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전봉석 2024. 5. 5. 03:22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살전 1:9-10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시 56:9-10

 

 

주후 51년경에 쓰인 성경으로 바울서신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것이다. 마게도냐에서 빌립보교회를 세우고 데살로니가로 가서 교회를 세웠다. 이때 유대인들의 심한 박해로 데살로니아교회를 미처 굳게 세우지 못하고 떠나 베뢰아를 거쳐 아덴으로 갔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데살로니가로 가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살전 2:18).” 하여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교회로 보냈다.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살전 3:2-3).” 이후 디모데가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해 바울에게 전한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6).”

 

이러한 정황을 살펴볼 때 어려움 속에서도 주가 세우신 교회는 거침이 없다.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 오히려 데살로니가교회에서 들려오는 기쁜 소식은 소망 가운데 믿음을 굳건히 지킨다는 거였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바른 신앙을 잃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에게 재림 신앙이 필요한 이유는 언제 어느 때가 주가 오실지, 오라하실지 우린 알 수 없음으로 이에 대비하여 성심을 다할 수 있다. 곧 우리 주님도 이르시길,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이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그게 언제인지, 어떠한 형태로인지 우린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재림신앙으로 우린 더욱 성실히 주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6-8).”

 

말씀은 막연하고 세상은 모든 성경을 비웃듯 잘만 굴러가고, 안 믿는 자들이 그야말로 승승장구하여,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그럴 때 재림신앙은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5-6).” 우리로 주 안에 거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더한다. 누군 약한 몸을 이끌고 당장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 같은 교회를 지키면서도 더는 가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곧 우리의 작은 감사는 부단히 우리로 주가 행하시는 길을 가게 한다. 오늘 바울도 이를 알고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 1:2-4).” 이 감사는 택하신 자들의 특권이다. 남다른 표징이다. 그럴 수 없는 중에 그럼에도 주께 감사하는 이의 무던함과 부단함을 나는 잘 안다. 저들은 소위 ‘남들처럼’ 혹은 ‘여느 교회처럼’ 사역을 감당하지 않는다. 주신 상황 속에서 자신의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하였다.

 

의당 욥과 같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우리는 신앙 가운데서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100:4-5).

 

보면 늘 그럴 수 없는 지경인데, 어떻게 저런 상황 속에서 감사가 나올까? 싶은 사람들이 묵묵히 이 길을 가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래서 목회로는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 대리운전을 하고 택배를 하면서도 주신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이 귀하다. 약한 몸을 돌보고 건사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말씀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도 귀하다. 그뿐인가? 들은 바로는 자신들도 이런저런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아는데, 묵묵히 교회에 드리는 헌금을 우선하고 후원을 멈추지 않는 손길을 나는 안다. 저들의 공통점은 묵묵하고 부단하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이상하지? 건강도 형편도 적당하거나 분에 넘치게 풍요한 자들은 안이하다. 엉뚱한 사역을 꿈꾸고 ‘내가복음’을 가지고 ‘자기교회’를 꾸며간다. 그렇듯 여유로운 삶이 저들의 영적인 삶도 건강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감사와 기도는 현실의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기형적인 아이를 낳고 이때껏 마음도 현실도 힘에 겨우나 그것으로 오히려 주를 더욱 바란다. 남들보다 약한 몸이어서 더욱 그 몸을 건사하는 일에서도 사역은 이어진다. 규칙적인 생활과 성실한 몸가짐은 저들의 약함에서 나오는 듯하다. 하여 늘 한결같은 모습에 나는 주춤거리다 정신 차린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재림신앙은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한다. 우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가 예수에 대한 인내로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하게 한다. 우리의 믿음이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지독한 현실이어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도록 결단하고 실천하게 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내 곁의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하고, 신앙에 앞서 가는 이들이 그러하여 나는 때로 저들의 뒤를 따른다. 저들처럼 한 영혼으로 씨름하고, 늘 같은 동선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려 한다.

 

예전의 나로서는 이 사람을 보면 이리로 가야 할 것 같고, 저 사람을 만나면 저리로 가야 할 것 같아서 갈팡질팡 그러다 보면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돌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더러 목자가 보이지 않을 때도 양떼를 뒤를 따라간다.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아 1:8).” 살다보면 어쩔 땐 바로 곁에 모시고 같이 가고 있다가도 어디서 시선을 놓친 것인지,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7:4-5).

 

나로 늘 감사하게 하는 것은 흔들리고 좌절하여 넘어진 듯 포기하고 싶을 때도 묵묵히 나보다 더한 상황 속에서도 이 길을 부단히 걸어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 덕분이다. 다시 힘을 낸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5).” 내 곁에 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두시고 저들을 바라보며 나의 걸음을 같이 하게 하시는 게 복이었다.

 

이처럼 묵상하다 문득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어서 나는 복이 많다. 아주 어릴 때, 철이 없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이상했지? 다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인데 그렇게들 교회에 와서 자고 공부하던 형들이 있었다. 가끔은 저들이 나와 나란히 앉아 자신들의 이런저런 꿈을 들려주기도 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 형들이 모두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신학교 교수가 되어서 나와 여전히 동시대를 살고 있다. 내 기억으론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변변하게 학원을 다니거나 도서관을 가거나 할 수도 없어 학교 끝나고 교회로들 왔다.

 

내가 누구보다 복이 많다는 것을 느낄 때는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들려주시던, ‘하나님이 너를 특별히 더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사는 내내 그 소리가 싫었으면서도 실현되어 신기하였다. 주를 멀리하고 살 때도 내 곁에는 늘 주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로 인하여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3-14).”

 

하여,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18-20).” 늘 가난하고 어려웠던 아버지의 목회 현장에서 어린 나는 퉁명스럽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청년 때에는 원망하기도 하였는데, 돌아보면 그 시절에도 하나님은 내 곁에 주의 사람들을 두셨고, 기어이 오늘의 나로 주의 길을 가게 하셨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2-4).”

 

오늘도 이처럼 주의 말씀 앞에서 새삼 나의 재림신앙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 하심으로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 1:6-8).” 서로가 그렇듯 서로를 보며 새 힘을 얻고 응원하며 주의 길을 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9-10).”

 

우리로 더욱 주를 바라게 하시려고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하여,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56:1, 3).

 

때로는 힘들어 지치고 쓰러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8).

 

그러므로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9-10).

 

이는,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