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애굽기 4:12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편 91:14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었다. 서른여섯,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에세이다. 수필은 사실이다. 허구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의 언어다. 저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죽음을 받아들인다. 저가 인용한 브루크 폴크 그레빌 남작의 글에서 한참 머물며 오래 되새김질 하였다. 그것도 그런 것이 설교 원고를 작성하면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자.’는 대목의 글을 쓰고 난 뒤였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곧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지혜자는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정의하고 있었다.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전 9:4).” 결국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3).”
그러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황사로 뿌연 겨울 날, 햇살이 듣지 않는 창가에 앉아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나는 설교 원고를 작성하면서도 새로 온 저의 책을 읽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그러다 잠깐 펼쳐 본 부분에서 남작의 진술이라니!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각설하고 저의 말이 설교 내용을 주도하고 있던 주제와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종종 나는 이와 같이 무작위로 선별하여 책을 읽다 주시는 말씀과 연관되는 어떤 예비하심 또는 치밀한 연결이 놀랍기만 하다. 우연처럼 어디 책에서 인용되어 소개되는 내용을 적어두고 있다가 주문하여 새로 읽으려던 것일 뿐인데, 하필 그때 설교 원고의 대목도 그 부분이었으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딸애는 몇 주째 야근이라, 끝나고 열한 시에 도착하는 중간에서 아이를 마중하였다. 또 아이는 새로 취직한 공장이 바빠서 토요일에도 1시까지 근무를 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그러니 성경공부를 어쩔까? 비록 같이 시편을 한 곳 읽고 대화를 나누고 그것으로 필사를 하는 게 전부인 것이지만, 그나마. 만일 아이가 피곤해서 어려울 것 같다 그러면, 그래도 오라 하기가 어떨지? 망설이고 있을 때 아이가 먼저, 목사님 끝나고 글방으로 갈게요! 하고 답을 주었을 때의 고마움이라니.
이런 표현이 참 부적절하다는 걸 알지만 여느 건강한 육신의 아이들보다 백배 천배는 더 낫다. 조금만 무슨 일이 겹치면 이걸 미루고 저걸 부여잡기 일쑤인데. 그와 같은 마음과 이내 그리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시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오늘 아침 본문의 모세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내 이야기 같아 면구스럽다. 미적거리고 또 변명하고 그래서 사양하는 저를 하나님은 참고 또 설득하시고 이끄신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
그럴 때가 얼마나 잦은지. 느낌으로 또는 마음으로 알겠는데, 그래도 주춤거리고 망설이며 혹시나 하면서 미루기 일쑤인 나에게 ‘세월을 아끼라.’ 성경은 호통하신다. 그리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시 91:14).” 내가 주를 사랑하였은즉 그런 나를 주가 이끄실 것이다. 나로 사랑하게 하셨으니,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15).”
이와 같은 책을 읽을 때, 설교 본문을 묵상하고 되새기며 인도하심을 받을 때, 아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걸 미루지 않을 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때론 불안이 먼저 엄습할 때도,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성경은 나를 붙드시는 것이다. 자칫 방심했다가 세월은 쏜 살 같이 날아가고, 죽음은 성큼 목전까지 치밀고 들이닥치는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때론 내가 누굴 거들 겨를이 없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도 그 마음에 열심을 다하는 아이의 눈물겨운 분투가 있는가 하면, 사지육신 멀쩡하고 잘난 부모들의 보살핌이 복에 겨워 늘어지고 내팽개쳐 자신을 방치하는 놈도 있었으니. 오후께 전화라도 할까 하다가 엊그제 통화했는데 별다른 답이 없으니 며칠 더 기다려보자, 하고 그만두었다. 이 모든 게 주의 은혜라. 나는 모세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차라리 더 나은, 괜찮은 사람을 찾는 게 나았을 걸.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저런 걸 또 달래고 어르고 확신을 더하며 그 마음을 부여잡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놀랍기만 하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1).” 저의 주저함에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2).” 주님은 그렇지 않음을 일일이 증명하신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3-5).” 그와 같이 또 참고 또 기다리며 또 설득하고 또 상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나를 그리 대하셨던 것을 떠올린다. 내가 저 아이에게 싫증내며 나 몰라라 하고 싶은 마음을 부끄럽게 하신다. 그래봐야 아무 성과도 없을 것 같아 지레 포기하려는 마음을 돌리시는 것이다.
나름은 월요일마다 잊지 않고 전화라도 하려고 메모해두었다. 외면하고 모르는 척 하려는 마음을 다잡아 쪽지에 적고 환기시킨다. 그러면서 주께 고한다. 아내와 예배 중에 저를 언급하고 위하여 기도한다. 달리 더 좋은 방도가 내게는 없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전 7:3).” 그처럼 곁에 두시는 어떤 불편함, 슬픔에 대하여 그 유익이 주를 더욱 바라며 그의 도우심을 사모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로 씨름한다. 그런 이야기가 누구에겐 크게 들리고 누구에겐 전혀 들리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였으니,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2).” 곧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시 81:7).” 그렇듯 하루하루의 날들 가운데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일이라니.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 주가 하실 것이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17).” 나는 다만 딛고 설 뿐이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20).” 이에 시편은 확성기를 들고 큰 소리로 들려준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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