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2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그러게. 범사에 감사하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그럴 수 있는 마음과 또 환경을 조성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선물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어느 것 하나 값지고 소중하지 않은 게 있겠나?
모처럼 먼 길을 달려 축령산 휴양림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밤길은 아들 녀석이 운전을 하였다. 나의 안달이 병이라. 어느새 어엿한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때론 낯설다. 그러면서 나는 부쩍 늙어버린 것 같아 이상하고 말이다. 어떻게든 좋은 걸 주려 하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들을 보며 늘 우려와 고마움으로 감사한 마음이 중첩되었다. 비온 뒤 여름 끝자락의 푸름은 산세의 기울기만큼 청량하였다. 밖에 나가면 늘 긴장을 해야 하는 나의 병적인 마음도 모처럼 신선한 공기를 쐬며 평안하였다.
늘 누구의 도움과 측은지심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그 사랑의 정도에 감복한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의 정도를 체휼하며 사는 삶이랄까. 송구하고 미안한 마음이면서 감사하고 또 고마울 뿐인 정도의 대우와 관심 속에서 주의 사랑을 가늠해본다. 아이는 여전히 병약하였고, 그 아이를 서로 안고 어르며 품는 일은 서로가 주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주치게 한다. 더는 자라지 않은 아이와 이미 다 자란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자주 할 말을 잃었다. 그러한 나의 곁에 홀연히 늙으신 부모가 계셨으니, 세월이란 참 갸륵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6).” 어떠하듯 장하디 장하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겸손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살아내는 게 주의 사명이 아닐까?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잠 3:21).” 완전한 지혜란 이처럼 나의 사소함으로 주의 긍휼하심을 경외하는 일이었으니,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5:2).” 이는 지켜야 하는 일이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내버려둬서는 될 일이 아니다. 곧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8:12).” 말씀 앞에 선다.
함부로 이를 다 아는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살후 2:2).” 홀연히 늙은 부모 앞에서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는 늙은 아들로서의 나는 이 모든 순간이 감사하였다. 좌우지간 말씀으로 세우시는 생활과 그 가운데에서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 일이란 축복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호락호락한 순간은 없다. 밤 운전을 하는 아이 곁에 앉아 이런저런 요령을 알려주면서도 같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지혜였다. 먼저 살았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그 아쉬움은 되레 더 크고 무거운 것이어서 나는 운전하는 아이에게 조심 또 조심할 것을 내내 당부하였다. 그러한 인생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부디 말씀으로 서고 기도로 무장하며 살기를. 자칫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구렁텅이들 사이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1).” 우리를 도우심은 주의 것이라.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7-148).” 이와 같이 주의 말씀 앞에 앉아 나의 날들을 들어보고 살펴두는 일은 귀하다. 매순간 순간마다 주의 사랑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140).” 읽고 찾아보고 또 묵상하며 이를 두신 한 날 한 날 가운데 나의 사소함으로 감사를 되새기는 일이라니,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133).” 수시로 이는 여러 마음의 근거를 자꾸 말씀에 두는 것이 그 일을 살피라는 말씀에도 합한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4-5).”
내게 두시는 것이 귀하였다. 어디가 아픈 것도 일이다. 어떤 염려와 근심도 사명이다. 이로써 주를 바라는 모든 곤고함이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123).” 말씀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피곤할지라도,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그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시는 일에서의 생활이라니!
이를 생생하게 누리며 감사하며 더욱 바라는 게 고달픔 가운데서 더욱 크다. 홀로 운신을 못하는 아이를 둘러업고 이를 건사하느라 자신의 생을 다하는 젊은 부모의 노고가 귀하였다. 그 어떤 훌륭한 일보다 고귀하였다. 물론 그 어린 것이 내내 고통을 느끼고 뒤틀린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모습 또한 감격스러운 일이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이를 감사로 받아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어디 있겠나?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시 25:8).” 말씀이 나의 한 날에 제격이다. 나를 교훈하신다. 늘 주를 바라게 하신다. 주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다. 두신 바 나의 날들의 고달픔까지도 주의 마음이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세상의 그렇지 못한 시선과 또 저들의 견해를 견주어 싸우며 사는 일.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시 119:124).” 나를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125).” 아니면 금세 또 눈을 돌려 어디 기웃거리기 일쑤여서,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107).” 말씀대로 사는 삶이 복되었다. 그러자면 삶을 늘 돌아보되 말씀으로 말씀에 이르는 일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6-17).” 내게 새겨 이르고, 이를 나의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사명이었다. 살아서 사는 날 동안 주를 곁에서 모시고 사는 일이 귀하였다. 그러므로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 것 같고 세상은 그럴 때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이 여겨지나 그 인생이 늙어 기한을 다하면 은연중에 안다.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6).” 우리로 주와 가까이 하는 것을 막는 일들에 대하여는 과감히 물리쳐야 하는 일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1-12).”
반드시 그 날은 온다. 천년만년 어리고 젊고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다 늙으신 부모 앞에서 또한 여전히 병약하여도 주신 생을 다하고 있는 한 어린아이의 무던함 앞에서 나는 숙연하여진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6-17).” 곧 주의 은혜라. 그와 같은 가족과 시간과 마음을 허락하시는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주일 아침에 마음을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들과 사람들과 누구와 누구에 대하여 주의 이름을 부른다. 부디 저들에게도 주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이 함께 하여 주시기를. 이 맛을 알게 하시기를,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103).” 이로써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 사는 날 동안 나의 길을 비추시기를. 그러므로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147-14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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