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날마다 매순간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곁에 간직하고 사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7).” 이는 세상이 점점 더 어려워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할 때에 우리는 더욱 확신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3-4).

 

서로가 확연히 그 가는 길이 다를 때에 비로소 소중히 여김은,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