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전봉석 2018. 11. 11. 07:20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6-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시편 36:5-6

 

 

오전에는 아이들 시험공부를 해주고 아내가 점심께 나왔다. 멀리 돌면서 자전거를 탔다. 햇살은 고운데 바람이 차가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양떼목장’이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재잘거렸다. 구리한 똥냄새가 났다. 순한 양들은 아이들의 손에 들린 풀을 받아먹었다. 나는 양지바른 곳에 앉았고 아내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바람이 차가워서 옷을 여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똑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누구는 주의 은총을 맛보고 누구는 이를 모른다.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36:2).” 그 차이는 엄연하여서 모든 것으로 드러난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늦가을의 정취를 맛보면서도 주의 선하심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자랑할 수도 있는 거였다.

 

오늘 말씀은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6-7).” 처음과 마지막이신 이루심이다. 자신의 기준과 회의와 판단과 갈등과 주장에 대하여, 이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그것은 생명수 샘물이다. 더는 목마르지 않다.

 

가만히 눈을 감고 가을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눈 안에 환한 온기가 들어왔다. 공원 한편에서 솜사탕을 파는 노인의 손길이 분주하였다. 그 뒤로 ‘애완견의 목줄을 풀지 마시오.’ 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듬성듬성 피어있는 억새풀이 노랗게 흔들거렸다. 아내는 내가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또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정교하게 균형을 잡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제 발을 구르면 중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균형을 유지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시 36:5-6).” 이를 맛보아 알 수 있는, 새 마음을 주심이 은총이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하여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27).” 그것으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생각하다보면 오늘의 내가 때론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낯설다. 누구 못지않게 세상을 좋아라하고 사람을 찾고 어떤 유혹을 사무치도록 따르던 시절도 있었는데, 새 영을 내 속에 두시고 새 마음을 나에게 주되 내 안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의 말씀을 행할 수 있게 하셨다.

 

곧 이 모든 게 주의 것이고 그 주인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셨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7).”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 이보다 더 좋은 처음과 마지막이 또 있을까? 영화를 보거나 누구 사연을 듣거나 어떤 이야기를 읽으면 온통 그 안에 난무하는 주제는 하나님 없이 고뇌하는 일들이다. 사랑도 지겨워 돈이면 최고인 줄 아는데 결말이 다 똑같아서 황망할 따름이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그러기를 소망한다. 참되고 경건하고 옳으며 정결하고 사랑받을만하고 칭찬받을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 기림이 있든 ‘이것’을 생각하는 말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저만치 떨어진 벤치에는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손주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 내외로 보이는 이들은 한 뼘쯤 떨어져 둘레길을 산책하였고 재잘거리며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우리가 어찌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무엇으로 칭찬받을만하고 사랑을 받을만할 수 있겠나? 어떤 덕이든 기림이든 우리의 공적은 없었다. 다만 주를 의뢰할 뿐이고, 의뢰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 17:7).” 내가 이처럼 평안히 살 수 있는 것은 주의 은혜라.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 나는 쉬느라 의자에 앉아서도 그리 여겨졌다.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8).” 나의 날이 주 앞에 청청한 것을 안다. 아무런 길쌈도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에 더하시는 주의 은혜가 귀하였다. 다만 주를 의지하고 의뢰할 따름이어서 그 복이 어떠한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이제 더는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더는 억매이지 않는 것이다.

 

사느라 먹고 사는 일에 더는 억매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 사랑을 좇고 사람을 바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아등바등 살던 때를 기억한다. 그러느라 하나님은 뒷전이었고 말씀은 귀에 들리지 않았으며 기도의 전부는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연연하는 것이었으니. 누가 그러는 게 이제는 안타깝다. 여전히 저기 서 있는 친구들이 불쌍하다. 아직도 그러고 사는 게 안 됐다.

 

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더는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않음이다. 말씀 앞에 아멘 한다. 이를 온유함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은총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 1:21).” 죽을 둥 살 둥 기를 쓰고 사는 세상에서 잠시 동떨어진 공간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장면이 느리게 흘러갔고, 바람에 이는 억새만이 부르르 몸을 떨며 노란 햇살을 훑고 있었다.

 

처음이고 마지막이신 하나님,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10).” 오늘 말씀은 이를 깨달아 알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시 36:7).” 나는 이제 주저하지 않고 주께 피한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주 앞에 평온히 살 수 있는 게 복이었다. 다시 발을 구르며 자전거를 밀어 먼 길을 돌아오는 동안 어느새 등짝에는 흥건하게 땀이 고였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5).”

 

이처럼 주 앞에 앉아 주를 바라게 하신다. 그리하여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시 36:5-6).” 이를 알면 더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 것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46:10).”

 

이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3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