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하현. 2025. 8. 2. 16:3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대하 11:4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 51:5-6

 

 

죄 문제는 하나님과 나의 문제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여러 악한 죄악 중에 빠지기도 하나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나의 문제로,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뒤 그 기도에서 뚜렷하게 죄의 문제를 규정하고 있다. 곧 죄의 문제는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여,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2).

 

하고 다윗은 절규한다. 곧 죄로 인하여 우리는 ‘주의 도’를 잃는다. 주의 도는 구원의 기쁨을 알게 하여 우리 혀로 찬송하게 한다. 그리하여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4-15).

 

이를 오늘 본문으로 연관 지어 묵상하면,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어떻게 남북으로 분열되었는지 우리는 보았다. 그렇듯 하나님의 백성들을 혹사시키고 저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르호보암은 뜻하지 않게 열 지파의 북이스라엘을 잃었다. 이로 인하여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었고, 이러한 국난(國難)을 타개하려 열 지파를 앗아간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을 치려 전쟁을 감행하려 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 오늘 내용은 그 특징이 있다. 그러한 르호보암의 전쟁 동원을 중단시키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4).” 이는 르호보암이 국토 분열의 책임을 통감하여 잃은 영토와 백성들을 회복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 한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저들이 같은 형제임을 상기시키시고 그 싸우는 것을 막으셨다. 이에 회군을 명하시자 르호보암은 이에 순종하고 전쟁을 포기하였다.

 

이에 역대기서는 르호보암의 순종이 분열 왕국 이후 남유다 초기 3년간의 번영을 이룬 사실을 서술한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열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에 의한 것이다.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왕상 11:31-32).” 오늘의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개입하신 일이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르호보암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국방을 강화할 수 있었다(5-12). 요새들을 재건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여 국태민안을 꾀하려 전력을 기울였음을 알게 한다. 이는 북이스라엘과 남쪽으로 있는 애굽 등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그런 가운데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월남하였다(13-17). 이는 북이스라엘에서 반(反)유다 정책으로 대대적인 종교 탄압이 시행되었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북이스라엘을 탈출하여 남하(南下)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유다 왕국은 더욱 신앙 가운데 열심을 더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대하 11:16).” 이것은 남유다 초기 약 3년 동안의 일로 여호와께서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신 이유라고 역대기서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17).”

 

그런 뒤 오늘 본문 후반부에는 르호보암의 가족들을 소개한다(18-23). 즉 르호보암의 가계(家系)가 소개되고 있는데 여기서 르호보암이 후계자를 택정함에 있어 지혜롭게 행한 일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다.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23).” 그런 가운데 부인을 저렇게 많이 두어 자식들을 많이 둔 것이 이율배반적이기는 하다.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 르호보암은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세웠으니 이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로 삼아 왕으로 세우고자 함이었더라(21-22).”

 

엄연히 성경은 일부다처제도의 폐단을 지적하셨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창 16:1).” 이로 인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하나님은 저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본처인 사라에게서 낳은 약속의 씨, 이삭으로만 그 계통을 인정하셨다.

 

먼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더딘 실행으로 조급하여 다메섹에서 데려온 엘리에셀을 세워 약속의 씨로 삼으려 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15:2).” 그러면서 임의로 선언한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3).”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4-5).” 하고 분명 약속하셨다.

 

그런 뒤 결국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로 구속 역사의 계대를 이으려했다. 이 얼마나 섣부른 판단이었고 이로 인한 결과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참혹한가 하는 것은 오늘까지 이어지는 중동 사태를 보면서 짐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 가계인 아브람 가정에서 사랑과 관심을 계속 보이신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경륜은 포기함이 없으셨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17:4-7).”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다. 그러나 결국 저들 아브라함과 사라의 섣부른 선택으로 그 결과 갈등과 반목과 전쟁의 역사는 고스란히 남겨졌다. 먼저는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의 갈등’이 시작되었다(16:1-6).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인간의 얄팍한 지혜로 이뤄보고자 했던 결과로 인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은, 항상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에 의해 실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그렇듯 일부다처제는 전형적으로 인간의 조급함과 불신앙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성경의 인물들은 고통을 자처하였다. 곧 이와 같이 ‘축첩 제도의 부당성’을 하나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할 때, 하나님의 약속 불이행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들 스스로 정당화한다. 실제로 족장 시대 당시 대부분은 일부다처를 선호하였고, 고대 시대 특성과 유목생활의 이유로 자식이 많은 것이 곧 그만한 힘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자식이 곧 신의 축복으로 여겨졌고, 자신들을 자신들의 삶의 연장이라 인식했다. 당시의 윤리의식으로는 축첩 행위가 옹호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축첩 제도는 사악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불신앙적 제도이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창 4:23).”

 

이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상처, 불안과 초조함으로 인한 죄의 결과이다. 성경은 분명히 한 남자에게 한 아내를 주셨다고 하였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이를 예수님도 분명히 이르시길,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막 10:5-9).”

 

그럼에도 족장 시대는 물론 여러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인을 두는 축첩 행위가 결국은 신앙인의 온전한 신앙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었다. 다윗은 물론 솔로몬은 더하여서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왕상 11:3-5).” 그러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었나?

 

오늘의 르호보암도 아내가 18명, 첩을 60명을 두어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낳았다.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대하 11:21).” 이와 같은 일은 엄연히 선민의 왕으로서 지켜야 할 율법을 어긴 것이다.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신 17:17).” 그런데도 성경의 곳곳은 이와 같은 범죄적 과오를 ‘신명기적 관점’으로 지적하지 않고 지나쳤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역사에서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과 이를 저해하는 일 사이에서 묵인도 타협도 아닌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죄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겠다. 그렇게 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에서 낳은 자식들로 민족이 형성되었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하여 오늘의 교훈은 삼가 형제를 정죄하여 전쟁을 벌이는 일에 제동을 걸었다. 곧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4).” 그리하여 북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여전히 ‘온 이스라엘’ 가운데 두셨다.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13).”

 

이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16).” 결국 참된 신앙은 개개인의 마음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것이지만, 여로보암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남하한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하나로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자신들의 영토나 재산, 친척들에 연연하여 신앙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하하였다.

 

오늘은 결국 이들의 모습에서, 아무리 세상이 어떠하여 날로 세속화되어간다 해도 그와 같은 어두운 사회에서 참 신앙의 결단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가를 묵상하게 된다. 일부다처나 축첩 행위로 인하여 오히려 가족 간의 반목이 일고, 서로가 원수 아닌 원수가 되어 전쟁이 끊이지 않았듯이… 영적으로 우리가 예수의 신부가 되어야 할 텐데, 얼마나 행음하며 세상을 사랑하고, 여러 마음을 품고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상이 창궐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과 같이(창 12:1-4), 패역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 받은 롯과 같이(19:12-22), 세속의 물결에서 결연히 은혜를 입는 자로 당대의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던 노아와 같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 역시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은혜이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여럿이나 하나도 데리고 올 신랑이 없는 삶처럼, 우리 생활을 어지럽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런 가운데 나는 요즘 내가 더 주 안에서 예민해지길 기도한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가벼이 넘기던 것들로부터 경계하여 막연히 타협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비록 늘 죄와 허물투성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1-2).

 

죄를 안고는 하나님 앞에 구원의 참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죄에 더 예민하여서 오늘도 나 역시 다윗과 같이 엎드려 기도한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3-4).

 

그리하여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9-10).

 

이것으로만 참 기쁨을 얻을 수 있나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1-12).

 

이에 오늘도 담대하게 주 앞에 엎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