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삼상 3:21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1:5-6
어떻게 하시려는 것일까? 종일 그런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무얼 하시려는 것일까? 도저히 전철로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차를 운전하며 길 안내를 따라가다 너무 차들이 많은 길로 인도해서 낚시터 가는 산길로 해서 빙 돌아서 갔다. 간신히 아이 병원 근처에 도착하고 하필 점심을 먹기 시작한 터라 차에서 기다리며 한숨 돌렸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삼상 3:18).” 개방병동이라 출입은 자유로웠으나 선입견 때문인지 다들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아이는 반가워하였고 같이 나와 산보를 하였다. 와해된 언어와 행동은 한층 심해져 불안해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주일날 오후 엄마와 무슨 질문지를 작성하다 폭발했다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뭐라 비난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는 소릴 여러 번 하였다. 한여름의 햇볕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불어 시원하였다. 우리는 그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하여 병실로 돌아갔다. 침대에 앉아 아이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었다. 자꾸 울먹울먹하여 혼났다. 또 올게! 하고 돌아서려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돌아오는 길이 멀고 지루하고 불안하였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21).” 친구가 전화를 하여 누가 어느 대학 국문과 교수로 지원하려하는데 기독교 학교라 교회 추천이 있어야 하고 무슨 서류가 필요하다며 해줄 수 있나 물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으나 너는 제발 교회 다시 나가고 정신 좀 차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뭐라 한들 이런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어 시시콜콜 지금 당면해 있는 나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18).” 하는 말씀 앞에 앉는다. 그때에 주가 자기를 나타내실 것을 믿는다.
무사히 글방에 도착해서야 내가 점심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와 같이 먹을 생각으로 점심 전에 출발했던 것인데, 어찌 될지 몰라서 간다고 말도 않고 갔던 길이었다. 같이 있던 두어 시간도 아이의 상태와 나의 불안이 겹쳐 더욱 긴장을 했던 모양이었다. 아이엄마가 아이 상태를 궁금해하여 통화하였다. 뭐라 말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어줍을 뿐이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주님을 바라는 일이 나의 일이었다.
오후께 누가 건너왔다. 저이는 전신마비인 조카아이를 돌보며 나라에서 근근이 보조금을 받는 것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면서 여느 법인사업자들의 세무 관련된 일을 봐주고 얼마씩 벌이를 한다고 들었다. 처음 우리 교회가 이사 올 때 옆에 있던 사무실 사람이다. 지금은 주인 사장의 세무 일을 한 달에 한두 번 와서 처리해주는 일을 한다. 그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어찌 지내는지 근황을 알려주곤 하였다. 이번에 어디 기업체에서 후원을 받았는가보다. 어차피 세금이 많이 나가는데, 좋은 일에 기부하시라고, 그럼 얼마쯤이라도 세금을 환급 받을 수 있으니 하고, 3년을 조언하여 얻어낸 후원금이라고 했다. 장애아이는 보치아 선수로 활동하는데 아무런 지원이 없어 애를 태우던 터라 저이에게는 단비 같은 후원금이었다. 그런데 그에 따른 기부금영수증을 발급 받으려고 사방으로 수소문을 해도 다들 거절을 하더라며 서러움을 호소했다.
아이가 속한 뇌병변 장애인 단체에서도, 아이가 속한 장애인 학교나 소속 운동기관에서도 모두 거절을 당했던 모양이다. 것도 그럴 것이 저들은 모두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이 되는 곳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저이는 그것을 우리 교회에서 종교기부로 하여 기부금영수증을 해줄 수 있는가 물었다. 당장 아는 게 없어 서로 알아보고 그럴 수 있으면 그러자고 하고 돌려보냈다. 나는 몇몇 지인에게 물어보다 세무서에 직접 문의를 했다. 이런저런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무방할 것 같았다. 저녁에 전화를 하여 그리할 수 있다고 하니 저이가 울먹거리며 고맙다고 하였다. 내가 받을 인사는 아니었다. ‘내 양을 먹이라.’ 하신 주의 음성이 크게 다가오는 하루였다. 비록 내가 하는 게 참 보잘것없는 것이기는 하나, 말씀 붙들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5-6).” 나는 아이엄마에게도 그리 말해주었다.
무슨 말로 위로하고 어떤 것을 더한들 팍팍한 우리 삶이 좀 나아질까? 사는 날 동안 서로 이고 지고 가는 생의 무게는 때로 감당할 수가 없다. 지쳐 쓰러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더욱이 주를 더욱 바라고 의지한다고 하는데도 그 생이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고 오히려 더 고단하고 암담한 날들이 이어질 때, 나는 과연 무엇으로 위로하고 주께 인도할까? 얼마라도 병원비를 조금 보태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는데, 가끔은 되어지는 일이 내 의도가 아니어서 나는 가만히 있을 뿐이다. 가네 못가네, 하네 못하네, 나 혼자 끙끙 앓는 일이야 나를 정하게 하시려는 것이고! 하나님은 대체 무슨 일을 이뤄 가시려는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4).” 너무 지나치게 수동적인가 하였더니 그게 아니었다. 또 올게! 하고 돌아서며 아이와 손을 잡을 때, 용기 잃지 말고 주만 바랍시다! 하고 아이엄마에게 말해줄 때, 딱히 문제될 게 없으면 되는 쪽으로 해봅시다! 하고 저이를 위로할 때 내 안에 이는 내 마음은 결코 나의 마음이 아닌 것이다. 아내와 딸애와 둘러앉나 저녁예배를 드리면서 하루 동안의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였다. 주의 마음으로, 주의 사랑으로, 우리 곁에 두시는 이들을 대할 수 있게 하시기를. 아내는 호들갑을 떨 듯 지난주에 관둔다고 그만두었던 아이가 도로 왔다며 놀라워했다. 한참 사춘기라 모든 걸 포기하듯 더는 담 쌓고 다 그만두겠다던 아이인데, 아이엄마는 죄송하게 되었다며 도로 사정을 하고 아이를 맡기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안의 우리 마음도 우리 것이 아니다.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렘 3:15).” 주가 하신다. 보면 늘 그렇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나대신 이 일을 다 행하시는 이이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어제 하루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벌써 까마득하나 어느 것도 내가 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엊그제 묵상한 말씀을 사랑할 뿐이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 119:49-50).” 주가 내 안에 두신 소망이다. 이 말씀이 나를 살리셨다. 그렇듯 저들 하나하나를 살리실 것이다. 고난 중의 위로라. 말씀밖에는 답이 없다.
누가 결국 교수로 임용이 되든지, 보치아 선수로 후원을 받으며 활력을 얻든지, 병원 치료로 보다 나은 정신으로 살아가든지, 우리의 사는 날들은 다만 저 하늘의 영생을 향하는 여정일 뿐이다. 믿거나 말거나, 당장 손에 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살거나 어쩌거나,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그것이 이 땅의 일로 그치면 그만인데 영생의 문제가 걸린 일이어서 나는 자주 오금이 저린다. '정신 차리고 다시 교회 다녀, 이 자식아!' 하고 친구에게 목소리를 높인들. 그저 늘 사느라 사는 데 아등바등, 나는 그게 무서운 것이다. 아이의 입원치료도, 누구의 구구한 인생살이도 그저 그것으로 끝이 아니어야 할 텐데!
부디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 121:7).” 나의 하루 동안에 만나고 펼쳐지는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8).” 하여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 3:19).” 이로써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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