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2 주일
잠언 20:24, 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들어가는 말
산다는 일은 동사로 표현될 게 아니라 형용사로 기록되어야 한다.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이다. 바탕은 숨길 수 없듯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 근대사의 굽이굽이마다 권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신의 억울함만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뭐라 한들, 들리지 않는 귀와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진 자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생각하였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감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곧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것인데,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21).” 뭘 했느냐가 아니라 왜 했느냐의 문제겠다. 행동이 아니라 상태인 것이다. 청결의 문제는 마음의 일로 몸은 그 다음이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하나님을 본 이가 위선을 떨고 거짓을 아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21-22).” 살인은 동사에 해당하지만 형제를 향해 미련하다고 마음 먹는 일은 형용사다. 간음은 동사지만 음욕은 형용사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7-28).”
말씀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지키지도 못할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게 아닌가! 말씀이 그러하다면 나는 어쩌면 좋은가? 하는 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등불이라. 주가 밝히신다. 어떤 행위를 보시겠다는 게 아니고, 어떤 성과를 내는가를 바란다신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 값은 이미 지불된 것이어서 문제는 우리의 영혼인 것이다.
1. 인생 길, 그 깊은 속
인생에 대해 오늘 본문은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24).” 자기 인생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가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옥사를 할까 염려할 줄 누가 알았나?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을 때 돌연 굽이 길 돌아 엉뚱한 지점에 이르러서야 인생이구나, 싶은 것이다.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그러니 둘 중 하나다. 누군 살아서 주를 경외하는 자리로 돌아오고 누군 끝내 한 번 뿐인 인생을 운운하여 ‘욜로족’으로 산다. 어째서 누군 주를 바라고 어째서 누군 더 완고하여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를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27).” 누가 그 속을 알랴. 자기도 자기 속을 알지 못하여 분분하다 가는 게 인생이라면, 이래서 남들처럼 살다가는 것을 표본으로 삼는 걸 지혜로 여긴다는 데야 별 수 있나? 그저 누가 뭐라 하는지 귀가 가려울 뿐이다. 여기서 주를 바라는 자와 끝내 주를 멀리하는 자의 차이를 살펴보자.
2. 주를 바라는 자의 특징
① 스스로를 자부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은,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6).” 하는 탄식조로 우리의 무감각한 인식을 깨운다. 그리하여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9).” 스스로 자기 죄를 정하게 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이 같이한다. 곧 하나님이 무얼 미워하시는가를 아는 것이다.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10).”
먼저 저의 심령은 가난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하나님이 아니시면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가난이다. 이를 두고 늘 애통해 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그리하여 온유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 항상 주의 뜻을 바라기 때문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 범사에 주를 인정함으로 긍휼하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저의 마음은 청결하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화평을 도모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그리하여 의를 위하여 박해를 마다하지 않는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10).”
② 온전히 행한다.
오늘 본문은 그 후손의 복을 약속한다.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7).” 즉 그런 자는 자신의 삶을 조심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또한 단정히 행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롬 13:13).”
③ 감출 수 없는 삶을 산다.
아이라도 다 드러나게 돼 있다.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11).” 예수님은 이를 소금과 빛과 산 위의 동네로 비유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3-15).”
소금은 그 맛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은 흐리멍텅하지 않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는 대신 소금은 부패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소금이 뿌려지면 죽어라 하고 경계한다. 적대시하고 원망한다. 격렬히 맞선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은 무시당하고 욕을 먹는 일이다. 빛은 어둠의 저항을 받는다, 어둠에 감추였던 것이 다 드러나면서 감추고자 하는 자의 공격이 있다. 덩달아 꼬여드는 날벌레들로 골치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눈에 잘 띈다. 어중이떠중이도 드나든다.
그리스도인인 게 다 티 난다. 냄새가 나고,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그 삶이 곧 편지다.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3:3).”
3. 주를 외면하는 자의 특징
① 속이고 취한 음식처럼 입에 모래가 가득하다.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17).” 당장은 좋은 것 같고, 횡재한 듯 이득을 본 것 같고, 훨씬 수월하여 좋아라한다. 평생을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지만 노년에 처량하다. 혹은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시 73:4-5).” 부럽기도 하다. 복 받은 인생 같다. 그런들, 한 생이 고작이다. 말 그대로 욜로(you only live once)다. 그것으로 됐다면 별 수 없지. 입 안 가득 모래가 가득해도 좋다는 데야 별 수 있나.
② 저들은 한담거리를 찾아 즐긴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19).” 온갖 쇼 프로가 서로를 조롱하고 웃기고 남의 비밀을 누설하며 깔깔댄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26:22).” 그런데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4:9).”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③ 충동적이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21).” 지난 주일 말씀에서도 그 원인을 ‘지식 없는 소원’에 두었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19:2).”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없을 때 우리의 소원은 ‘발이 급하여’ 또한 ‘속히 잡은 산업’으로 분분하게 산다. 가만 보면 그런 사람이 있다. 늘 바쁘고 평생이 부산하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④ 저들은 한결 같지 않은 저울 추 같다.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23).” 그때마다 다르다. 일관성이 없다. 귀가 얇고 혀가 가볍다. 곧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신 32:28-29).”
⑤ 그래서 저들은 함부로 맹세한다.
“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25).” 쉽게 맹세하고 금세 번복한다. 자기 말에 스스로도 신빙성이 떨어지니까, “못 믿겠으면 누구한테 물어봐!” 그런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나오는 말
1. 눈을 뜨라.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13).” 게으름엔 약이 없다.
2. 연습해라.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30).” 곧 연습해야 한다. 청결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훈련에 의한 것이다. 충동은 매 맞지 않은 아이의 본성이다. 꺾지 못한 고집이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13:24).” 그러므로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29:15).”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전 5:4).”
3. 생각하라.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시 94:8).” 곧 우리가 생각한다는 건 묵상하는 일이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5:6).” 그러므로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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