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10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편 84:5-7
야베스의 뜻은 고통이다. ‘이는 내가 수고로 낳았다.’ 함이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 4:9).” 누구든지 삶은 고통을 떼어내고는 말이 안 된다. 그런 저가 주께 의뢰한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10).” 본문을 읽으며 두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는 우리의 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 둘째는 우리의 환난과 근심에서의 구원도 주의 손에 달렸다는 것. 이로써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것이 성경을 관통하는 모든 믿는 자의 공통점이다.
고통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욥도 그의 고통과 구원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나는 토요일마다 오는 친구와의 성경공부를 값지게 여긴다. 우리의 두서없는 말 가운데서 하나님은 주를 바라게 하신다. 어디 좀 더 ‘뜨거운 교회’를 찾는 저에게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은 옳은 게 아님을 말해주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을 감추고 부끄러워하고 그래서 예의를 갖추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또한 그릇됨을 말해주었다. 식사를 권할 때 같이 어울리고 저들의 도움을 마다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와 같이 거리를 두는 일이 현대 교회를 점점 더 비대해지게 한다. 서로 적당히 모르고 적당히 알면서, 여기까지, 더는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하는 이들에게 ‘큰 교회’만큼 좋은 은신처도 없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르의 분야에서 원하는 만큼씩 취하고 만족스러워하고 더는 관여도 관심도 적당하기를 바라는 태도는 결코 성경적이지 못하다. 어디에도 적당한 예는 없다.
또한 친구는 헌금에 대해서도 어려워했는데 마음이 꺼려지면 차라리 하지 마라 일렀다. 그걸 어찌 궁리하듯 머리를 써서 십일조를 쪼개어 그 안에서 감사헌금 구제헌금 주정헌금을 나누거나, 행여 누가 자신의 수입을 알까하여 분산하여 여러 교회로 보내거나. 어느 한 부자가 있었다. 저는 스스로 말하기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 12:19).” 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주님은 일깨우신다. 재물은 내 것이 아니다. 결코 내가 주인이 아니다. 그런데 쌓아만 놓거나 쓰고 즐기는 데만 사용한다면 이는 모두 헛되다. 그 재물이 우리의 생명을 연장해주지 않는다. 어차피 주 앞에 설 때 우리는 모두 빈손이다. 저를 두고 하나님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0).” 이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비유는 참으로 귀하였다.
저로서는 혈혈단신 저 혼자 사는 삶이라 돈에 의존하는 게 크다. 몸은 장애로 인해 힘든데 그 몸을 이끌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에 대하여 남다른 애착을 갖고 사는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러니 전 주에도 어려워하더니 또 묻는 것이다. 헌금도 그 마음을 주셔야 한다.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게 헌금이다. 마치 이를 우리의 결단이나 신앙의 정표로 삼으려고 하니 내고도 어렵고, 안 내고도 어렵다. 억지로 할 거 없다. 나는 저에게 말해주었다. 다만 정호승 시인이 한 표현처럼 ‘빈손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손에 뭘 잔뜩 쥐고는 그 손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마침 전날에 우리도 가정예배를 드리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해 그 인색한 마음을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교회 사정이야 뻔해서 목사로서 사례는커녕 늘 이리저리 메우기 바쁜 형편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내는 성심껏 헌금을 관리한다.
나야말로 내 전부가 주의 것이라, 내 앞으로 나오는 연금도 무슨 수입도 모두 주께 돌리고 있으니 얼마를 떼고 얼마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 나는 늘 빈손이다. 그 빈손으로 이 친구를 붙들어주게 하시고 저 아이를 잡아주게도 하시면서 하나님이 쓰시는 데 있어 나는 되레 빈주머니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데는 놀랍다. 그때마다 채워주시는 손길은 가히 그때마다 새로운 것이다. 이를 누구에게 강요하고 자랑할 것은 아니겠으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3:11-12).” 나는 이 복을 친구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부자는 부자여서 어렵고 가난한 자는 가난하여서 어렵다. 헌금 얘기는 모두가 불편한 진실이다. 돈이 나쁜 게 아니다. 어느 기독교 단체가 고민에 빠졌다. 누가 엄청난 금액을 후원한 것인데 저가 그 돈을 도박에서 번 것이라, 거기서 십일조라 하여 헌금으로 냈으니 이를 받아야 하는지 받지 말아야 하는지, 결국 저들은 정중히 그 돈을 돌려주기로 하였다고 한다. 헌금은 그 자체로 예배다. 내게 주신 건강과 일터와 능력으로 그 맡기신 이의 뜻에 따라 열심히 수고하여 얻은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께 올리는 것이다. 또한 헌금은 하나님의 귀하신 뜻에 동참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그냥 돈이면 다 좋은 게 아닌 것이다. 예배가 전부 예배는 아니다.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신 하나님이시다.
헌금은 결국 내 마음이 있는 곳을 알게 하는 가늠쇠이다. 조준이 바르지 못한 총구는 아무리 쏘아대도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아무래도 혼자 살면서 혼자 모아 혼자 생활하니까 나름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이를 교회에 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올리는 것이라 저에게 일렀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나는 저가 은혜의 손길로 인도하심을 받아 지금 새로 다니게 된 그 교회에 잘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도 자신의 장애나 처지나 상황을 숨기거나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잘 적응하기를 바랐다. 벌써 한 달이 되어 교인등록을 하고 열 번째 목장으로 배정도 받았다고 하니, 오늘부터는 조금 어렵더라도 같이 식사하고 성도들과 같이 차도 마시면서도 그와 같은 교제를 마다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이는 모두 예배다. 저들의 도움도 예배고 우리의 참여도 예배다. 서로의 동참이 모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다.
우리 보물을 하늘에 쌓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단순히 헌금을 내라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 이는 우리에게 맡기신 것에 대한 우리의 사명이며 사역이고 앞서 주신 은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25:21).”
이는 또한 한 여인에 대한 저의 마음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이 된다. 그냥 좋아서 좋은 마음으로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구하고 바라는 마음이어야 선하다. 모든 게 보면 하나님이 그리하셔야 그리 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은 특히 더 그러하다. 누가 최고의 갑부인 빌게이츠에게 충고하였단다. ‘돈을 은행에 처박아 두는 것은 돈을 가지고 하는 가장 불행한 일이다.’ 저는 그 말을 듣고부터 늘 자신의 수입의 60%를 재단에 기부하며 살았다고 한다. 돈이란 참으로 요망하여서 없을 땐 있으면 좀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있으니까 더 분주하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오늘 야베스의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새삼 묵상할 수 있다. 모든 고통은 주의 것이고 모든 축복도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10).”
나는 토요일에 오는 저에게 몇 주째 어려워하는 저의 헌금에 대한 마음을, '헌금은 곧 예배다.'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전하였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그때마다 저들의 강요가 돈을 거두는 일이어서 ‘헌금’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게 사실이라 고백했다. 무슨 세금을 떼듯이 교회에 십일조를 바쳐야 하고, 무슨 헌금을 강요받아야 하고, 마치 부과된 세금을 절세하듯 십일조를 쪼개고 분산하여 고루고루 쓰려고 했던 자신을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차라리 그럴 거면 바치지 마라, 하고 말해주었던 것은 그 마음이 은혜여야지 억지로는 내고도 어렵고 안 내고도 어려운 게 헌금이다. 헌금도 은혜이다. 고로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 이에 오늘 시편의 찬양이 감미롭다. 나의 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 주께서 맡기신 것이고 주께서 베푸신 은혜이다.
그러므로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4:5-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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