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왕상 12:15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모든 게 주의 선하심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을 어려움 중에도 확신하는 것이 복이겠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기어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리는 이 시점에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어느 것도 예외는 없고 모순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성경은 추론이 아니라 선포다. 우리의 이해와 상식을 초월한다. 이에 반발하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주체할 수 없는 일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혼자 서성거리며 움직여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떤 공포가 엄습하였다.
아이가 온다는 걸 뒤로 미루고 병원으로 갔다.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 검사를 하였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기형적인 척추구조 때문이거나 심리적인 요인이라 하였다. 그러니 아무런 약도 없었다. 억수로 비가 퍼부었고 아이는 어디 면접 본 곳에 취업이 되었다고 연락을 주었다. 오후께 정신과로 갔다. 사람들이 바글거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의사는 혀를 끌끌 찼다. 오전에 내과에 갔었다는 소리에 그럴 게 아니라는 투였다. 여러 말을 늘어놓는데 늘 같은 소리였고 대책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다 갔다. 체질을 개선하자며 무슨 약을 주었다. 몸은 녹초가 되어 가정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이처럼 나 하나 건사하는 일에도 쩔쩔매는 위인이라 서러운 마음도 들었다. 추석 앞두고 먼 길 갈 생각에 불안이 엄습하여 그럴 수 있다고 하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앉을 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그리 아니할 수 없는 나의 처지가 오히려 복되었다.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영광이다. ‘내 안에 하나님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은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 그럼 좀 의연하고 태연하게, 느긋하고 인자하게 주어진 인생을 관망하듯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가 이처럼 동동 구르는 나의 심정을 알까?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나의 판단과 이해를 억지하신다.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삶을 살게 하신다. 이는 굳은 결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은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었으나 어쩌면 이것이 좀 더 세밀한 것을 맡기시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이는 참으로 역설적인 말씀이다. 즐거움으로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않으시려고,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하신다. 근심을 놓아 근심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 하필 딱 그 시점에 이와 같은 말씀을 마주하게 하시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막 10:21).”
내 것이라 여기는 나의 건강과 목숨까지도 비워두는 삶이겠다. 고로 거리낌이 없는 삶이 되게 하시려고,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어쩌면 내가 유난을 떠는 게 아니라 나로 하여금 더욱 주를 의뢰함으로 주만이 나의 구주가 되심을 붙들어 이를 증거하게 하시려고,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27).” 그러니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하면 내가 좀 더 잘할 것 같은데 저러하니 옴짝달싹도 못하겠다. 밀려드는 어떤 불안과 공포를 나는 주체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아픈 아이를 건사한다는 게 또 말이 안 된다. 나 하나로 쩔쩔매면서 말씀을 준비하고 누구에게 주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전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 그런 나의 생각과 달리 그래도 그거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으니, 나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복이 되었다.
그래서 더 말씀에 의존한다. 집착이든 맹신이든 헛된 강박이든 뭐라 해도 상관없다. 그것으로 주께서 나로 청결한 마음을 갖게 하신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그렇다면 어떤 것이든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그러게! 다른 길은 없다. 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옮겨질 것이 아니라, 이미 옮겼다. 다른 길은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참 신기하지? 전에는 이와 같은 말씀에 반감이 들고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어쩔 수 없음에 안도한다. 다른 길과 다른 진리와 다른 생명은 없다. 다른 수로는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그러므로 말씀을 팽개치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말씀을 버리면 생명을 버리는 일이다.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말씀을 필사적으로 붙들게 하신다. 내가 안이하다면 내가 이처럼 주 앞에 앉겠나?
누군 몸에 좋은 무엇을 찾고, 어디 좋은 경치로 여행을 떠나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이를 추구하거나 망가지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는데, 나는 주를 바람이다. 주가 오신 이유도 다른 게 아니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믿음의 결국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이게 그러니까 내 의지가 아니다. 나의 결연한 신앙도 아니다. 모르겠다, 나는. 이러는 내가 너무 염치없고 몰상식한 것 같은데 그래서 더욱 주의 긍휼하심만을 바란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 34:9).” 오늘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18).”
오직 주만 바라게 하시려고, 그리하여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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