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7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34:1
‘인생의 밤’은 찾아온다.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가리라(욥 36:20).” 더는 어쩔 수 없는 그때에 주의 성전에 서는 자는 복이 있다.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시 77:7).” 괴로움은 종종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를 엄습한다. 그러할 때 오늘 시인은 내가 취할 수 있는 자세를 분명히 일러준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134:2).” 손을 든다는 행위, 내가 가진 모든 수단과 간구도 내려놓고 항복을 의미한다. 다시 생각해도 순응은 강한 자의 것이다. 아이는 기어이 예배에 오지 않았고 나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간신히 예배를 드렸다.
나의 간절함은 어디서 오는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3).” 이것마저도 주의 것이라. 결코 죄와 사탄과 고통을 지으신 적이 없으나 그것까지도 주가 부리시는 것이었으니!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 16:14).”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은 훼손당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23).” 혼자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고통은 나눌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것이어서, 아이의 상태나 아이엄마의 괴로움을 나는 짐작할 뿐 달리 어떻게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주를 바랄 수 있다는 것.
인생의 밤에 주의 성전에서 손을 들고 주를 송축하게 하심이 은총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어쩌면 하나님의 극단적인 사랑은 내버려두심이 아닐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문득 생각이 들기를 아예 성경에 거론조차 되지 않는 인물에 대하여는 그 존재의 의미조차 가름할 길이 없는 셈이다. 가령 태중에서부터 버림 바, 택함을 받지 못했던 에서와 같이. 아니 의미조차 의미가 없는 존재도 있는 것이겠으니, 오늘 말씀은 이를 묵상하게 한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이미 버리신 하나님의 그 마음에 대하여 나는 묵상하다 더는 두려워 생각하기를 멈춘다. 그러니 어떤 괴로움 앞에 두 손 들고 주의 성전에서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복에 복이 아니겠나?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34:1).” 결국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1:2).” 고통은 선명하게 나를 붙들어서 더욱 주를 바라게 한다. 달리 더 좋은 수가 없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무엇을 어찌 해보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복되다.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 있는 게 행복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겠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주를 바란다. 아이의 이런저런 상태로 예배에 안 보내고 자신이 돌보며 관찰하겠다는 말에 식은땀이 났다. 여전히 놓지 못하고 쥐고 서는 만큼은 자신의 몫이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다 맡긴다는 것은 우리의 최종적인 선택의 축복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파서 이 글도 쓰기 어렵다. 그러니 나의 밤에 주의 성소에서 두 손을 들고 항복한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134:2).”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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