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가 주께 피하오니

전봉석 2018. 12. 16. 07:28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하였더라

창세기 34: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시편 71:1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강간하였다. 야곱의 딸 디나가 수치를 당하였다. 앞서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33:19-20).” 엘은 전능자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엘엘로헤, 저는 그 모든 감사와 감격의 전능자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영광을 올려드렸다.

 

그리고 벌어진 일로써 오늘 본문은 매우 당혹스럽다. 너무 극적이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참변이라, 디나의 두 친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보복을 한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한데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34:30).” 하며 우려를 금치 못한다.

 

과연 어찌 해야 옳았을까?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하였더라(19).” 흔히 우리가 사랑이라 여기는 허상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저가 ‘그 일 행하기를 지체하지 않았다.’ 원하면 취하고 취한 것에 대하여는 각자의 의미를 부여하는 세상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시 71:1).” 이와 같은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놓아두는 마음과 행동과 취향과 어떤 선호에 대하여 지체하지 아니하는 세상을 살면서 그 옳고 그름을 물을 길이 없다. 그러할 때 무엇에 소망을 둬야 하는지,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14).” 무엇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지,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21).” 그저 자기감정을 부추겨 대응하려들면 더욱 비참하고 초라해질 뿐이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창 34:31).”

 

저쪽은 사랑이라 부르고 이쪽에서는 창녀로 대우함을 느끼니, 그 사이에는 끔찍한 현실뿐이라. 전날에 누렸던 충만함의 ‘엘엘로헤 이스라엘’의 영광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헛되어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마치 더는 아무렇지 않을 것처럼 제단을 쌓고 그것으로 해피엔딩일 줄 알았는데,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3).”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생에 대하여,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6-7).” 그 모든 것이 때가 있고 지나가며 돌아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이어서.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11:10).”

 

우리가 주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이는 반복되어 괜한 우려처럼 여겨질 때도 있겠으나,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숨어있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33).” 이런저런 일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 성경은 우리를 일깨우신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사 46:9).”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이 어찌 나의 한 해를 인도하셨는가. ‘엘엘로헤’의 날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은혜가 아니었던 게 없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 말씀을 붙드는 일이 가장 귀하였다. 아내는 장모와 함께 동대문 창신동 집을 수리하러 갔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하자보수여서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문득 우리네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화이다.

 

딸애는 사이버대학교 무슨 전공과목을 마지막 학기 시험을 치르고, 나는 혼자서 교회에 있다 오후께 들어왔다. 누군들 사연이 없을까. 며칠 인터넷을 뒤져 내 손으로 처음 지팡이를 구입하는 날이었다. 전에 누가 준 것을 필요에 따라 쓰다 헐거워져 덜거덕거리는 것을 더는 어쩔 수 없어 그리 되었다.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 게 있다. 살면서 부여되는 여러 일들이 결코 허투루 주어지지 않는다. 디나는 어쩌다 그리 끔찍한 일을 당했을까?

 

경계하지 않을 때 방심은 스며든 곰팡이처럼 번진다. 설마, 하는 것이다.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 우린 그럴 때면 늘 ‘그럴 수 있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게 뭐, 그 정도가 어때서. 한데 붙들고 있는 말씀이 경고하였다. 그래,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어쩌겠나? 그럴 수 있지! 하고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그러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어쩌다 그리 되는 일이 실은 그리 되게끔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창 34:1).” 아차, 싶을 땐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늘 더디니까 더디어서 가벼이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반역하는 족속이여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12:25).”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 그 계절에 어울릴 전도서를 곱씹으며 묵상하는 일은 유익하다. 너무 과장하여 광신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같은데, 내 손으로 지팡이를 고르고 이를 주문하는 마음이 이상했다. 돌아보니 참 먼 세월 동안 고달프고 힘에 겨운 날들도 많았는데, ‘옛적 일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나를 어찌 인도하시고 함께 하심으로 나의 전능자로 ‘엘엘로헤’하셨던가. 이 세상은 지나가도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거하리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전에 같으면 마음이 서운했을까? 어떤 서러움이 또는 회환이 목을 조이듯 마음을 어렵게 하였을까? 나는 짐짓 덤덤하여서 덤덤하게 그리 여기는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괜찮았다. 저녁 늦게 창신동 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내가 12월의 세 번째 토요일에 내가 벌인 일을 두고, 지긋한 눈빛으로 지팡이를 산 것을 수긍하였다. 어느새 각자 늙어가는 것에 대해 이제 조금씩 익숙해지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이었다.

 

젊을 때, 한참 때, 그래도 되는 것처럼 여기며 살았던 우리의 여러 실수와 허물을 주 앞에 내려놓으며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가끔씩 돌이켜 주 앞에 나의 날을 떠올리면 부끄러움뿐이라. 주의 인자하심이 아니었다면 단 한 시도 더 살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32:7).” 오늘에 이르러 주를 바라며 주의 말씀 앞에 겸허히 설 수 있게 하신 것만으로도 은총이라. 전에는 눈물겹던 나의 지난날들에 대하여 이제는 회환에 젖기보다 그리하여 주의 긍휼하심을 더욱 생생하게 누리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어서 복되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시 71:14).”

 

오늘 말씀이 나의 결연함도 어떤 다짐도 무색하여 온전히 주만 바라게 하시기를, 기도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를 위로하소서.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21).” 곧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