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잠언 21:1, 30-31 /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전봉석 2017. 7. 7. 11:00

20170709 주일

 

잠언 21:1, 30-31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1:30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들어가는 말

 

나름 누구나 자기 인생을 책임지려 한다. 마음을 정하고 계획을 세워 십년, 이십년 뒤의 모습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27:1).”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게 내일이다. 멀쩡하던 아이는 엄마와 함께 햄버거를 먹고는 90%의 신장이 손상됐다. 마른하늘에 하천을 정비하다 순식간에 물을 만나 두 명의 근로자가 실종됐다. 매일 터지는 사건사고를 보다 누가 내일 일을 장담하겠나, 새삼 말씀이 귀하였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4).” 왜냐하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 이를 오늘 솔로몬의 증언으로 하면, 하나님이 임의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이에 성도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7:14).” 곧 온전히 주를 신뢰하는 것이고 이를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성도란 주께 모든 것을 맡긴 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그럴 수 있는 까닭은 믿음이다. 믿는다는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6:29).”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긍휼하신 뜻을 헤아려 알 수 있다. ‘임의로 인도하시는 주의 손길이 얼마나 감사한지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이김은 여호와의 것이다. 행여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오해

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21:29).”

 

어디서부터 자유의지를 강조하게 된 것일까? 자아실현을 인생의 기치로 삼는 세상에서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우문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을 외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주께 맡긴다는 소리는 싱겁게 들린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아직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그러니까 자유의지를 운운하며 스스로 눈이 밝아지기 전에, 사람은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을 때가 가장 자유로웠다. 그런데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

 

애당초 유혹에 넘어갈 기회를 차단하셨으면 어땠을까? 먹을 수도 있었고 이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7).” 자기들 나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유의지란 그런 것이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8).” 자유의지란 사람에게 부여된 자유가 아니라 사람이 선택한 자유다.

 

마음의 길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22:1).”

 

곧 마음을 내 것이라 여길 때 자유는 왜곡되고 의지는 훼손된다. 사람은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그런 존재다. 다시 말해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이 자신의 하나님이기를 원했다. 이후 마음은 제어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이 되었고, 그 일은 고역이다.

 

잠언은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25:28).” 아무리 성을 구축하고 견고히 한들 소용이 없는 일이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이는 감히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20:9).” 그럴 자는 없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3:5).”

 

곧 우리 마음이 주께 있는 것이 봇물과 같다. 보에 고여 농사에 긴요하게 쓰일 물을 농부는 길을 내어 밭고랑 논두렁을 따라 물을 보낸다. 물은 어디로, , 가야 하는지 묻지 않고 흐른다. 농부는 임의로 보의 물을 흘려보내 유용하게 사용한다. 우리의 마음은 주의 것이어야 하고, 주께서 마음에 고랑을 내어 그 쓰시기게 합한 곳으로 흘려 보내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이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17:17).”

 

 

주를 당하지 못한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21:30).”

 

스스로 눈이 밝아진 사람의 특징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과 견주어 하나님을 이기려고 한다. 내 주먹을 믿는다는 말처럼 안 믿는 자의 가장 큰 믿음은 자기 자신이다. 아이를 윽박지르면서 아버지는 말한다. 이 아빠만 믿어, 난 말야! 하면서 이어지는 자신의 무용담을 지지한다. 한데 다급한 일이 터져 더는 손쓸 수가 없는 때가 오나니 그제야 비로소 한탄한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아론은 들고 일어난 백성들의 성화에 못이겨 금송아지로 하나님을 만들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32:4).”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너무 더디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자신들을 위하는 길을 자신들이 모색하기로 한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

 

이는 어쩌다 그리 되는 게 아니라 의지적인 행동이고 적극적인 동참이었다.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2-3).” 죄란 어쩌다 그리 지은 게 아니다. 빼앗긴 게 아니라 권하여 그리 요구한 것이다. 오늘 날,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으로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믿음은 취향이 되었다.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고 자신에게 걸맞는 신을 찾는다(7:39-41).

 

금송아지를 깨뜨리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그의 나라와 그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100:3).”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2:13-14).”

주의 이끄심을 바란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31:18).”

주의 영을 부어주사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6-27).”

말씀의 순전함을 사모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30:5).”

 

 

나오는 말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21:31).”

 

참 수고하고 애쓴다. 다들 사느라 여념이 없다. 기를 쓰고 덤벼도 나이 드는 데 장사 없고 어느 누구도 죽음을 모면할 길은 없다. 나름 의미를 두고 고상을 떨며 살아보지만 결정적인 위기가 아니고는 제 고집을 꺾지 못한다. 취향에 따라 혹은 선호도에 의해 여러 종교 가운데 기독교인이 되었고,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라면, 모름지기 그 싸움은 보나마나 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인생을 선택한 게 아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게 아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33:12).”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15:16).”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은 우리의 책임이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책임을 주께 맡기지 않은 것 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의지하며 살 것인가.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20:7-8).” 인생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이를 아는 욥은 인생에서 모든 걸 잃고서도,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13:15).” 다시 말해 주께서 나를 이렇게 끝장을 내신다 해도 나는 나의 삶을 주께 드리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죽이신다 해도 그래서 나를 살리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와 같은 나의 주 앞에서 내가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주를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6:29).” 믿음이란 어떠하든주의 선하심을 바라고 구하고 붙드는 일이다. 일이 이루어지는 게 더디고 묘연하여 심지어는 그릇된 것 같다 해도, 그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그리하여 모든 이김은 주의 것으로, 주께서 임의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 따른 가장 선하고 인자하심을 붙들고.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4: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