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셨더라
대하 12:12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시 52:7-8
아무래도 사람이 속성이 그런가보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살만하고 적당하여 죄가 사사로운 듯 여겨지는 모양이다. 오늘 르호보암의 통치에서 오락가락하는 게 보인다. 앞장에서는 르호보암이 하나님께 대해 순종하다(11:1-4)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가지고 통치하였다(21-23). 그리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유다가 번영하던 사실도 보여주었다.
3년 정도가 그러하여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남쪽으로 탈북하여 오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11:16-17).”
그렇게 순종하여 뭔가 좀 달라졌는가, 했던 르호보암이 오늘 본문에서는 결국(?)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징계를 받아 강력했던 유다를 쇠퇴케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먹고 살만하고 적당할 때가 문제이다. 어렵고 힘들 때는 엎드려 빌고 간절함으로 주를 찾았다가도 문제가 해결되고 일이 좀 풀리면 다들 그렇듯 영락없다. 그래서도 앞장의 주제가 ‘순종과 축복’이었다면 오늘 12장은 ‘불순종과 징계’라 할 수 있겠다.
르호보암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애굽 왕 시삭을 세워 예루살렘을 약탈하게 하셨다(1-12). 이와 같은 징계는 자녀 된 자에 대한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사랑이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그러므로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신 8:5).” 이를 달게 받는 것도 능력이다. 이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 이와 같은 사실 앞에서 애굽의 침탈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진다.
하여 오늘 본문에서의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그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의 일로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한지라(2, 5).” 하시는 말씀을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우선은 오늘 르호보암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와 같은 징계에서 되돌아보게 된다. 이어서 오늘 본문은 르호보암의 통치 연도와 평가가 이루어진다.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예루살렘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그의 이름을 두신 성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여인이더라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13-14).”
이어서 르호보암의 남은 행적과 죽음을 기술하고 있다(15-16). 궁극적으로 르호보암의 쇠퇴 과정을 기술하면서 르호보암의 불신앙(1-5)과 신앙을 회복하는 장면(6-12)이 인상적이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6).” 이와 같은 돌이킴으로도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시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들이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7).”
곧 이러한 상황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유다 왕국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은총을 우리 각자의 하나님으로 삼을 수 있다.
이는,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유다가 하나님의 특별하심을 경험하듯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오늘 말씀은 왕상 14장과 비교하여 애굽의 시삭이 침입하는 데서 르호보암의 죄에 대한 묘사가 열왕기서보다 상세하다는 것을 느낀다. 곧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백성들이 이를 본받았다!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1).” 이는 여호와께 대한 집단적인 범죄다. 그렇게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결국 하나님은 르호보암 왕 제 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게 하셨다(2).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셨다.
“그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의 일로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한지라(5).”
곧 우리의 생의 어떤 징계나 고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이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자 하는 뜻으로, 역대기서에서는 르호보암의 생애를 보다 특별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의 삶이 하나님과 직면하여 지극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임을 알 수 있다.
주전 930년, 솔로몬 왕국의 분열로부터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며 멸망하기까지 약 350년간 유다는 20명의 통치자가 다스렸다. 당시 분열 된 이스라엘의 남유다에서 첫째 왕으로 르호보암은 비록 섣부른 판단과 가벼이 백성들의 소원을 듣고 무시함으로 분열을 초래하기는 하였으나, 초기 3년 동안은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며 주를 경외하였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11:17).”
이에 르호보암과 유다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은 유다를 견고하게 하셨고 그 세력 있는 나라로 기초를 다지게 하셨다. 반면에 르호보암이 방심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떠난 유다 최초의 왕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순간 온 백성과 그 자신이 겸비하여 회개함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곧바로 돌이킬 수 있었다. 곧 우리가 주를 향해 마음에 있어 더러는 그릇 행하였을 때, 자신의 죄를 즉시로 고백하고 겸비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총은 언제든지 다시 회복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주의 뜻에 바른 길을 행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으나 자칫 경솔하여 그릇 행하였다고 해도 이를 즉시로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대언자 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함께 하신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는 막연한 사실이나 기대가 아니라 놀라운 특혜이고 불가항력적인 은혜이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래야 한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어서, 예수님은 이르시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어느 시점, 그 길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르호보암의 생애는 후대 왕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의도적으로 오늘 말씀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한다. 항상 다윗과 솔로몬의 길, 주를 경외하는 자로 살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된다. 그러므로 새삼 드는 마음은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진다는 것.’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이는 르호보암이 하나님으로부터 3년 만에 세력이 견고한 나라로 굳건하여지자, 이에 따른 축복에 교만하여져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던 것으로 알 수 있다.
그 결과 축복의 상징이었던 견고한 요새들과 영토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유다 땅에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하였으니 곧 베들레헴과 에담과 드고아와 벧술과 소고와 아둘람과 가드와 마레사와 십과 아도라임과 라기스와 아세가와 소라와 아얄론과 헤브론이니 다 유다와 베냐민 땅에 있어 견고한 성읍들이라(11:5-10).” 이를 다 애굽에 의해 소실하였다. 그러므로 항상 축복 가운데서 그 복을 지키는 게 지혜다. 하여 말씀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하고 경고하는 것이다.
곧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잠 30:32).”
이에,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스스로 높일까 하나이다 (셀라)
(시 140:8).
곧 우리는 스스로가 바로 섰을 때 넘어질까 항상 조심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세세히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또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는 것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그러므로 설령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쳤다 해도, 이것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깊은 뜻과 사랑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주일 오후 특별히 집에서 그냥 쉬기 그래서 평소대로 오후께 교회로 왔다. 그렇게 요즘은 오후 내내 이와 같이 묵상글을 쓰는 게 싫지 않다. 그러고 있는데 아들이 차를 가지고 제 엄마와 함께 교회로 왔다. 나와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서이다. 맞춤하니 딸애도 섬기는 교회를 끝내고 오는 길이라며 뜻하지 않게 모두 교회로 모였다. 같이 저녁을 먹고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교회로 올라왔다. 교회에서 자면서 나는 내게 허락하신 이와 같은 상황을 사랑한다. 날씨 탓에 어디가 아프고, 무슨 일로 이런저런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오히려 주를 더 바란다는 것은 즐겁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심판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은총을 알 때 어려움도 찬송이 된다. 육신의 연약함도 자랑이 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동력을 삼게 된다. 이는 우리가 ‘자기의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다른 어떤 일보다 더 좋은 것이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 가운데 숨겨진 은총이라는 사실을 체험함으로 하나님의 목적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즉 환난과 시험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란 바로 그 하나님의 목적을 빨리 깨닫고, 돌아와, 회개함으로 겸비할 때… 완전히 주의 사랑과 섭리 안에 피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비록 나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게 없으나 또한 이 모든 게 감사할 것뿐이라는 사실에서 놀랍다. 고로 바울의 설교에서와 같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5).” 오늘 우리가 주 앞에서 ‘자기 하나님’과 독대할 때 그러하지 아니한가? 이는 곧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3-4).” 하여,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하여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신 상황 속에서 나의 허물과 실수를 있는 그대로 주 앞에 고하여 돌이킴으로, 겸손함으로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비록 이 정도일 뿐이지만, 이것으로 주 앞에 겸손히 아뢸 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아, 이제 부디 나의 남은 생으로는 그러하여서,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시 52:8).
세상은 모두 어떠하다 해도,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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