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전봉석 2024. 5. 7. 04:41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살전 3:7-8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시 58:11

 

 

같이 성경공부하자, 할 때 그러하겠노라 할 때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어려운 시간을 쪼개 수요일 오전 8시, 출근 준비 후 30분을 화상을 통해 우선은 질의응답 식으로 읽고 있는 성경을 중심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모처럼 아이가 와서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그러던 중 성경공부를 권하자 그러겠다고 할 때의 고마움이라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심정이 그러하였을.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하는 말씀 앞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서로 그 신앙에 대해, 교회에 대한 애정으로 기쁨을 얻는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그러니 한 영혼을 생각하고 대하는 일에 있어 누구와는 전화 통화로라마, 누구와는 글로써, 누구와는 이처럼 출근 전 줌으로나마 얼굴을 맞대고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라도 주의 말씀 앞에 서로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와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가를 안다. 점심시간에 전화로 잠시 통화하고 성경을 나누고 일상의 소소한 질문에 말씀으로 대답하는 일이란 저에게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좋은 시간인 것을 안다.

 

아이는 스스로 묵상을 하고 글로 짧게나마 기록하고 있는데, 그렇게 수요일 오전에 시간을 내어 ‘우선은’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라다 보면 주가 어떻게 인도하실지 우린 서로 알지 못한다. 누구에게 권할 때 대부분은 필요성을 알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을 이유로 미루거나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대체로 늘 거절당하다 네, 하고 아이가 자신의 일정을 살피다 수요일 출근 전으로 정하자 나는 어떠하든지 그러자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앞서 이 길을 간 말씀 안에서의 사람들을 본다.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때는 같이 바라고 구하며 주의 뜻을 사모하는 데 있다. 이에 우리는 요동하지 않는다. “…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살전 3:2-3).”

 

곧 우리가 살면서 주를 바람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간절하여진다.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한 이 일은 어려운데, 어느새 아이의 나이도 서른이 되었다. 중1 때 만나 오늘까지 서로를 곁에서 보면서 같이 온 길이었으니 다소 우리의 신앙이 미진하고 더디 자라가는 것 같으나 그럼에도 늘 주 안에서 서로 같이 시작하여 오늘에까지 왔다. 그렇게 같이 시작하였던 여러 명의 아이들을 돌아보며 저들의 안부를 묻다 어디서 서로 갈라선 것인지 알 수 없어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안 믿는 가족과 교제하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기로 하였다.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그러한 계기를 위해 자신이 먼저 말씀으로 바로 세워지기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잃을지 모른다.

 

누구의 경우, 저이는 신학까지 하고 주의 일에 열심이더니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쩌다 공황과 불안에 이어 조현까지 온 것인지… 하물며 이혼을 하고 열여덟 살이 되는 아이까지도 우울에 치여 조연까지 온 것인지… 그럼에도 여전히 ‘이대로가 좋아요.’ 하는 말에 더는 여지가 없는 데서 나는 슬퍼하였다. 누구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운운하며 철학을 따라 갔고, 누구는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애정결핍을 호소하며 사랑을 갈구하며 사람을 따라 갔다. 누구는 자신의 이상과 꿈을, 누구는 안정된 현실과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말세를 비웃으며 갔다.

 

우리는 같이 시작했던 아이들의 면면을 돌아보며 십 수 년이 흐르면서 서로가 얼마나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다 마음을 한데 모은 것이다. 자칫, 우리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는 데서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에이, 설마… 하고 안이할 쯤에 아이의 발길을 인도하신 이가 아이의 마음을 붙드셨음을 안다. 하자, 할 때 그럴 수 없는 저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회사 일로 쫓기면서 또 한참 젊고 왕성할 때에 그럴 시간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못할 거라 여겼는데 선뜻 네, 하고 시간을 서로 조율하다 수요일 오전 출근 전에라도…. 우리가 하려 할 때 다음은 주가 인도하심을 알고 나는 무작정 그러자고 하였다.

 

친구와 점심시간 그저 전화 통화로 무슨… 성경공부가 될 수 있겠나? 하고 여겼는데 서너 달이 되어가면서 저의 변화를 느낀다. 하려 하는 마음은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같이 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라 여겼다. 주의 인도하심을 서로 인정할 때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우린 다만 하려고 할 뿐, 하게 하시는 이도 할 수 있게 이끄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었다. 누구에게 권할 때 이를 받고 안 받고는 내가 임의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권함은 곁을 같이 하는 것으로 나는 늘 그런 각오로 한 영혼을 대할 준비가 돼야 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세계와 그 계획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다. 다만 시작할 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이제 우리의 착한 일이란 무엇이겠나?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주를 바라고 사모하는 데 있어 교회가 다르면 어떻고, 거리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요즘은 정말 마음만 먹으면 전화로든지 줌으로든지 아니면 글로나 카톡으로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시작이 어려울 뿐인데, ‘시작하신 이’가 ‘끝까지’ 이루셔야 할 일이다. 우린 다만…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22).”

 

어느새 서른, 인생으로 꽉 채운다 해도 벌써 삼분의 일을 왔다. 나는 그럼 삼분의 이를 온 셈이고… 그러는 동안 주께서 어찌 함께 하셨고 우리 삶에 그 순간마다 함께 하셨음을 인정할 때 더욱 그 순간을 바라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아이 또한 이 주에 한 번 정신과에 들러 약을 복용하고 있다. 일상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이지만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믿음이 큰 힘이 됐다. 우리의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이를 알 때 우린 서로 서로의 약함을 응원한다.

 

스스로의 상태를 알게 하는 데 있어,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살전 3:4-5).” 오늘 말씀 속에서 바울의 심정이 나의 것으로 느껴지는 게 놀랍고도 감사하였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저런 사는 데 따른 여러 어려움이 있다. 늙거나 젊거나 다를 게 없고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가릴 게 없다. 그런 가운데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1, 6).” 하여 나는 나의 약함으로 누구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어 감사하다. 저들도 나의 약함에서 자신들의 새 힘을 얻는 것도 같다.

 

다만 주의 보호하심이 그만큼 더 크고 귀하여서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5-6).” 이쯤 살아오면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때마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스스로 산다고 하나 그 삶이 너무 황량하다. 사느라 기를 쓰다 그 영혼이 탈탈 털려 너덜거릴 정도로 더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도 ‘이대로 좋아요’ 하는 이에게서 나는 슬픔을 느낀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7-18).”

 

어제는 아이가 다녀가고 같이 그리 성경공부를 하기로 했다는 사실만으로 내 안에 이는 알 수 없는 기쁨으로 흡족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또 가치를 알면서,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6-27).”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아 주가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일,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4-5).”

 

주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서로가 권함이 되어 그 곁을 나란히 하고 갈 수 있는 길은 의지가 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1-4).”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백날 그 탓을 한들 저들은 저들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세상은 본래 그렇듯 악하고 주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저들을 보며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8-11).

 

하는 고백이 날마다 우리 삶이 되어가길.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이에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 이와 같은 확신과 믿음을 안고,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2-13).”

 

그러므로 우리는 안다.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58: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