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전봉석 2019. 10. 21. 07:03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대상 5:25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시편 85:4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켜 사함을 더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살 길이 없다. 다들 사느라 급급하여 죄를 밥 먹듯이 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마치 농담으로나 여겨 가벼이 넘기며 싫어한다. 어찌 이게 누구의 이야기만 되겠나? 그러므로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85:2-3).”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사역에 앞서 은혜다. 말씀 전하는 일에 앞서 기도다. 받는 일보다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20:35).” 그러므로 주가 우리에게 향하시는 은혜가 아니고는 어찌 감당이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오후께 누가 문자를 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처음 한다고 하였다. 지난 토요일 같이 나누었던 헌금에 대한 이야기가 저를 붙드셨던 것이다. 보잘것없는 이 사람의 말과 행함과 증거가 누구에게 전달되어 이처럼 주를 기쁘시게 할 때의 감격이라니! 성도들과 같이 식사도 하고 교제도 나누었다는 말에 더없이 기뻤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얼마나 놀라운가?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엘리야의 이름의 뜻과 같이 우리로 주의 사람으로 삼으시고 붙들어 일하게 하시는 이 모두가 은혜였다. 하긴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부족함과 연약함을 통회하는 심령으로 사는 사람이 주의 곁에 선다. 그래서 다윗은 붙들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16:8).” 그렇다고 문제가 없어지거나 병이 낫거나 뭔가 저절로 일이 뚝딱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의 것들이 전혀 새로운 게 되는 것이다.

 

고로 주의 은혜가 먼저.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85:10-11).” 주가 이루시고 다스리는 나라는 그 안에 평안이 있다. 저가 교회에 잘 적응하고 심지어 평생을 교인으로 산다고 살았는데 여태 온전한 십일조를 처음 한다고 하니, 그러한 저의 변화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12).” 결국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전하는 자의 소리였고 저의 마음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시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24).” 주의 은혜다. 우리는 다만 여기에 있어 주의 쓰임에 합한 자로 사는 일이 복되었다.

 

이는 결코 이 말씀이 그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 이처럼 살면서 살아서 주의 크신 위험을 본 자로 산다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지. 오후께 누가 전화를 하여 지난번에 부탁했던 것처럼 목사 추천서를 원하였다. 저는 제법 인정을 받는 문단의 평론가였다. 들어보니 믿는다는 사람이 대학을 불교 대학교를 나왔다. 신앙을 가지고 믿는다는 사람이 궁여지책으로 살았던 것인데,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다. 다들 거절하는 걸 나는 전에 기도해보고 달리 마음먹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잃어버린 신앙과 믿음을 회복하길 바란다. 주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란다. 그리 답을 하였다. 나는 그리 말한 것은 그러한 것을 주가 아니시면 누가 할까? 어쩌다 나에게까지 그런 부탁을 하게 되었나싶어 나는 마다하지 않았다.

 

보면 다들 사느라 그런다. 사는 데 급급하여 당장에 불교 대학교면 어떻고, 술집이면 어떻고, 로또면 어떻고, 은닉한 재산이면 어떤가싶은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인데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3).” 이성과 논리로 아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오롯이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기를 즐거워하신다. 나에게도 그러하셨고 나를 세워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그러하신다. 차마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는 지경의 죽었던 나를 다만 주의 은혜로 살리신 일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결코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우선은 아니다. 나는 저에게 그리 말해주었다.

 

내가 판단하여 저를 정죄할 문제가 아니다. 어찌 감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짐작이나 할 수 있겠나? 주가 인도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11:7).” 나에게까지 연락이 오고, 나 같은 사람으로도 전하게 하시는 일이었으니, 주의 은혜로만 살 수 있다. 그러는 데 있어 나는 다만 말씀을 의지하고 살자. 아브라함처럼 말씀을 따라 살자. 롯과 같이 환경에 의해 끌려 다니며 살지 말자.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말씀으로만 하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5:5).” 그러면 어느 순간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된다.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 된다. 말씀이 얼마나 상식을 거스르는지!

 

가장 넘실거리고 마르지 않은 요단을 먼저 딛고 건너라니. 풍랑이 이는 물 위로 걸어오라니. 까마귀를 보내어 먹이시겠다니. 때론 말씀보다 합리적이지 못한 말씀은 없는 것 같다. 왜 굳이 다 늙어 노인이 된 75세의 아브라함에게 그제야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하시는지. 그러한 말씀 앞에서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위인이 누가 있겠나? 들까불 듯 우리를 쥐고 흔드는 게 걱정이라.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119:42).” 내가 누구에게 무슨 말로 언제 이르고 전하여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으나 주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더하시기를. 지혜의 영이 늘 함께 하시기를. 나의 미련함과 아둔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이가 돌이켜 오늘에 세우신 일이었으니.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50:4).” 모를 땐 가만 있자. 내가 하려고 하지도 말고 무엇을 섣불리 거절하지도 말자. 오죽하니 나에게까지 그와 같은 부탁을 하고, 저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런저런 사연으로 신음하는 것이겠나? 문득 들던 생각이 기도하라고 하시는 거였다. 아버지 어머니께 말하고, 형제들에게 말하고, 교회 앞에 다 말하는 까닭은 우리가 알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는 거였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가족이 있어 가장 든든한 의지였다. 염려 없는 생이 어디 있겠나? 말씀과 같이 하자. 말씀으로만 하자. 내 안에 두시는 마음을 그리 확신하였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임의로 내치거나 거둘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라. 오게 하시는 이도, 가게 하시는 이도, 온 이가 뿌리를 내리는 일도, 떠나간 이가 주의 긍휼하심을 얻는 일도, 이 모두는 주의 것이라. 나는 다만 아침마다 나를 깨우치시되 바로 듣게 하시고 바로 보게 하시고 바로 말하게 하시기를. 말씀으로 어찌 저들을 도울 수 있을지, 주의 영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하나님만이 나의 의지가 되신다. 내 인생의 공급자이시며 그의 신실하심으로 약속을 변개함이 없으시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85:13).” 결단코 내가 하여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나는 일련의 벌어지는 일들과 달라지는 모습과 저들의 변화 앞에서 주를 찬송할 따름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4).” 그리하여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7).”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9).” 그리하면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10-11).” 하여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12).”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