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행 7:9-13, 빌 2:6-11 / 요셉과 예수님

전봉석 2019. 12. 20. 09:59

20191222 주일


7:9-13, 2:6-11

요셉과 예수님

 

 

사도행전

7: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7: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7: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7:12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7:13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들어가는 말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긴 사람들은 요셉을 잊고 지냈다.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외면하고 방기하고 회피하며 읽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요셉은 예수님의 표상이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복음을 외면하며 잊고 사는 것도 다르지 않다. 자기위주의 유익과 이익을 추구하며 말씀을 우회적으로만 듣고 교회를 취향에 따라 다니려고 할 뿐이다. 그러할 때 인생의 흉년이 들어보면 안다. 오늘 본문에서도 흉년이 들자, 요셉을 애굽에 팔았던 형들이 식량을 구하러 나섰고, 한동안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기어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인생에서의 흉년이 들면 평소에 교회를 멀리하고 예수를 외면하며 살았던 자들도 발길을 돌이킨다. 그 자체로 전화위복인데 그마저도 외면하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인생의 흉년에서 만나게 되는 예수님에 대하여, 요셉의 이야기에서 근거를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 인생의 우여곡절은 결코 우연히 벌어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역사에 개입하시고 주관하시고 주도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셉

1. 시기하여: 죄의 뿌리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우리 죄의 주된 감정은 시기심이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였다.’ 처음 사람이 하나님을 시기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여 사탄의 유혹에 처음 언약을 팔았던 것과 같다. 요셉을 애굽에 판 것과 우리가 예수를 판 것과 같다. 오늘도 여전히 빌라도의 법정에 세우고,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살아야 현대사회를 이겨낼 수 있다고 여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오늘도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같이되라고 한다.


2. 그와 함께 계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하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하나님은 결코 악을 지으시지 않았고 허용하시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의 악을 기어이 선으로 바꾸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다.

 

3. 바로 앞에서: 세상 권세 잡은 자 앞에서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는 이 땅의 주권자다. 돈이고 명예고, 좋은 학벌이며 장래가 보장되는 일이다. 그리 여기는 바로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신다. 은총이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으로,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2:16).” 지혜란 그 하나님이 우리로 남을 권하게 하심이다(고후 5:20).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2:18).” 우리는 비록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4. 통치자로 세우셨느니라: 우리의 잃어버린 통치권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본래 우리는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그런데 하나님을 시기함으로, ‘하나님 같이된 우리는 결국 세상의 종이 되었다. 자신에게조차 자신을 이길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기어이 우리의 빼앗긴 통치권을 회복하신다.

 

5. 온 땅에 흉년이 들어: 영혼의 가뭄 때에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실제로 이 땅의 흉년’은 자업자득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함으로, 지구는 병들었고 자신들의 영혼은 가뭄에 시달린다. 이에 우리의 유일한 길은, ‘아버지의 집을 떠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5:17).”

 

6. 드러나게 되니라: 숨길 수 없는 사람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우리는 숨길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소금이요, 빛이요, 불 켜진 산 위의 동네라 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3-14).” 곧 소금은 그 맛과 역할로 극심한 저항에 부딪치고, 빛은 어둠의 저항과 들끓는 날벌레들로 시달리고, 어두운 밤에 불 켜진 산 위의 동네는 뜨내기들과 술주정뱅이, 시정잡배들이 꼬여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일은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른다. 이를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 하였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예수님

1.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성자 하나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저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 목적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2.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종종 맡긴다.’, ‘내려놓는다.’, ‘자신을 비운다.’ 하는 소릴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비우시며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사실 앞에 과연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그래서 바울은 고난 중에도 당당히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3.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결국 우리의 평안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때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외롭고 힘든데도,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기주장을 내세울 수 없는데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면서도, 자신보다 남을 긍휼히 여기느라 박해를 받는데도, 마음이 청결한 자로 살기위해서도, 화평하게 하는 자로 살려고 우리는 기꺼이 주를 믿는 자로 산다. 마태복음 5장의 복의 비밀은 바로 그것이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2).”

 

나오는 말

 

인생의 흉년이 오고 영적인 가뭄을 맞았을 때 오히려 우리는 감사하자. 인생의 흉년은 영혼의 가뭄으로 영적인 나태다. 이를 게으름이라하면, 그 특징은 뚜렷하다. 첫째, 저는 늘 핑계가 많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리라(26:13).” 둘째, 저는 늘 제자리를 맴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14).” 셋째, 저는 항상 할 일을 두고 괴로워한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15).” 넷째, 그러면서 자신을 옳다고 여긴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16).” 신기하지?

 

저마다 자아실현이라 하여 이를 위해 돈돈거리는 세상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것이 근심덩어리다. 오히려 자신을 찌른다. 곧 그 특징은 명확하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2-5).”

 

어쩔 것인가? 기어이 갈 데까지 가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이는 영적인 흉년의 외침이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5: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7:13).”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사뿐이다. 오늘도 우리가 세상에 팔아넘기는 요셉에 대하여, 나의 예수님 구주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간곡하게 외치는 것이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