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8 주일
행 5:30-31, 딛 2:11-15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사도행전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5: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디도서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들어가는 말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오늘 이 말씀은 우리로 가슴 벅차게 한다. 이 땅에서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려고 우리는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는지. 돈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고 산다며,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자신에게 거듭 강조하면서 이를 악물고 돈을 벌며 산다. 학벌이 없으면 무시당하고, 옷차림이 시원찮으면 무시당할 것 같아서 저마다 얼마나 치장하는 데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다시 읽어보자.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 여기 말씀에는 두 개의 시선이 공존한다. 하나는 우리 자신이 업신여김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는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권면하고 책망하여 주어야 하는 대상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느라… 고질적인 우울감으로 고착된 자기연민에 빠져 있느라… 나태와 게으름으로 점철된 방종한 생활에 젖어있느라… 병적으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느라… 늘 우리는 업신여김을 받으면서도 이를 모른다. 오히려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사회에 굴복한다. 굽실거리며 무마하려 든다. 자칫 스스로를 두둔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하면서 말이다. 그럴수록 모멸감은 깊어지고, 상대에게서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조차 업신여김을 당할 뿐이다. 실제 자신으로부터의 업신여김을 당하는 열등감과 모멸감과 피해의식과 자기연민 등으로 우리는 더욱 업신여김을 당한다. 이는 우리 안에 깊이 박힌 죄의 원뿌리인 수치심을 자극한다.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졌다고 여길 때, 사람은 자신의 수치심을 피해 어둠 가운데 숨는다. 도대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생각 같으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번번이 굴복하는 것이 죄에 따른 굴종이다. 어찌 해야 할까?
1.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기다려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0-21).”
여기서의 기다림이란 막연하게 주저앉아 체념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기다림은 이처럼 수동적이지 않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주께 맡긴다’, ‘내려놓는다’ 하는 것은 극적으로 능동적인 참여이고, 진취적인 행함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린다는 것은,
①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는 일이다. 실제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 같지만 이 믿음은 엄연히 거룩하신 이의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 ②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내 기도란 그때마다 어찌나 세상적이고 육적이고 당장의 것들만 바라는지 온통 면피적인 것뿐이다. 이에 성령으로 하는 기도는 주의 영이 내 안에서 ‘어떤 마음’을 수행하실 수 있도록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③ 이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데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④ 그러할 때 우리의 기다림은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놀라운 소망을 더한다.
실은 당면한 오늘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다. 문제 너머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둠 깊숙이 숨겨진 뜻밖의 우리 자신이다. 이에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유 1:22).”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이르고 어떤 것을 권면하며 저들을 어떻게 긍휼히 여길 수 있을까?
2.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날 것을 알려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 2:11).”
그 증거는 무엇일까?
첫째, 주가 우리를 양육하신다. 둘째, 그러므로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하신다. 셋째, 한없이 가벼워지는 세상에서 신중하게 하신다. 넷째, 의롭게 하신다. 다섯째, 경건함으로 살게 하신다. 이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으로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곧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12).” 이를 위해 오늘도 오늘을 우리에게 두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우리 안에 복스러운 소망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다리게 하는 소망이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이를 위해, ① 먼저는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속량하셨다. ② 다음은 선한 일을 하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4).” 즉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때에 우리도 어둠이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빛의 자녀로 행한다. 그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것을 말해주고, 권면하고,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권위로 책망하고, 다스려서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 때로는 참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를 ‘살리셨고’, 우리를 ‘살리신다.’
3. 예수를 살리시고,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 5:30).” 이내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 6:14).”
곧 주께서 살리시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죽은 자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다. 저마다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이성복 시인의 표현처럼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 그런 시대에 다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열패감은 자기 환멸을 불어내는데도 서로들 괜찮다고, 당장은 괜찮다고 위로한다. 죄를 병이라 하고, 악을 ‘그럴 수 있는’ 취향, 또는 개인의 선택이라 한다. 그러면서들 곧 나아질 거라 위로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 곧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
결국은, 하나님이 살리신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엡 1:20).”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도 다시 살리셨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다음은 그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 그러므로 살리신 우리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이는 주셔야 받고, 받아야 알 수 있는, 거룩하신 믿음 위에 세워지는 사랑이다. 곧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나오는 말
1) 주와 합하여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① 긍휼히 여긴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유 1:22).” 그리고 ② 새 생명 가운데 거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이는 우리가 ③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곧 우리는 누구도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이에 ④ 주의 뜻에 합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갈 2:2).” 결국은 이것이 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3-4).”
2) 이를 증언하시는 이가 셋이시다.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7-8).” 우리의 우리 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① ‘값으로’ 사신 것이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② 이를 알 때 우리는 기도로 서로 합한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 8:3).”
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함을 누린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0-21).” 곧 우리는 이것으로 말하고, 권하고, 책망하며 서로가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 이를 위하여, ① 우리를 양육하신다. ②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게 하신다. ③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게 하신다. ④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 이는 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 왜냐하면 ⑥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다. 곧 ⑦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15).” 아멘.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 17:30-31, 전도서 2장 / 믿을 만한 증거 (0) | 2019.12.26 |
---|---|
행 7:9-13, 빌 2:6-11 / 요셉과 예수님 (0) | 2019.12.20 |
행 7:9-13, 요 3:19 / 시기하여 팔았더니 (0) | 2019.11.29 |
행 14:21-22, 살전 5:9-10 /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0) | 2019.11.21 |
행 20:24, 딤후 4:7-8 / 한 길 가는 순례자 (0) | 2019.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