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잠언 30:32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편 117:1-2
설교원고를 초안만 잡다 그냥 두었다. 불쑥 찾아온 아이는 생각보다 심각하였다.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는 것은 알지만, 상태가 더욱 심각하여 약이 늘고 불안증은 더해갔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온 아이의 상태를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자는데 자꾸 악몽을 꾼다고 하였다.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약을 안 먹으면 감당이 안 되는데, 약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런 나를 두고 뭐라 하던 아이였다. 생인손 같은 아이다.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 우리 인생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설명하였다. 어지간히 힘들었던지 진지하게 듣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의 결국은 ‘하나님과 너의 문제다.’ 하고 아이의 턱밑에 그 사실을 들이밀었다. 죽으면 지옥 간다는 말이 무서웠어요. 아이의 말에서 감사함을 느꼈다. 가장 원시적인 판단이지만, 지옥을 두려워할 줄 안다면 주의 자녀일 가능성이 충분하였다. 오죽 힘들었으면 분당에서 인천까지 그 아침에 달려왔을까? 설교문을 뒤로 미루고 오전 내내 아이와 대화했다. 그리고 일부러 아내에게 문자로 알리고 데리고 올라가 집 밥으로 점심을 먹였다.
이제 스물넷. 나름 건들거리듯 센 척을 하며 살았다. 몸에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꽂고, 고등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았고, 간신히 문창과를 들어갔는데… 누구를 사랑하다 휘둘리고 된통 걸려 넘어진 셈이다. 여동생은 대학에 진학하고서부터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에 감이 왔다. 하나님이 이 온 가족을 붙드시는구나! 금요일 날 와서 성경공부 하는 아이가 있으니까,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설교문이 잡히지 않았다. 그게 어떤 건지 안다. 훅, 하고 올라오는 어떤 싸한 느낌은 두렵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뛴다. 숨이 멎을 것 같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무섭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몇 번씩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어쩌다 그렇게 됐나? 하고 물을 일이 아니다. 왜 그러지? 하고 되묻지도 마라. 뭐가 문제야? 하고 다그치지 말고, 그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지도 마라. 이것은 심리학에서 하는 일이다. 심리 상담으로 파고드는 통로였다.
‘하나님과 나’의 문제다. 나는 아이에게 말하였다. 너를 부르시는 거야. 나 좀 봐라, 하고 네 어깨를 붙드시는 거야. 아이에게 해준 말이 오후 내내 나의 귓가에 들리는듯하였다.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사람이 오히려 문제다. 저는 하나님이 절실할 리 없다. 지옥이 같잖은 자와는 상종을 하면 안 된다. 환생을 말하고, 다시 태어나면 뭐가 돼서 어쩌고 하는 낭만적인 드라마에 빠져드는 사람은 비겁하다. 지옥 대신 천국만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좋은 데 가서 편히 쉬시라, 말하는 자는 어리석다. 지옥을 외면하는 자는 가망이 없다. 지옥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 지으셨다.
나야말로 얼마나 스스로 높은 체하며 살았던가? 그리하여 악을 도모하였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아이를 보면서 내가 보였다.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잠 30:32).” 무슨 말을 할까? 마음을 단단히 먹어, 잘 될 거야, 넌 잘못 없어, 걱정하지 마, 별 거 아냐… 하는 따위의 말은 사탕발린 소리다. 오히려 찬물을 끼얹듯 우리가 죄인인 것과 그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 사실과 이를 위해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신 것과 십자가와 부활과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찬송이란 이런 것이다. 행여 너무 빤한 소리만 한다고 할까봐 마음 쓰지 않았다. 전엔 일부러 다른 말을 하려고 했다. 서로의 관심을 찾고 안정을 도모하며 위로하고 밥을 사고 잘해주려고 애썼다. 그랬던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당시엔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밀착관계를 보이더니 (나 역시 그게 좋았고 그게 바른 줄 알았다.) 더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확실히 깨달은 건, 저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게 아니었다. 위로란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해주어야 한다.
목사니까 너무 빤한 이야기 아냐? 그럼 누가 와! 하고 전에 약사아이가 퉁명하게 지적하였었다. 그땐 그랬다. 한동안 그저 내가 잘해주면 될 줄 알았다. 이는 마치 뇌종양인데 두통약만 주고, 위암인데 소화제만 먹이려는 거였다. 이젠 찬양이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처방도 백해무익이다. 잠깐 동조하고 뭔가 위로가 되는 것 같으나 돌아서면 꽝이다. 널린 게 죄고 우리의 죄성은 어김없이 다시 우리를 주장한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랴.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시 117:1).” 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2).”
다른 어떤 더 좋은 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어설프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내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뿐이다. 그는 선하시며 긍휼하시다. 마음이 아픈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응대였다. 전날에 아이엄마가 왔을 때도, 아이 문제와 자신의 이런저런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결국은 내가 해야 했던 말이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과 당신의 문제입니다. 남편도 자식도 시댁도 친정도 아닌 바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삼하 7:27).”
말씀은 결코 헛되이 버려지지 않는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나의 불안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께 기도하는 것뿐이다. 아이를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설교문을 다시 수정하려다 그만두고, 마음만 뒤숭숭하였다. 들어앉아 아무 것도 안 하는데 많은 걸 하게 하신다. 앞쪽 빈 사무실에 조산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하나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일까?
모든 게 죄 때문이다. 죄는 자기 권리의 문제다. 자유의지를 운운하며 자신이 주인이기를 원할 때는 어림없다. 의도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결국 자기주장, 자기권리가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끝내 죽어야 산다. 죽음 없이 부활도 없다. 부활 없이 영생은 없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들려줄까? 저를 위로할까? 애쓰지 말자. 주가 하신다. 오게 하신 이가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시고, 어줍고 모자란 사람이지만 주만 드러나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런데 내가 다른 무엇을 가지고 위로하고 다잡을 수 있을까?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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