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왕하 25:7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시편 79:13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한다. 이후 여호야긴이 특별 사면이 되어 훗날 다윗과 맺은 언약을 잇는 구원의 날이 도래할 것을 암시한다.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 25:7).” 그럼에도 참 그 현실이 처절하다. 이와 같은 처절함을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애 5:16).” 과연 그 당사자들만 모르는 일일까? 누가 미혼모로 아이를 키웠는데 이제 중3인 그 아이가 웬일인지 학교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주 몸이 아파서라는데, 의무교육이라 애를 학교에 보내질 않으니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다면서… 나는 저의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다 먹먹하였다. 어쩌다 그 지경이 된 것일까? 식당 일을 끝내고 새벽예배를 나갔다가 귀가를 한다는데 나는 그런 소리도 참 답답하였다.
믿음이 어디 극성이던가? 신앙이 언제 성화였던가? 왜 저이는 그처럼 쫓기듯 구하고 바라고 사모하면서도 그러했을까? 저를 보면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 같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6-18).” 그처럼 전전긍긍하면서도 나름 열심을 다하는 것일 텐데. 누구는 그런 친정 언니의 사연을 덤덤하게 말하면서 자신은 그래도 낫다는 듯 늘 감사하며 산다나? 교회도 나가지 않고 굳이 하나님을 바라지도 않으면서 안다, 믿는다, 감사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뭐라 할 말이 없고 가슴이 답답하여 일찍 통화를 끊었다. 그래도 아이는 머뭇거리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오고 있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시 79:13).” 말씀 앞에 나온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나에게 무얼 자꾸 바라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한다. 오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면 하게 하시고 함께 가게 하실 이도 하나님이신 것을. 그러다 안 한다 그럴까봐 아이엄마로서 마음을 졸이는 일이야 당연하겠으나, 그러면서도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정작 자신들이라. 그 부모의 죄 때문이다! 저들을 돌이키게 하시려고… 나는 감히 그리 이해한다. 아이들이 짊어지고 가는 세상이 너무 버겁다. 나는 그러는 아이들로 인해 속상하지, 그 부모의 자기들 고집에 대해서는 괘씸하기만 하다.
결국 하나님의 이야기는 사람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관심을 두신다. 다들 사는 데 정신 팔려 하나님도 그리 찾고 바라는 것이었으니, 아이와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어느 교회에서 곽 티슈를 돌리고 있는 것에 놀랐다. 전도용이라고 하지만 늘 그 자리에서는 어느 아파트 분양 사무실에서도 같은 형태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어서 그 상황이 참 묘하였다. 인근의 가장 큰 교회였으니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는가 싶다가도, 꼭 그렇게 해야 하나싶었다. 아이가 받은 것까지 두 개를 들고 돌아오려니까 괜히 다 민망하였다. 다들 참 극성이다. 성경은 이를 어찌 말씀하시는가 보니, “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지금은 마지막 때라! 그 말이 수천 년 전에도 있었으니 다들 그러려니 하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이제 겨우 이틀 정도 지났을 뿐이다. 마지막 때가 언제까지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정말이지 많은 적그리스도의 때이다. 비상이다. 위기상황이다. 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 건너와 그러저러한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갔으나 내 일은 경고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말씀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모든 것이 적이다. 교회를 멀리하고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단절한다. 그래놓고도 자신은 다 감사하고 안다, 믿는다 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것이니! 애들이 지금 그 지경인데도 어찌 경고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말 그대로 나갔다.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는 경우는 저들은 교회의 정통과 복음의 진리에서 나갔다. 스스로 교주가 되고 새로운 말을 섞고 추구하는 바를 틀었다. 그들이 나간 것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이다. 가룟인 유다가 나갔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 13:26, 30).” 저는 어찌 돌이켜 주 앞에 엎드리지 못한 것일까? 저들이 나갔고, 밤이었다. 늘 남자가 있고 지금도 있어 아이는 친정 엄마가 돌보고 있는 모양이던데! 중3 아이가 학교도 못 갈 정도인데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있는가? 나는 궁금한 게 많았으나 거기까지 묻지는 않았다.
성경은 때로 냉정하시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 1:10).” 내가 나서서 뭐라 한들! 나는 다만 보내시는 이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더하신다. 견디지 못하면 나갈 것이고 견디게 하시면 견뎌낼 것이고,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나는 아이로 인해 생각이 많아서 요즘은 자주 새벽에 깨어 뒤척이며 주의 이름을 부른다. 어쩌겠나? 안달한다고 해서 소용없다. 저들의 공통된 특징은 예수를 구주로 부정한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2-23).”
그러니 ‘하나님의 교회’니 ‘여호와의 증인’이니 하면서 같은 하나님이라 운운하지만 전혀 그 속성이 다르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이는 엄연하다. 그런데 미더워 여러 성자를 두고 혹시 몰라 또 다른 방책으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숭배하는 일이었으니, 다른 타 종교에 대해서야 그러려니 하고 안 믿는다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같은 기독교를 운운하며 꼭 저들은 또 믿는 사람들만 노린다. 미혹케 함이다.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2:26).” 그저 남의 집에 간단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꾀어내듯 한다.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6-7).”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나는 누구의 친정 언니를 잘 안다. 늘 저는 기도원이고 어디 큰 교회고 무슨 사경회고 부흥회고 많이도 쫓아다녔다. 지금도 밤새 식당 일을 하고 인천에 몇 번째로 큰 교회로 가서 새벽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아이는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그 아이가 학교도 안 가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평생을 그러고 사는 것일까? 고스란히 아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세상이 너무 힘들다. 듣다보면 싫증나고 속상하고 답답한데, 성경은 자꾸 그런 이야기를 듣게 하시는가!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말씀이 뼈를 때리는 것 같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2).” 기어이 유다는 멸망하였고 그 잘난 왕족은 처참하게 죽었다. 그럼에도 저들은 어쩌자는 것인지!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3-5).” 말씀 앞에 앉아 나만 자꾸 좌불안석이다. 그 애 엄마 전화번호라도 물을까? 아이 상태가 어떤가 좀 더 물어볼까?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는 내내 마음이 어려운데, ‘버스에서 예쁜 여자가 있어서 번호를 따려다가 그만뒀어요!’ 하는 우리 스물세 살 아이의 문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그럴 나이고 한참 그리 관심이 기울어지는 때인데, 이 일을 또 어쩌면 좋을까? 나야말로 주만 바란다. 달리 어떻게 방도가 없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21).”
말씀 앞에 좌정하여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시 79: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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