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전봉석 2024. 6. 16. 03:01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시 98:4

 

 

질서 있는 생활은 영적인 삶의 기틀이다. 이런 날은 이러고, 저런 날은 저러고 하다 어느 날은 뒤섞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된다. 사람 그렇게 올곧지 않다. 어느 경제학자도 말하길 ‘성실한 사회생활은 적당한 채무로부터 오는 부담감이 원동력이 된다’고 하였다. 즉 넉넉하다는 것 혹은 그 적당함이 우리의 생활을 안이하게 한다. 이는 우리 영혼에 있어 영적으로의 긴장감도 필요하다. 예수 언제 오실지, 재림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은 우리 영혼을 게으르지 않게 한다. 이는 단지 경건의 모양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를 눈여겨본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우리 마음에 ‘숨은 사람’을 바울은 ‘속사람’이라 하여,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 두 말씀은 같은 주제를 가진다. 주께서 주목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다. 이를 시편은 수없이 자주 언급하며 기도한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16:10, 23:3, 42:5).

 

이에 따라 예수님도 증거 하시길,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곧 우리가 육을 입고 사는 동안 영혼의 성장을 도모하고 이에 경건한 육신의 삶은 성숙한 영혼의 일로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고후 12:15).”

 

고로 우리가 주를 사랑함은 우리 영혼이 영원히 누릴 영생의 삶을 두고 그 소망을 잃지 않음일 텐데,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6:19, 10:39).”

 

오늘 말씀은 누가 누구에게 순복하고, 누가 누구 위에 있고 하는 상하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서를 위한 것이다. 곧 이 모두는 교회로 세우심을 받고,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4, 26-27).”

 

우리의 온유함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주 앞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순종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벧전 3:2).” 그리하여 이와 같은 말씀은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4).” ‘마음에 숨은 사람’ 곧 우리의 ‘속사람’을 날로 새롭게 하는 일러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7).” 하시는 데서 멈추어 그 이유를 알게 한다.

 

나이가 이쯤 들면서 권태기니, 갱년기니 하는 시기를 겪곤 하는데… 만사가 귀찮고 성가시고 뭘 해도 좋지가 않다. 그걸 또 상대에게 총구를 돌려 ‘너 때문이야!’ 하는 식으로 표적을 삼으면서 실제 그러는 동안 ‘성격 차이’를 운운하며 ‘이혼’이니 ‘졸혼’이니 하는 결과를 내기도 하는 것 같다. 이에 오늘 말씀은 그 시기를 잘 견디고 넘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9).”

 

이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벧전 3:10-11).”

 

생명을 사랑함은 하나님의 것임으로 그러하고, 좋은 날을 원함은 주가 세우신 세계여서 그러하고, 악과 거짓을 떠나 선과 화평을 구하는 것도 그러하여서 주의 눈이 향하시는 곳에 내가 있고, 주의 귀가 기울이시는 소리는 나의 간구여서 그러하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12).”

 

곧 오늘 이 말씀은 실제의 생활 가운데서 내가 주를 바람은 나의 영혼이 잘 됨 같이 우리 육의 생활도 바르고 온전하여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14-16).”

 

실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모습으로 어떠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바로 알게 한다. 이를 위하여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17).” 우리가 그러함은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18-19).”

 

말씀을 따라 그대로 읽을 때,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2:5).” 그리하여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7-8).” 모든 성경이 이렇듯 서로 연결되면서 주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 삶의 목적이 어떠한가를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고 위로 권세 잡은 자들을 인정하는 것은 이를 주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를 인정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우리가 주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데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이에 나는 교회 안에서 개인의 정치적 신념으로 충돌하는 것을 경계한다. 특히 목회자가 설교 중에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이쪽을 두둔하며 저쪽을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심히 우려한다. 이는 우리가 이 땅에 충성하는 자로 세우심을 받은 게 아니라, 저들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 땅의 것은 모형이고 임시적이며 더욱이 권세란 임시적이다. 애굽의 바로를 ‘나의 종’이라 부르셨다고 해서 저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타락한 대제사장이었다 해도 저를 인정하는 것은 저를 세우신 이를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정작 사람을 높이는 것은 그릇되다.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서로 위하고 존중하며 순복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3-24).” 그러므로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 4:10).”

 

이래저래 마음은 저 혼자 흔들리기도 하나 그 속에 숨은 사람, 우리의 속사람, 곧 영혼을 위하여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86:2, 4, 13).

 

오늘의 이 모든 수고와 마음의 애씀이 궁극적으로는 주를 바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일찍 눈을 뜨고 잠시 다시 몸을 뒤채다 잠자리를 박차고 교회로 왔다. 이른 시간 사위는 고요하고, 나는 말씀에 잠기듯 나의 한 날을 돌아본다. 쓸모없고 보잘것없으나 주가 이처럼 이끄심으로 나는 먼저 말씀 앞으로 나를 앉혔다. 이는 내 안의 속사람, 그 마음에 숨은 사람, 주의 영이 나를 이끄심이니,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94:17, 19).

 

이를 오늘 말씀은,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벧전 3:21-22).” 그러므로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98:1).

 

곧 오늘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크고 크니,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03:17, 107:8).

 

하실 때에,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98:4).

 

우리의 일이다. 주어진 사명이다. 이에 따라,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5-6, 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