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잠언 7:6-9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시편 64:10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다, 하는 죄는 없다. 연일 터져 나오는 사건 사고만 보더라도 다분히 의도적이고 의식적이며 계획적이다. 주도를 했든 공모를 했든 죄로 이끌리는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체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지혜자는 이를 지켜보았다. ‘내가 내 집’ 곧 주의 성소에 머물며, ‘들창으로, 살창으로’ 말씀으로 ‘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우선 말씀 밖에 있음이 어리석다. 젊음이란 아직 여물지 않은, 다분히 혈기왕성한, 욕구에 휩쓸리기 쉬운 때이다.
자,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가는데’ 여기서 그의 숨은 의도를 느낄 수 있겠다. 어쩌다보니 그리 된 게 아니다. 저가 거리를 지났다.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였다. 음녀의 집 쪽으로 가는 것이다. 문맥상 그 길이 본래 왕래하던 길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길에서 벗어나 골목 모퉁이로 들어섰다. 그리로 간 것이다. 염두에 두고 음녀의 집 쪽으로 간 것이다. 이는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죄가 스미는 때는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만 그 음산한 기운은 낙심과 절망과 좌절이 어깨를 짓누를 때 용이하다.
전에 아이와 성경공부를 하며 이 대목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도 난다. 젊다는 것이 좋기는 한데 아직은 미숙하고 영글지 못한, 혈기왕성함이 쉬 걸음을 돌리게도 하는 것이다. 나의 젊었던 날을 돌아보아도 그 막연하고 불안하였던 패기를 주체하지 못해 곁길로 돌아갔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 아이를 생각하고, 저 아이들도 그 길에 있을 것을 생각하면 때론 아찔하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주의 은혜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였다. 주의 긍휼하심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을 믿는다.
더불어 그게 어디 젊어서의 문제인가. 살아서 사는 날 동안에는 그치지 않을 끈질긴 죄의 속성이 아니던가. 나는 오히려 요즘의 내 모습이 더 추하고 옹졸하여서 못 견딜 지경이다. 전엔 몰랐던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고 어떤 분함과 우울함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좀 평안하고 이젠 나아지려나, 싶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게 아니다. 조금만 휘저으면 온통 불순한 부유물이 내 안에 가득한 것이다. 아, 그래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하시는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마귀, 음녀, 사탄, 어둠 등은 모두 같은 대상을 지목한다. 저의 간계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젊으면 젊어서 늙으면 늙어서 때를 따라 틈을 노리는 통에 살 수가 없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다 싶은데 어느새 감정이 상하고, 상한 감정은 쾌쾌 묵은 예전 기억을 들추어서 서러움을 조장하고, 억눌린 열등감은 시기와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며 ‘~ 때문에’를 찾는다. 결국 너 때문이거나 나 때문이거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주를 원망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12).” 여전히 이 땅을 통치하고 있는 게 누구인가? 그 권세의 중심에는 누가 있는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을 나의 이성과 판단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 영락없이 우리는 거리를 지나 모퉁이 후미진 곳, 음녀의 집 앞으로 가게 돼 있다. 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은 내가 그럴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달콤한 속닥거림을 어찌 물리칠 수 있을까? 잠언 7장 10절에서 20절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절호의 기회이며 행운인 듯 보인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두고 그 이권에 개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던 자들의 암중모색이 참으로 가관이다. 줄을 대고 서로 눈감아주거나 몰아주고, 천하를 얻은 듯 거들먹거렸을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가만히 보도를 보고 있자면 그 삶이 참 고단하겠다 싶다. 눈치보고, 비위맞추고, 숨기고, 거짓말하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더욱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음녀의 집 앞으로 모이는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암 4:2).”
곧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옵 1:3).” 아무도 모르게 모든 일이 다 순조로울 줄 알았겠다. 하나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 이제는 그와 같음을, 세상은 온통 그러한 것임을 알겠다. 자축하며 뭐라도 된 듯 떵떵거리고 지냈을 날들의 허망함에 대하여. 요즘은 뉴스가 온통 교훈적이기도 하다.
늘 돌아오는 답이 나였어도 그러했을 것을, 하는 것이다. 내가 비서관으로 있었다면, 아니 국무총리였어도 분명히 눈 감고 귀 막고 있었을 게 뻔하다. 비단 적극적인 가담은 안 했다 해도, 암묵적으로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을 것이고 그때면 나의 위신과 체면을 우선하여 도도하게 굴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엄연히 당사자가 되었을 것이다. 얼씨구나, 하고 더 해먹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결코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어서 두렵다. 다를 바 없는 나의 모습을 걱정스런 마음으로 주 앞에 내어놓는다.
어느새 인생은 흘러 이만큼 살아보니 가장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떠해서가 아니라 주께서 나의 환경과 사정을 고이 다루셨기 때문에 평온하였다. 곁길로 들어 먼 길을 돌 때에도 하나님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아 그래서 그때 그러셨구나’ 하는 걸 이제와 보니 선명해지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하나님이 왜 이러실까?’ 싶은 것에 대하여,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만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 지혜였다. 나이를 이만큼 먹고, 경험을 그 정도하고 그래서 더는 어리석은 자리에 들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렘 51:50).”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시는 축복에 감사한다. 비록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인생이라 해도 이처럼 말씀으로 가까이 하게 하시는 게 은혜였다. 천금을 얻는다 해도 어찌 이보다 더 값지고 소중할까.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시 64:10).” 다윗의 진술에 백 번 공감한다.
이어 지혜자의 당부는 보석과 같다.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잠 7:24).” 듣고 주의할 수 있는 마음이 값진 것이다. 이는 주신 것이지 내가 이룬 게 아니다. 반드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시 64:9).” 이때 누구는 너무 늦었고 더는 돌이킬 수 없을까 하여 두렵다. 끝내 마음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그저 안타까움으로 주의 긍휼하심을 바란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이와 같은 말씀에 마음이 크게 열리는 것이 복되다.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에 대하여 더는 연연해하지 않고, 의연함으로 꿋꿋이 나의 남은 생이 주의 말씀만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설왕설래 말이 참 많은 세상에서,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눅 11:3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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