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전봉석 2024. 6. 17. 04:40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2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시 99:9

 

 

오늘 이 한 날은 우리에게 적합한 에덴이다. ‘에덴’은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 하나님의 정원이란 뜻을 갖는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그 에덴이나 오늘 우리에게 부여하신 에덴이다. 여기는 생명의 원천으로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있다. 이는 표징이며 실제이다. 이를 오늘 베드로의 서신으로 읽는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우리의 죄는 그쳤다.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기를 원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시 36:7-8).

 

오늘의 ‘나의 에덴’에도 네 근원의 네 강줄기가 흐른다. 첫째 강은 비손 강이다. 믿음으로 사는 실제로 진주 같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 13:45-46).” 귀한 줄 알면 알수록 이를 값지게 여겨,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전 3:10).”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11).”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12-13).” 천국에 그 주안점을 두고 ‘금이 있는 하월라’ 곧 나에게 부여하신 온 땅에서 산다.

 

두 번째 강은 기혼이다. 기혼 강은 넘치고 깊다. 그 수심이 깊어 가라앉은 것이 부패한다. ‘구스 온 땅’으로 헛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다. 곧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9-11).”

 

다들 나이 들고 덧없음을 노래하며 허탄하다. 이는 우리가 예수를 찾으나 그마저 헛된 것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6-27).” 그러니 ‘에덴’에서의 특징은 자유의지다. 선택해야 한다. 우리 앞에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3-4).”

 

세 번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다. 빠른 급류와 같이 우리의 세월이 쏜 살 같다. 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3-4).”

 

아차, 하는 순간에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이에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이는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90:9-10).

 

네 번째 강의 이름은 유브라데 강이다. 오늘 날까지 유일하게 남이 있는 지형이다. 잘 흘러 그 주변은 좋고 비옥하여, 서아시아 최대 강으로 많은 문명의 발원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 사람과 어울려 그 문화에 편승하고 타협하여 이 땅에서의 삶은 비옥할 수 있겠으나, 이를 두고 베드로는 서신에 쓰기를,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5-17).”

 

이를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그리하여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저들이 공통적으로 일깨우고 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오늘 한 날에도 선택의 갈래는 주어진다. 새벽에 나를 깨워 주 앞에 앉힐 것이냐, 말씀으로 시작할 것이냐, 저와 말씀으로 교제할 것이냐… 하는 모든 순간이 그러하였다. 오늘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무대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이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16-17).”

 

그에 따른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오늘 말씀도 이를 가리켜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벧전 4:3).” 나의 지난날들을 돌이켜 후회와 회환이 아니라 바른 교훈을 선택한다. 이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 개인적으로 주어진 날들도 그러하고 이 모든 인류의 근원 또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하여 오늘 말씀도 나의 한 날에 무장해야 할 것을 이른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벧전 4:1).”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그러므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나의 주신 한 날, 오늘의 ‘에덴’에서 내가 지켜야 할 울타리를 따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어제 주일,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며 새삼 다시 에덴의 의미를 되새겼고, 이를 오늘 말씀으로 다시 이해하며 부르심에 따른 삶을 생각하였다. 말씀은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우리가 서로를 사랑함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0).” 내가 널 위해 네가 날 위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11).”

 

말씀이 말씀으로 연결되면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1-13).”

 

이와 같은 말씀 앞에 가만히 앉아 나의 한 날, 이 에덴을 산다. 이는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주어진 한 날 동안의 삶으로 족한 것은 나에게 주실 생명의 면류관을 소망함이다.

 

곧,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과연 나의 한 날의 수고에서 나는 이 값진 진주를 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취하고 놓지 않을 것인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6).” 이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19).” 주를 의탁함으로,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99:1-2).

 

이를 앎으로,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3).

 

다른 무엇도 이보다 앞서거나 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