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하현. 2025. 8. 1. 17:27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대하 10:4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시 50:21

 

 

가늠해보면 솔로몬의 치국에서 그가 어떻게 국민들을 노역에 가담하게 하였는지 짐작이 간다. 저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데 있어 ‘지혜’를 구하였고, 이에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지혜뿐 아니라 그에게 모든 부와 명예도 함께 주셨다. 그런 뒤 저는 사치하였고, 호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순금으로 입혔으니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와 금 발판이 있어 보좌와 이어졌고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또 열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양쪽에 섰으니 어떤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대하 9:17-19).”

 

그뿐 아니라,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순금이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왕의 배들이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며 그 배들이 삼 년에 일 차씩 다시스의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옴이더라(20-21).” 그러느라 백성들의 고역이 어떠했을지, 오늘 저가 죽고 백성들은 무엇보다 이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였다.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10:4).”

 

그런데 이에 따른 르호보암의 대처는 가관이다.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원로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이 백성에게 어떻게 대답하도록 권고하겠느냐?” 하고 물었으나 저들의 권고는 듣지 않았고(6), “왕은 원로들이 가르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시고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묻자(9), 통치가 장난도 아니고,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시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하리라 하소서 하더라(10-11).”

 

어찌 이런 결정을 이렇듯 하였는지 모르겠는데, 오늘 성경은 그 이유를 밝히었다.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여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이르신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15).” 곧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심은 우선 이러한 결정이 악하나, 인간의 악함으로도 하나님은 선을 이루시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선 이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 103:19).

 

이 모든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4).” 하는 다니엘서의 증언으로 가늠할 수 있다. 곧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35).”

 

이에 오늘도 이러한 결정이 한 어리석은 왕의 그릇된 판단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이로 인하여 남북이 갈리고 이스라엘이 종당에는 다윗의 혈통으로 유다만이 인정되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아무튼 직접적으로는 백성들의 고통어린 요청을 르호보암이 거부하였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파국으로 치닫는 결정을 르호보암에 의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리 행하게 하신 것일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유추하게 되는 인물은 ‘실로 사람 아히야’다. 저는 솔로몬 때부터 르호보암에 이르기까지 활약했던 에브라임 지파 출신의 선지자이다.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왕상 11:29).” 다시 말해 아히야는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의 제사장 가문의 예언자다. 아히야는 에브라임 지파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여로보암을 충동하였고, 이에 저가 주동이 되어,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가니라(대하 10:16).”

 

하고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이 형성되는데 막후 세력이었다. 여로보암의 반역에는 지파간의 반목과 질시가 작용했다. 이에 따른 명분으로 아히야는 솔로몬의 우상 숭배를 여호와 신앙에 위배된 상황으로 보고 이를 타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왕상 11:33).”

 

그렇게 마침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왕상 11:29).” 하여 아히야는 여로보암을 충동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30-32).”

 

후에 아히야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에게 그의 패역함과 죄악으로 인하여 그에 따른 하나님의 저주를 알리었다. 즉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전하여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14:8-10).”

 

아무튼 이러한 선지자 아히야는 나단 선지자(1:8, 11-14) 이후 솔로몬과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사자(使者)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14:1-13, 대하 9:29).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가장 흥왕했던 솔로몬의 사역에 개괄하다(1-9장), 오늘 본문부터는 이스라엘의 분열과 반목이 일어난다. 솔로몬이 등극하였고(1장), 그의 업적인 성전 건축이 이루어졌으며(2-7장), 그가 행한 통치의 영광이 대해 전개되었다(8:1-9:28).

 

이어지는 오늘 이후 역대기에서는 유다 왕들의 통치만을 기술한다(10:1-36:21). 통일왕국이 분열하는 과정을 그린 오늘의 어처구니없는 발단에 답답함을 느낀다. 드디어 120년간 계속되던(주전 1050-931, 삼상 10:1, 왕상 11:43-12:20)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시대가 끝이 나는 시점이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누어지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는 셈이다. 그것이 어이없게도 장난스러운 또래의 권면으로,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하리라 하소서 하더라(대하 10:9-11).”

 

철딱서니 없다고도 하기 그렇고,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가볍고 하찮았으면 이런 소릴 권면이라고 하고 또한 이를 듣고 얼씨구나 하고 그리 행한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이후 분열 왕국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오직 남쪽에 있던 유다의 역사에만 그 관심을 모아 기술하는 역대기서의 의지도 이해가 간다.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생략하고 오직 유다의 역사만을 중심으로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남유다를 통하여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 가운데, 그리고 왕국 분열이라는 혼란의 와중에서 다윗의 위(位)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추적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 그런 가운데 이와 같은 허물과 죄악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오늘 본문 이후 역대기서는 분열 왕국 초기를 조명하고(10-11), 유다의 선한 왕들과 악한 왕들에 관해 기록한다(12:1-36:16). 이후 바벨론의 유수와 유다의 최후를 진술하고(36:17-21), 포로에서 회복을 이루시는 데 있어 고레스의 활약과 그의 조서를 상술한다(36:22-23).

 

이와 같은 역사의 흐름 가운데 당시 이스라엘의 요구와 그에 대한 르호보암의 대답은 열 지파로 하여금 반기를 들고, 분열하게 하는 빌미가 되었다(16-19). 그렇게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지고 그 원인과 경과를 상세히 언급한다. 한편 열왕기에서는 이스라엘의 분열 조짐이 이미 솔로몬 통치 후기에 완연했음을 밝히고 있다(왕상 11:9-40). 곧 하나님의 언약으로 그 분열시기가 솔로몬 시대 이후로 늦춰진 것이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34-35).”

 

어쨌든 이스라엘이 분열된 이유는 여로보암의 반역으로 인한 것이다. 그 빌미가 된 것은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판단과 우스꽝스런 대처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면 솔로몬의 우상숭배가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망명 생활을 하던 여로보암이 애굽으로부터 돌아온 것으로 저의 야욕은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여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이르신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대하 10:15).” 하는 것으로 앞서 이 모든 일의 전후사정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을 알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르호보암이 솔로몬 생전에 섬겼던 노인들의 가르침을 버리고, 젊은 소년들의 충고를 들었다는 것이 어이가 없다. 흔히 젊은이는 그 판단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저들은 진중하기보다 재미나 즐거움을 추구한다. 하여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하는 말씀으로 충고가 될까?

 

결국은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렘 3:24-25).” 우리의 한없이 가벼운 영혼은 젊은 날 그 청년의 때에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게 복이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 14).”

 

청년의 상징은 강함이다. 우리의 강함은 주를 앙모할 때 나타난다.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사 26:16).” 하여,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 63:1).

 

그러므로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50:1-2).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4-6).

 

그러므로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7, 14-15).

 

고로 오늘 우리의 가장 귀한 사명은 주를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자칫 청년의 때와 같이 경거망동하지 않기를. 판단과 기준을 가벼운 데 두어 주의 뜻을 경홀히 여기지 않기를. 어찌 감히,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1).

 

하여 오늘도 다시금 말씀 가운데서 르호보암과 그의 젊은 친구들의 한없이 가벼움을 경계로 삼아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2-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