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가 알지어다

전봉석 2019. 3. 11. 07:0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민수기 2:3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시편 4:3

 

 

맡기신 한 생을 사는 동안 곁을 같이 하게 하신 사람들에 대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사는 것이다. 또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서로 합하고 의지하고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하는 말씀으로 축약할 수 있겠다. 이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것이니, “다 준행하여사는 것으로 복되다. 각기 주신 그 종족의 품이 귀하였다. 어떠하든 인생은 행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족들이 모두 모일 때면 드는 생각이 하나님의 거룩이다. 구별됨에서 감사가 나온다. 어찌 그 가난했던 시절을 살아왔고, 파란만장한 인생의 구구한 사연들이 어느 가정인들 없었겠나만.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57:15).”

 

우리로 돌이켜 지난 날로 돌아가지 않게 하시려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셨다. 이로써 겸손하게 하신다. 하나님만 바라게 하시려고, 그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룩하신 이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그러기 위해 가장 적합한 구성원으로 가족을 이루어 함께 행진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34:10-12).”

 

아버지 생신을 이유로 모처럼 형제들이 모였다. 다들 주일 사역을 정돈하고 오는 길이라 피곤하고 늦은 시간이었다. 전날에 아내는 딸애와 함께 부산을 떨었다. 덕분에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고 복되게 하였다. 우리가 이런 대열을 이뤄 사는 것은 주의 은혜다. 특별히 복을 더하신 주님의 은총을 고백한다. 서로 반목하고 대항하여 붕괴된 가족들이 많은 이 시대에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다들 주어진 각자의 행진 대열도 맡기신 것이겠으나 이처럼 함께 모여 서로를 위할 수 있는 그 시간 동안은 주어진 삶을 같이 할 수 있어 귀하였다. 이는 거룩이다. 구별됨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목적이다. 명령인 것이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그러기 위해 그러려고 하면 할수록 그럴 수 없는 것을 절감하면서,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16).”

 

그래서 같이 행진하게 하셨다! 이에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것이 거룩이었다. 특별히 우리를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부터가 구별이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었다 하지 않으셨다.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은 사람뿐이다. 오늘 날 우리는 우리 나름의 윤리와 도덕으로 가정을 이루고 예를 따르고 덕을 다하지만 엄연한 가치 붕괴는 반목과 이혼을 다반사로 만들었다. 여느 가정이면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고 비틀린 자아는 내면화되어 서로를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가르치는 아이들 열에 아홉은 그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다. 증오와 갈등이 가득하나 해소될 길이 없어 자기 안으로 축적하고 쌓아두어 기형적인 마음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참견이 되었고, ‘너를 위하여는 억압의 단단한 무기가 되었다. 자신의 희생을 들추어 서로의 복종을 강요한다. 그러면서도 보면 다들 괜찮다고 하니, 오죽하면 이성복 시인은 <그날>에서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픈 사람이 없었다.’고 했을까?

 

오늘 본문은 이에 따른 성경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그의 말씀을 따라 준행하여, 각기 허락하신 종족과 조상의 가문으로 따른다. 또 하나 자기들의 기를 따른다는 것을 확장하면, 우리 곁에 두신 가족 외의 관계에까지 미치는 표현이 아닐까? 나는 요즘 서로 잊히는 일 또한 어느 시점에서는 귀한 스침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어떻게든 그 앎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러느라 정작 지금 내 곁을 지나는 관계를 소홀히 여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었으니.

 

다시 말해서 지나간 사람도 있고 새로 오는 사람도 있겠으나 지금 있는 사람이 온전한 행진의 대열을 이룬다. 몇 번씩 연락을 하고 안부를 묻고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데도 소용이 없는, 이미 지나간 사람에 대하여는 놓아두는 것도 예의다. 자꾸 미련을 두어 그리움을 들쑤시듯 마음을 헤집을 필요가 없다. 그러느라 정작 지금 같이 행진하는 이와의 보폭이 어긋나고 그 대열에서 자꾸 이탈하게 되는 일이면 더욱이나! 그래서 주소록에서 지우고 카톡 명단에서 숨긴 친구들이 많다.

 

잊힐 수 있는 관계로도 귀하다. 저에게도 내가 자꾸 발목을 잡듯 안부를 강요하고 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아가 일상에서 벗어난 대열은 같이 행진할 수 없는 것이다. 대오를 벗어난 사람에 대하여는, 비록 나의 기억에서 멀어진 것 같고 관심에서 더는 희미해졌다 해도 성령이 저를 이끄실 것을! 하나님은 나를 그처럼 사랑하시며 다시 군오에 들어 행진을 같이 할 수 있게 하신 것처럼, 필요하면 저들 누구누구에 대하여 또한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도 하지 않을까?

 

한참 겉돌 때, 세상을 좋아하고 안 믿는 친구들을 선호하며 살 때는 가족들의 대열이 여간 불편했던 게 아니다. 명절에도 어쩔 수 없이 모이긴 해도 겉돌 듯 혼자 밤낚시를 갔다가 뒤에 잠깐 합류하기 다반사였고, 같이 뜻을 모아 주를 바라고 교회를 이야기 하고 사역을 나누는 일을 불편해하였다. 그랬던 나인데도 주님은 끝까지 동행하셨고 돌이켜 나의 잃었던 대오를 다시 정비하여 보폭을 같이 하게 하신 것이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종종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때 나는 버려지고 이탈한 채 잊혀도 될 거였다. 더는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떠돌다 생을 다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같이 가문을 이루고 종족을 갖추었다.

 

영적으로 우리는 모두 같은 족속이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주의 뜻은 오직 하나다. 아무도 멸망에 이르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오늘도 참으시고 기다리신다. 같이 할 수 있는 이를 곁에 붙이신다. 가족은 물론이고 우리의 동행은 저 본향을 향한 행진을 위한 것이다. 그러할 때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복된지!

 

이제 늙으신 나의 부친은 이것을 복이라 하였다. 하나님이 더하신 복의 복임을 고백하였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14).”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이 새롭게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이 길을 가는 동안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그 궁극적인 이유는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이를 시인의 표현을 들어 정리하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4:3).” 이는 주의 택하심이라. 한데 우리를 위하여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곧 우리의 가장 복된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의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다.  곧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