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8 주일
잠언 16:20
지혜가 좋은 것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들어가는 말
좋은 게 참 많은 시절이다. 놀 게 많다. 마음을 둘 곳이 지천에 널렸다. 아이는 왜 그것을 인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른들도 분에 넘치게 호사를 누린다. ‘그쯤은 해줘야’ 하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 가난이 보편적이던 시절, 앞서 놀이가 궁하였던 시절을 운운하며 비교하는 것은 이제 소용이 없다. ‘사는 동안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추사 김정희의 말은 우습게 됐다. 실은 그것보다 더 나은 즐거움과 유익이 넘쳐난다. 흔히 말하듯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그런 가운데서 오늘 말씀을 펼치려니까 별로 와 닿지 않을 것 같다. 지혜가 좋을 게 뭐람? 때론 모르는 게 상책일 듯싶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아는 게 병이다. 공연히 머리 아플 거 없다. 적당히 좋은 게 좋은 시절을 살면 그만일 거 같다. 그럼에도, 그리하여 참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서는 참살이의 뜻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도 있다. 은연중에 ‘에코맘’이 진가를 발휘하곤 한다. 자연을 희구하며 본연의 삶에 충실하려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슬기로운 자는 이내 지혜를 구한다.
1. 지혜가 오는 길
1) 중심을 말씀에 두기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아는 사람은 아는 것이다. 마음 같지 않다. 그럴 것이다, 하고 여겼던 게 여지없이 무너져 본 사람은 안다. 그런 자는 기도한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시 119:133).” 내 힘으로, 내 의지로는 되는 게 인생이 아님을 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2)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기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내가 뭘? 하고 한사코 자신이 죄인 됨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 저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로 산다. 죄는 유전되고 죄악은 답습된다.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 전가되고, 아버지의 죄악이 아들을 착취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 그러므로 죄는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피로 씻음 바 되고 죄악은 내가 나를 복종시킴으로 이겨낸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3) 하나님만 의뢰하기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 16:3, 6).” 말씀을 의지할수록 내가 죄인임이 두드러지고, 내가 죄인인 것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의뢰할 수밖에 없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이는 우리의 특권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2. 지혜가 머문 자리
1) 하나님과의 관계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잠 16:16).” 그러할 때,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8).”
2) 타인과의 관계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7:7).” 지혜가 머물면 원수라도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느 1:11).” 이에,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시 106:46).”
3) 물질과의 관계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잠 16:8).” 곧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전 7:12).” 지혜는 돈 같이 유용하다. 그 결과,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시 11:6).” 곧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37:16).” 그러므로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1).”
4) 자신과의 관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누구나 화를 껴안고 산다. 본래 너그러운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신은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노를 참고 화를 다스린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러므로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
5) 사회와의 관계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잠 16:11).” 남들처럼 사는 게 대수가 아니다. 이 모두는 주의 것임을 아는 데서 저울은 온전할 수 있다. 이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시 15:2).” 그리하여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사회가 아무리 의롭다, 정의롭다, 공평하다 해도 지혜는 그 축이 온전히 여호와의 것임을,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6) 죄악과의 관계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잠 16:17).” 악은 우리가 무찌른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는 이 땅의 모든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때마다 자각을 하고 떠나야 한다. 악을 악이라고 아는 것,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시 34:13-14).” 이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97:10).” 어떤 경우에도 악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어쨌든 악은 악하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암 5:15).”
7) 고난과의 관계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6:19).”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끝내 하나님께 맡길 수 없었다는 소리가 된다. 그러므로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시 37:16).” 이는 그 결과를 아는 것이 지혜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1).”
3. 지혜가 없는 자리
1) 스스로 지혜롭다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잠 16:22).” 미련한 자의 특징은 26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다. ‘미련한 자는 여름에 눈이 오고, 추수 때 비가 오는 것처럼 그 영예가 적당하지 못하다. 저는 어리석은 대답을 일삼음으로 그냥 막대기로 등짝을 후려치는 게 제격이다. 말로 해봐야 소용없다. 그러니 그냥 저의 수준에 맞게 어리석게 대답하는 게 상책이다. 저에게 무얼 바라고 기별하는 것은 차라리 자기 발을 베어버림과 같다. 저가 아는 잠언은 저는 자의 다리 같이 힘이 없다.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다. 저가 떠드는 건 마치 술 취한 자의 손에 들린 가시나무 같이 위태롭다. 곧 미련한 자는 쓸모가 없다(1-11). 한데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 차라리 이런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 26:12).”
2) 교만하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모든 권세가 이를 답습한다.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단 5: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이는 말씀의 가장 기초적인 기준이다.
3) 강퍅하다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잠 16:27).”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곧 주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저를 그대로 내버려두신다.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시 81:11-12).” 이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1:24, 26-27).” 아!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사 5:13).”
나오는 말
그러므로 성도란 첫째,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다. 지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주를 경외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잠 16:23-24).” 하지만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26).” 늘 일에 치이고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해도 해도 할 일이 끝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 건강을 돌보는 일도,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도, 돈을 버는 목적도,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전 6:7).” 이를 알기 때문이다.
둘째, 그래서 우리는 화평과 평강을 도모한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묵묵히 주어진 삶에 충실함으로 그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다. 공의로운 길, 지혜의 좋은 것을 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이를 곧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3).” 이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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