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는 선하시니

전봉석 2019. 1. 14. 07:08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13:20-22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5

 

 

모든 문제는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문제다. 가장 기본 전제로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우리 대대에 이른다. 그 성품에 따른 ‘어쩔 수 없음’이 종종 우리에게는 ‘문제’로 여겨질 수도 있다. 곧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게 아닐 때, 우리 힘으로 어찌 좀 이뤄보고 다루고 바꾸어 취할 것을 도모하려 할 때의 거스러미 같은. 그래서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을 기본 전제로 하여 접근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니.

 

그리하여 하나님이 어쩔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기어이 사람으로 낮아져 인성을 입고 사람으로 사시다 그 죄의 값을 짊어지심으로 죽으셔야 했던, 하나님도 더 나은 방법이 있었으면 그리하셨을 것이라는, 다른 길이 없었다는. 말씀을 증거하면서 내 안에 먼저 이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문제로 여겨지는 문제를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해결이 안 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고로 오늘 말씀은 이를 함축하고 증거한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0-22).” 하나님은 우리 앞에 가신다. 낮이든 밤이든 우릴 떠나지 않고 지키신다. 우릴 위해 죽어주시기까지 그리하셨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우리가 어떤 행위에 따른, 그래서 어떤 위치에 의한, 결과로써의 보상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두신 증표가 사랑이었다. 내가 나 아닌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가족을 이뤄 혈연관계가 되었든, 서로 맺어짐으로 교회가 되었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아이가 아홉 시도 안 돼, ‘목사님’하고 외치며 저만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부터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어, 누구 왔냐.’ 하고 나 역시 큰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일주일 동안 어땠니? 힘들지는 않았니? 다들 어떠니? 하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모든 게 감사하다. 먼저 일기를 쓰며 지난 일주일 동안의 일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나는 모링가 차를 한 잔 내어주고 설교 원고를 다시 읽으며 강조점에 밑줄을 근다. 아이가 글을 다 쓰면 소리 내어 읽는다.

 

맥락도 문맥도 이어지지 않는 장황한 글을 소리 내어 읽다보면 아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글로 다하지 못한 말을 하고 있을 때 아내와 딸애가 오고, 같이 얘기하다 웃는다. 아이의 두서없는 대답과 황당한 질문에 놀라기도 하면서, 이는 모두 우리 안에 두시는 사랑이었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배우면서, 사랑으로 서로에게서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화목은 곧 우리에게 두신 직분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그러므로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19).”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 하나님의 성품에 의한 하나님도 어쩔 수 없었던 그 본질의 속성에 따른 화목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그럴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곧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를 우리가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자로 부르신 데 따른 은혜였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분연한 하나님의 목적에 의한 목적을 위한 목적에 따른 일이다(엡 2:16-18).

 

아이를 보고 아이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데 종종 놀라곤 한다. 누가 오기로 해서 저를 대표기도로 세웠으나 오지 않아 아이가 대신 대표기도를 하였다. 이제 저의 무논리의 언어가 주의 마음으로 들리고 들리고 이해가 되어 함께 아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아이는 다니는 교회 청년부에서 친구초청 파티가 있어 점심을 같이하지 못하고 일찍 서둘러 갔다. 격려하고 응원하며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었다. 우리에게 있는 어쩔 수 없음, 그 속무무책의 어떤 위기와 절망 앞에서 우리는 더욱 선연한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목격하는 일이라니! 우리의 가장 기본 명제,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100:5).” 하는 오늘 말씀이 뚜렷해진다.

 

어떠하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성실하시다는 기본 본질의 성품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는 문제 아닌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2-23).”

 

우리의 일은 이와 같은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일이다. 믿음에 거하며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아프고 싱겁고 실의에 빠지고 낙심하고 절망하여 좌절이 목을 조여 온다 해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 그는 인자하시고 성실하시다는 것.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어떻게 나를, 우리를 사랑하셨는가를 묵상하다보면 모든 문제는 더는 문제일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우리에게는 적이 없다. 저들과도 화목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란, 그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에 붙들려 사는 일이다. 저는 결코 천사를 붙들어주시지 않고 우리 사람을 붙들어주셨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6).”

 

이와 같은 말씀의 증거가 있어 감사하다. 괜히 며칠 마음을 써서 그랬나, 주일 오후 내내 등짝과 허리가 아파 끙끙 앓았다. 테이프를 붙이고 사이사이에 파스를 덧붙여도 끙, 소리를 내며 돌아누워야 했다. 보면 늘 ‘왜 하필!’ 싶은 게 발목을 잡듯 마음을 어렵게 한다. ‘왜’라는 의문 앞에 우리는 번번이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이를 내게 두시는 고통까지도.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7).” 그것까지도 주의 이름으로 받고 위하며 화목할 수 있게 하는 일. 아픈 게 일이라 나는 여느 사람과의 관계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늘 더 어렵다. 그러니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는 만큼 그것과도 더불어 화목해야 한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짜증과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화로 끓어 나를 휘어잡는다 해도 그것까지도 주 앞에 내어 맡기며 붙들릴 수 있기를.

 

곧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출 13:9).” 나에게 두신 고통이 나로 하여금 주가 이끌어내신 애굽의 때를 상기시킨다. 이를 내 손의 기호와 내 미간에 표로 삼고, 주의 말씀만이 내 입에 있게 하라! 주의 강하신 손이 나를 이 세상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주가 함께 하심이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오늘 또 이 새로운 날을 맞이하여 살아가게 하심이었다. 그러는 날 동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21-22).” 나는 주의 백성이라. 그의 자녀라. 저는 나를 떠나신 적이 없다. 성령으로 들리고 보이고 그리 여겨지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믿음의 확신을 갖고 오늘도 굳건하게 말씀의 소망으로 나아가는 것이겠다. 고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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