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왕상 22:14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시편 44:1
아합이 그 말씀의 예언에 따라 죽었다.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38).” 그의 계교가 헛되다.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하니 그의 곁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득실거렸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22).” 모처럼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고 아람을 공격할 때의 일이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도 과연 정직할 수 있을까?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14).” 오늘 말씀은 이에 우리의 표준을 삼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이를 붙들고 오롯이 주만 바라며 살 수 있기를.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시 44:1).” 이와 같이 말씀을 듣고 붙들고 묵상하며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어 감사하다. 아침마다 누구와 묵상글을 나누고 믿음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것이 귀하다. 특히 아이의 묵상글이 내게도 큰 위로가 된다. 이러저러한 생활 중에 느닷없이 닥친 공황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얼른 말씀 붙들고 주를 의지하며 일상을 이겨나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감사하였다. 나도 모르게 아멘, 하고 호응하며 주께 기도하였다. 우리에게는 엄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이에 주의 이름을 부르고 담대히 나아가는 데 있어 중간의 돕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사제가 필요하고 제사장이니 대언자가 요구되지 않는다. 주의 십자가는 휘장을 찢으셨다.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눅 23:45).” 저의 죽음은 우리를 살리셨다. 누구라도 담대히 주 앞에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아이의 묵상글을 읽으며 흐뭇하다. 짧은 내용 가운데서 아이의 간절함을 감사히 여긴다. 주를 바라며 말씀을 의지하려는 데서 큰 희망을 느낀다. 주께서 어찌 인도하실까? 열심히 하되 조급해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주께서 인도하심을 의지하자고 일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결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헛되지 않음을 확신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9-11).”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빌어 주께 아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이를 우리에게 알리시며,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19-20).” 우리의 사명과 사역을 이루게 하신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먼저는 무던히 나를 향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날마다 내 곁에 두시는 주의 백성을 향하신 것이다. 아이는 먹는 약을 100에서 125로 올렸다. 그런 뒤 달라진 점은 말이 많아졌고, 쉴 새 없이 들려주고 싶어한다. 목사님한테만 처음 말하는 것인데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인데요, 하면서도 저의 말은 되풀이 되고 그 맥락은 두서없다. 그러는 중에서 마치 난시검사를 하는 것처럼 숱한 말들 가운데 하고 싶은 말이 들린다. 저의 서러움이 그 엄마와 형에게 또는 학창시절에 친구들에게 또는 아빠에게서 받았던 상처는 고스란히 가슴에 있었고 이는 언제든 저의 감정을 쥐고 흔들었던 것이다.
누구든 상처 없이 살았겠으며, 말 못할 사연 한두 개씩은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이가 말문이 터지자, 목사님께 처음 드리는 말씀인데요, 하면서 그 안에서 밀려 나오는 말을 나는 그저 가만히 들으며 주의 이름을 되뇐다. 그런 걸 다 글로 써! 하고 말하였다가 그 또한 아이의 눈치 앞에서 무안하였다. 늘 엄마가 자신이 쓰는 글을 읽고 있다는 걸 아이도 잘 안다. 그러니 저는 속으로 삭혀야 할 말과 밖으로 뱉어도 될 말을 분간하는 것이다. 나도 차마 아이의 이야기를 글로 옮길 수는 없다. 누군들 안 그렇겠나, 하는 내용이겠으나 ‘아픈 애가 뭘 알겠어?’ 하는 생각은 오판이다. 더 잘 알고 더 예민하게 가슴에 담고 있다. 아버지를 늘 그리워하고 형에게 존중 받기를 바라다가도, ‘제가 장애가 있으니까’ 하는 식으로 아이가 풀이 죽어 하는 소리는 나를 아프게 하였다.
우리는 이제 시편 120편을 읽었다. 성전으로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 첫 장이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1).” 어렵고 힘들 때 우리가 부를 이름은 예수뿐이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7).” 이와 같은 억울함이 우리 안에는 늘 상존한다. 잘하려고 한 말인데 싸우자고 듣고, 나름은 애쓰고 수고한 일인데 무시하고 경멸하기 일쑤니, 내재되는 수치감은 급기야 모멸감으로 아이의 심령을 상하게 한다. 이것이 병적으로 짓누르면서 조울증이 시작되었고 급기야는…. 그러니 누구에게 무슨 말을 고백한들,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처참할 따름이다. 나는 아이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퍼즐조각처럼 이해의 폭은 넓혀지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 우리는 주께 부르짖는 것. 그럼 우리 주님은 이를 결코 흘려듣지 않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 성경공부로 아이와 같이 읽고 나누는 말씀이 내게 더 위로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 5:32).”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그저 주께 아뢰며 들려오는 메아리로 족한 게 아니다. 엄연히 동행이 있다. 늘 내주하시는 주의 영이 계신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갈 4:4).” 주가 오신 목적도 이유도 분명하였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이는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영생의 나라에서도 필수적인 것이어서, 전날에 누가 주 안에서 거한다는 고백처럼 아름다운 증거가 또 있을까? 그것이 일시적이든 감정적이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는 연약하여 돌아서면 또 ‘딴짓’이지만 그럼에도 말씀은 쉬지 않으신다. 때를 따라 돕는 이시다. 우리로 변화시킨다. 곧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지혜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증거이고,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 하고 또 뭐라 해도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누가 어디서 무슨 가상화폐가 개발되어 어디에 가입만 해도 얼마의 가상화폐가 주어지고 앞으로 그 값어치는 몇 배가 뛸 것이라며 권하였다. 나는 부디 아이들에게 그런 데 자꾸 귀 기울이지 말고 주신 데서 묵묵히 살라고 일렀다. 이래저래 세상이 참으로 혼탁하다. 그러할수록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 이 일은, 우리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 5:31).” 곧 저는 우리의 구주이시며 임금이시다. 단지 구원만 이루시는 게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통치하실 임금이시다. 곧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32).”
부디 말씀 붙들고 말씀만으로 사로잡혀 살아갈 수 있기를.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시 44:4).”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5).” 이에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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