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전봉석 2017. 1. 1. 06:19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잠언 1:3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편 119:3, 9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이제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아이들 외가 식구들이 와서 같이 점심을 먹고 오후를 보내다 돌아갔다. 그리고 새벽 일찍 눈을 뜨고 주 앞에 앉았다. 아이 생각으로 마음이 어수선하였다. 오전에 일찍 전화를 넣었었다. 토요일 오전인데 카페에 나가 앉아 전날에 건넨 <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읽고 있다고 하였다. 좀 어떤지, 잠은 잤는지, 묻고 전화로나마 기도를 해주었다. 갑자기 녀석은 훌쩍거리며 울었다. 나는 부디, 이 좋은(?) 상황이 아이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고 구하는 데 이로울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곧 오직 주의 말씀을 듣는 자로 산다는 것은 복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시 119:7).” 내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는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1).” 하는 것으로,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하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곧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162).” 그것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하는 것이다. 고로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1-164).

 

이에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3, 9).” 비로소 우리 교회 아이들도 다 함께 주의 말씀만 의지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다 하나로 통하게 돼 있다. 곧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74).” 무엇이 내가 저들보다 나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에서다. 그러므로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리이다(79).”

 

저들에게 내가 증거가 된다는 것은 어떠하든지 주의 말씀을 기뻐하기 때문이겠다. 그저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어리석은 자리에 들지 않게 하시고, 자기다짐과 자기수고의 잔에 만족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만으로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167).” 그러므로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하는 다짐으로. 이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하는 기도로(168-169). 곧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7).” 주의 말씀이 아니고는 이제 설 자리가 없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이다. 교회와 글방을 인천으로 옮겼고, 꽤 긴 시간을 의존하던 약물에서 벗어났고, 아이들을 통해 나의 갈 바를 확신하게 되었으며 결국은 말씀에 순응하는 것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라 안팎이 어지러웠던 것처럼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더더욱 그와 같은 날이 잦을 텐데,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결국은 순종함으로 주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바벨탑을 쌓을 때 저들은 말로써 연합하여 하나님까지 닿기를 바랐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창 11:6).” 사람의 연합은 죄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저들을 하나님은 흩으셨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그리고 거룩으로 다시 하나 되게 하신다. 우리의 각 언어가 하나 같이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게 하신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

 

이를 이루어 가시는 데 있어 교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맡은 자로서 구할 것은 충성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충성이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두고 충성하는가? 아이 하나로 쩔쩔매게 하시는 게 주의 은혜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이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고난이 유익하다는 건 말씀이 있기 때문이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71).” 아이의 오늘이 주 앞에서 온전하여지기를.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오지 않거나 멀리하는 아이들까지도 주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보잘것없는 외형에 내세울 것 없는 교회지만 주가 기뻐하시는 데는 말씀뿐이라.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25).” 이와 같은 다짐으로 주께 아뢰어도 되는 것일까? 나는 그저 자신이 없어서 송구할 따름이다.

 

그러나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27).” 나는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래서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28).” 말씀으로 나를 세워주시기를.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32).” 그러므로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38).” 나는 알 수 없으나 하게 하시는 이가 또한 굳건하게 붙드실 것을 믿는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41-42).” 다른 무엇으로 의지가 될까?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43).” 말씀만 읊조리며 그것으로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49).”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50).”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제 말씀뿐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56).”

 

아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고, 곁에 두신 가족들에게 고마워하며, 이웃들에게 산 증거가 될 수 있는 길은,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57).” 아브라함의 특징은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순종은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다. 어떠하든 어느 훗날 우리는 말씀 앞에 홀로 서야 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고로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시 119:63).”

 

아직 가시적으로 기대할 게 없고 아이들의 성장은 묘연하기만 한데,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65).” 청년의 때에 저들이 무엇으로 깨끗하게 할 것인가? 주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뿐이다. 이로써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103).” 뿐만 아니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 그러므로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112).” 이처럼 말씀을 따라가며 온전히 주를 사랑하기를. 곧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113).” 그러므로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114).”

 

고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다른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그러므로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170).” 곧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175).” 고로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176).”

 

주께서 찾으시고 주께서 살게 하셔야 주를 찬송하고 경배할 수 있는 것을 고백한다. 다 잃는다 해도 온전히 주의 말씀만 의지하기를 바란다. 더 한층 의연하고 한결 같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더더욱 말씀뿐임을.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시 35:22).” 그리하여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기를. 그리하여 주를 더욱 기쁘시게 하고 온전히 주의 사람으로만 살아드릴 수 있기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리하여 오직 말씀만으로,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3).” 주가 함께 하심을. 올해도 가장 단순하게 묵상글 만큼만 살아낼 수 있기를. 함께 나누고 더불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풍성하신 사랑하심과 성령의 함께 하심이 주신 삶을 마치는 그 날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