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전봉석 2017. 10. 6. 07: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 42:10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시편 94:17

 

 

 

두신 곳에서, 처한 상황에서, 그것이 비록 바벨론의 땅이라 해도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렘 42:10).” 그 이치를 바로 깨달아 안다는 일. 그것은 오직 주를 바라는 데 있었다.

 

그러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11).” 어디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12).” 그 소망의 말씀을 붙들고 살 때,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 94:18-19).”

 

새삼 말씀 앞에서 아멘이다. 이 땅에서 그 어디가 안전할까. 행여 내 의지로 ‘애굽’을 갈망한다면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렘 42:14).” 애굽도 바벨론과 다를 바 없을 텐데, 하나님이 그리 두시는 곳에서와 내가 내 의지로 어찌 잘해보려는 곳에서의 삶의 결은 다른 것이다.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17).”

 

간단한 원리 하나를 깨닫는다. 온전히 주를 의지함이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우리를 두신 땅에서 주가 허락하시는 날들을 살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을 말이다. 이는 나에게 부여된 거룩이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내가 뭘 어찌 한들 그것으로 의를 이룰까. 거룩은 내 안에 모신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성령으로 인하여 나의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거룩도 죄처럼 성향이구나. 지속되는 것으로 굳어진 성품이 아니라 날마다 돌보며 가꾸어 더욱 새로워지는 성향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믿음으로써 하나님께로 난 의다. 전가 된 의.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눈이 저절로 떠졌다. 묵상 글을 쓰고 여느 날과 같은 동선을 따라 글방으로 가서 대추차를 마시었다. 순식간에 완연한 가을날이 되었다. 점심께 아내와 딸애는 처가에 갔다. 손위 처남댁네가 안양에서 여러 개의 가게를 오픈하는 바람에 그쪽에서들 모이는가보았다. 커피숍과 치킨집과 분식집을 자기 건물 일이층에 놓고 삼층을 별도 사무실로 쓰면서. 다 저녁에 형님이 늙으신 장모를 모시고 아내와 딸애를 데려다주어 나는 나가서 얼굴을 잠깐 뵙는 것으로 전부였다. 면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나 나를 두시는 바벨론이라.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렘 42:10).” 나는 오늘 말씀을 그리 읽었다. 처한 상황에서 슬기롭게 살아나기. 이는 내 의지로 애굽을 찾는 길이 아니었다. 내가 어디 있든, 주가 어디에 나를 두셨든, 전가된 거룩으로 사는 일.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8).”

 

그게 나였지 않나. 내가 허물이 없음이 아니요, 나의 허물을 사함으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그러므로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7-8).” 나는 나를 받아들인다. 내 신세를 서러워하지 않는다. 처량하다고 여기지 않고 서글프다고 우울해하지 않는다. 그럴 거 없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렘 42:11-12).” 나는 오늘 말씀을 그리 읽는다. 그리하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혼자 저녁을 차려 먹을 때, 친구네는 그 조카아이 문제로 온 집안이 우울했을 테고 늙으신 부모는 말도 아니게 침통했을 것이며… 친구가 보낸 카톡의 문자 내용이 그러하여서, 그럴 거 없다. 그러지 마라. 기도하라고 하시는 거다. 나는 당연한 말을 상련의 마음으로 읽고 듣고 답하였다. 그러라고, 주가 내게 두시는 오늘의 여러 침울함이 도움이 되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게 없게 하시려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10:9).”

 

내가 마음을 쓰는 일, 내게 마음이 쓰이게 하시는 일,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려고.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한데 내 의지로 무슨 일을 꾸며 도모함으로 하나님을 외면하는 애굽이 아니라 이미 그리 처한 상황에서도 주를 바라며 그리 되어진 일에 묵묵히 주를 바라며 구할 수 있는 바벨론에서의 삶이란, 그리하여서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시 94:17).” 아, 그래서 그렇구나. 말씀을 따라가며 나는 탄복을 한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주의 마음으로,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1).” 나를 여기에 두시고 어려움에 처하게 하시며 혼자 몸서리치게 괴로움을 알게 하시더니, 그럴 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이 내 곁에 두신 ‘아픈 사람들’을 주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시려고. 그럴 수 있었던 게 우선순위를 바로 할 때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30).”

 

곧 주를 내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할 때, 변변찮고 비루하기 짝이 없으며 한심하고 서글프고 처량하고 우울하기만 한 나에 대하여도 그게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를 알면서 비로소 내가 속한 바벨론, 내 곁에 두신 아프고 힘든 이들을 주의 눈으로, 주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하시려고. 저는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29).” 내 안의 고백이 확신이 또 감사가 뚜렷하였다. 그래서 주고 또 주고도 다시 주는, 주의 마음이시구나.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이게 어찌 내 의지나 노력으로 가당키나 한 마음이었나. 내가 뭘 꼭 누구의 마음까지 헤아려 저를 두고 주께 기도하게 될 줄이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이 원리가 거룩의 성향이었구나.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성품이셨어. 이를 닮으려고 그처럼 나와 내가 싸우는 거였다. 나를 돌아보며 그저 신세한탄으로 처량했던 게, 더는 그럴 거 없단다고 어찌 그리 또 쉽게 그게 되나?

 

안 되니까, 나는 안 되니까.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시 94:17).” 아! 그렇고말고. 그래서 말씀은 안타까워하신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8-9).” 다 아신다. 나의 주님이 벌써 다 나의 마음과 사정을 아신다. 아,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11).”

 

그러므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내게 두신 은혜를 알면 알수록 나의 소유는 가벼울 수밖에 없구나. 짊어지고 갈 게 없었다. 이 또한, 이 모든 게 주의 긍휼하심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아멘.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 94:18-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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