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5:1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시편 98:1
내 안에 이는 온갖 더러움에 대하여,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8).” 하는 데서 가만히 머물러 섰다. 생각과 달리 말의 표현은 나를 주도하기 일쑤여서 누구에게 대해 뭐라 하면 금세 저를 비난하고 판단하려 든다. 어떤 일에 있어서도 말의 언급과는 달리 마음에서 이는 것은 나의 주장이 우선일 때가 많다. 어떤 의식과 행위는 차후의 문제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19-20).”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인데, 겉으로 비춰지는 나와 실제 내 안의 나는 그 차이가 엄연하여서 때론 나 자신조차 깜빡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가령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저들이 예배에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내가 먼저 모면할 궁리를 하는 것만 같아서 면목이 없다.
가만히 주를 바라며 내가 너무 할 수 있는 게 없어 송구하고 죄송하다가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또 보면 우리 건물에도 층층마다 교회가 들어서고 있다. 나는 주 앞에 송구하다는 표현을 쓰다가 이 또한 자기연민에 빠진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함께 가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 안에 이는 어떤 회의와 막연함도 주께 내어드린다.
내 안에 이는 불안과 긴장에 대해서도, 그러게 오늘 주님의 말씀을 되새김으로 알 것도 같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11).” 어떠하든 나는 새 노래로 주를 찬송할 수 있기를.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시 98:1).”
묵묵히 주어진 날을 순종함으로 순응하고 사는 게 충성이겠다. 나 하나 돌보는 일도 힘에 겨워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이를 어찌 다스려야 할지 때론 알다가도 모르겠다. 다만 주의 긍휼하심을 바란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 9:15).” 나의 수고와 애씀으로가 아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16).” 나는 다만 아이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약에 대한 부작용인지 몸은 나른하고 며칠째 설사를 하였다. 연신 하품이 나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자니 금세 곤한 잠에 곯아떨어졌다. 너무 하는 게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일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으니 대체로 늦게까지 자는 게 문제다. 딱히 어떻게 손쓸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은 더 어려웠다. 안 믿는 가정에서의 믿음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구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자꾸 쓰여 조급하다가 무력해진다.
내가 나를 연단하는 것 같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생각하고 이를 지켜 애쓰는 게 필요하다. 내가 나를 붙들어 세우는 것도 일이라. 금세 또 실망이 어떤 나른함이 나를 옥죄듯 마구 다루려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어떠하든 기뻐하며 슬픔을 슬픔으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내게도 필요하다. 우리에겐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이 간절히 필요하다. 내가 얼마나 악한지 또 가증한지, 나만 아는 그 염치없음을 주께 고하면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주를 바라고 구한다는 일은 먼저는 내가 나의 육신의 일을 싫어하고 더는 그리로 가지 않는 증거로 나타난다. 내 안에 이는 어떤 불평과 걱정도 실은 이것으로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더는 그 마음을 취하지 않는 일이다.
예전에 따르고 즐기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5-6).” 그런 거 보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붙들려 있는지 누구를 위해 염려하고 기도하는지를 보면 알긴 알겠다. 내가 대체 왜 이 아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어려워야 할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도 그리 두시는 마음으로 저를 대신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7).” 어떻게든 스스로를 변호하고 자신의 의를 굽히지 않으려 드는 세상에서 바로 이 원리,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 그렇다면 내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곧 내 안에 계신 주의 영이 나를 주도하시도록 나는 나의 생각을 쳐 복종시키는 것.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
아이들로 인해 속상하고 누굴 생각하다가 서운하고 어떤 불편한 마음에서 저를 놓고 기도하는 것,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10).” 그렇게 나의 육은 죽고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구나. 그래서 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허투루 여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니,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주를 바라자.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7-8).”
내 안에 이는 이와 같은 온갖 마음을 경계하게 하신다. 곧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15:18).” 그래서 나는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주시는 바대로 살아드리는 삶으로,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9-10).” 이 같은 나의 놀라운 위상은 주의 것이라.
선을 이루려 선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 또한 잊은 채 주를 바라는 삶으로 선이 되는 것이겠다. 자꾸 의식하고 인식하여 모양을 꾸는 일이 결코 아닐 거였다. 무던히 주만 바라며 주시는 날들을 주 안에서 살아드리는 일.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시 98:2).” 보면 그 어느 것도 사람이 이루어 그 뜻을 다 펼친 게 아니다. 주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모두 가능하였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더해주시기를, 나는 입버릇처럼 빌고 구한다. 이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1).” 이로써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이겠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
단회적이며 불가항력적으로 나를 돌이키사 주를 바라게 하셨으니, 이를 알면 알수록 나는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시는 말씀 앞에 붙들린다. 다들 떠나고 모두가 아니라 해도 무던히 주를 바라고 의지하는 것. 그러할 때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느낀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 내 안에 드는 생각부터 저를 향하는 모든 일에서도.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소리가 만국에 드러나기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3).” 혼란한 세상을 살면서 전혀 별개의 날들을 보낼 수 있는 것도 그와 같은 구별하심 때문이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시 98: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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