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31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시편 66:9
늘 하는 것도 없이 받는 게 많다. 시늉만 내는 것 같은데 주의 손길이 풍성하시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1).” 다른 자랑이 없게 하시려고,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 내가 좀 나은 게 있다면, 남달리 좀 잘하는 게 있어서 이를 붙들기라도 할까봐 주는 경계하신다.
그 이유와 목적이 오늘 말씀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 66:10-12).” 말씀 그대로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신다.
그럴만하여 그리 생각하면 여지없이 그게 아닌 것을 알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나는 이제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아멘, 한다. 다른 말을 더할 게 없이 주가 이루신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시 66:9).” 결코 나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보니까 한 번 엇나가면 십 년의 세월이 훅훅 지나는 거였다. 그러는 동안 돌고 돌아 그 영혼은 더욱 황폐하였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비로소 두 손 들고 주 앞으로 다시 나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름은 한다고 한 게 그 모양이다. 나야말로 그런 세월을 세 번씩이나 엇나갔었다. 87학번으로 다른 데 눈을 돌렸던 게 97학번으로 신학부를 다시 공부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는데, 09학번으로 비로소 신대원을 하게 된 것이었으니. 깨어 근신하라는 말씀이 괜한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6).” 버젓이 우린 낮에 속한 자였는데 어둠 속을 헤매었으니 그 길이 오죽했겠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8).” 소망의 투구를 쓰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여야 한다. 쓸데없는 데 마음이 기울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사는 날 동안 주가 두시는 여러 일들 가운데 주의 뜻과 견해를 달리하면 저는 금세 짐승처럼 살아내는 데만 급급할 따름이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9).” 그 값은 엄청났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10).” 어찌됐든 주와 함께 살게 하려고, 그 최후의 승리가 우리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이와 같이 가만히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나 됨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른다. 누가 이런저런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십 수 년 하다 도로 주 앞에 나아오게 되는 것을 볼 때면 덩달아서 참 다행이다,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뿐 아니라 영원히 주와 함께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었다. 이를 외면하는 만큼 다른 데 눈길을 주게 돼 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우리로 저들을 보아 알게 하심이다. 그것은 누구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5:11).” 서로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사명이 여기에 있었다. 아,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구나.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어떤 어려움까지도 하나님은 결코 허투루 그리 되게 하시는 게 아니었다. 나 비록 너무 먼 길을 돌아서, 그러는 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며 싫어하고 마다하는 삶을 살았었는지! 어떻게든 주 앞에 다시 나아오게 하는 자는 복되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 1:8).” 그러시기 위한 게 아닌가. 그저 이 땅의 삶으로 끝인 게 인생이라면 뭐 그리 대단하여 억지를 부리듯 살 게 있나. 참고 견딜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 우리는 장래의 일을 아는 사람으로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9).”
막연하여서 그저 그렇다는 소리로 들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내 이야기다. 날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 백 날 같은 말을 해줘봐야, ‘저기’ 있을 때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여기’ 와서야 비로소 이 말씀이 나를 향하신 구원의 말씀인 것을 안다. 처한 상황에서 주신 그대로를 주의 이름으로 받을 때 이는 마땅히 행하여야 할 사명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먼저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두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정도의 것이 아니다. 주의 기쁨과 평강이 충만한 삶이다. 그러므로 위에 것을 바란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2-3).” 그러자니 때론 죽을 것처럼 고달프고 힘에 겨운 것 같은데, 실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 삶이 곧 지옥이라.
우리에겐 인내를 주신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전엔 이를 피해 멀리 도망하였으나, 그 길이 더 고달프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와 보니 ‘여기’가 천국이었다. 곧 오늘 이 어려움은 주를 바라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6-17).” 당당히 이젠 주 앞에서 탄식한다. 마음껏 주께 부르짖을 수 있다.
나의 가장 큰 특권은 이 모든 것을 주께 맡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22).” 곧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그렇지. 주가 돌보신다는 것. 이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가장 선명하게 느끼고 체험하며 사는 삶이 된 것이다. 전에는 막연하여 그저 추상적인 것으로만 여겨지더니 이제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려질 게 없다는 것으로 감사가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하는 말씀을 힘껏 강조하였다. 내 안을 수도 없이 기웃거리며 농락하고 틈을 노리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시 61:1).” 이는 분명하여 손에 쥔 듯 확실하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66:5).” 오늘 말씀은 어제 증거한 말씀과 이어져 또 한 날을 허락하신 이의 뜻을 굳건하게 한다.
결국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9).” 그러므로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17).” 그리하게 하시려고 나를 오늘에 세우신다.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19).” 이에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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