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
왕상 14:14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시편 36:1-2
기어이 왕국이 갈렸다. 솔로몬의 태평성대가 가져온 비극은 오늘 날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이다. 그 비극이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 하였다. 이와 같은 말씀 앞에 현기증을 느낀다. 생에 있어서도 더는 되돌릴 수 없는 때가 온다. 다들 외면하고 살아갈 뿐 이를 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앞서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그 말씀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를 알 때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다른 이름은 없다. 훗날에 베드로는 이어서 증거하였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그러므로 이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말씀으로 말씀을 따라가는 일은 귀하다.
이번 명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틀을 앓다 조금은 나아져서 낮에 잠깐 바깥에를 나갔다. 종일토록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속이 불편하고 어지러워 도로 일찍 돌아왔다. 아내와 딸애는 오후께 영화를 보고 왔다. 마침 혼자 있을 때 누가 문자를 하였다. 중고등학교 때 찾아가곤 하였던 은*원의 동생이었다. 같이 자란 누구네 집에 와서 같이 명절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누구는 꼽추고 누구는 난쟁이다. 둘 다 가족이 없어 매번 그렇게들 명절을 각각 보내었던가보다. 서로도 3년 만에 보는 것이니 꽤 오랜만이었고, 나와의 연락은 얼추 30년만이었다. 오늘 추석에도 딱히 할 게 없다고 하여 글방으로 오게 하였다. 아내와 딸애는 점심께 외가에 가야 해서 어차피 혼자였다. 반가움 반 서러움 반, 미안함 반 감사함 반, 저들과 번갈아가며 통화를 하는 동안 마음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려웠다. 다들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을 안고 산다. 내 지척에 외로운 이들이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누리는 호의와 호사를 감사하게 여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마땅히 가족이 있고 친지가 있어 다들 왕래를 하고 서로 사이가 좋으니 몰랐다.
무엇보다 같은 길을 가며 같은 믿음으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게 여간 큰 축복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오는 중2 아이는 이혼해서 혼자 사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전부라,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고 종일 집에만 있다고 하였다. 그렇듯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특히 명절 때면 더욱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이번에 혼자 있으면서, 유독 혼자이어야 하는 이들을 만나게 하시니 마음이 좀 그러하였다. ‘나도 모르게’ 선뜻 오후께 오라 하였고 같이 차라도 마시면서 모처럼 얼굴 좀 보자고 하였다. 그래놓고는 생각이 많은 것이다. 부모가 없거나 버려졌고 몸은 꼽추이거나 난쟁이니 여태 결혼들도 못하고 혼자인 것이다. 한 명은 시인으로 활동하며 자신이 다닌 특수학교 직원으로 일하고, 한 명은 금세공 기술을 가지고 돈은 번다고 버는데 일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히 미안한 마음은 저들보다 나은 삶을 살면서도 한 번도 감사한 줄을 몰랐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다들 신앙을 버리고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데서 마음이 더 아팠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어찌 인도하시려는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길은 없다. 이를 어찌 드러내어 어릴 적에 같이 찬송하고 예배하던 신앙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무심히 나는 저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더해주시기를. 저들의 잃어버린 믿음을 찾게 하여 주시기를. 문득 드는 생각이 그러려고 나를 이번 명절에는 혼자 두신 것인가? 나는 알 수 없으나 말씀을 버리는 일은 곧 생명을 저버리는 일임을 새삼 더욱 두려움으로 깨닫게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두신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맡은 자의 충성일 거였다. 속은 울렁거리고 마음은 어려운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어떤 반가움이 저들을 초청하고 오게 하였다. 딱 맞춤하니 먼저 연락을 하곤 하였던 친구가 멀리 살다가 인천 제물포쪽으로 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 그러저러하여 그간 연락을 못했다며 저는 미안해하였다. 그럴 거 뭐 있나, 지금 이 순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우리가 같이 앉아 찬양하고 예배하던 그 시절이 아른거렸다. 토요일이면 왁자지껄 강당에 모여 어느 선교단체가 와서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하였다. 중3 때 나는 그 선교단체 출신의 우리 교회 전도사와 함께 그곳에 처음 가게 되었다. 그 인연이 개인적으로 이어져서 꽤 오랜 기간 왕래가 있었고 소식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우리 두 아이를 데리고도 몇 번 찾았던 기억도 난다. 주께서 오신 것은 주의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다.
말씀 앞에서 나는 이제 주저하지 않는다. 새삼 다시 연락이 되고 내 안에 이는 알 수 없는 반가움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주의 선하시고 뜻하신 바가 어떠하실지. 부디 저들 안에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셔서 우리로 함께 주를 찬송하게 하시기를.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시 36:1-2).” 어쩌다 저들 속에 더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있지 않지만 주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돌이켜 예전에 가졌던 사랑을 되찾게 하여 주시기를.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27).” 내가 할 일이 엄연하여서 나는 더 반가웠다.
말 한 마디를 하는데도 더듬거리고 어려워하는 저의 어법에서 새삼 그의 삶이 고단하였을 것을 가늠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시 36:5-6).” 부디 오늘을 있게 하신 주께서 우리의 만남을 주도하여 주시기를.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7).” 이래저래 이번 추석 연휴는 생각이 많고 새삼 감사해야 하는 게 늘었다. 한 번도 감사할 줄 몰랐던 것들에 대하여, 누구에게는 그것이 일평생 이룰 수 없는 일이었음을 되새겨보며.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9).”
그리하여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8).” 곧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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