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느헤미야 3: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9
성벽을 재건하는 데 있어 중간계급 이상의 사람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 구간별로 나누어 실시하는 것을 읽는다. 우리가 사는 일은 ‘선한 일을 하라’는 명령에 따른 맡기신 구간별로의 삶이 아닐까? 전에 어떠했든,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새해 첫 날 감사예배를 드리고, 우리의 중심을 다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였다. ‘찬양과 경배’가 드려지는 한 해가 되기를, 그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구간으로써 우리는 다만 성실하면 된다. 애써 최고가 되라는 게 아니라,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 12:6).” 다만 주를 바라며 사는 일이 찬송이고 경배이었다.
사람을 보고 사람에게 기대하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거야 사람으로 사는 내내 되풀이 되는 일이겠으니 그때마다 주를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고로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8-9).” 누가 같이 와서 예배를 드릴 것처럼 하여 연락도 없이 오지 않으면서 나는 번번이 마음이 상한다.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부인하는 자에게는 뭐라 한들 별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잠 9:9).”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이다. 표면적인 게 다가 아니다. 그게 전부가 아닌 ‘이면적인 것’ 마음에, 영에, 있어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3:29).” 하는 말씀 앞에서 진정하게 된다.
부디 새해에는 나의 삶이 곧 찬양이 되고 경배가 되기를. 복 있는 사람으로 사는 일이란 그처럼 드려지는 것이어서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골 2:20-22).” 그럴 거 없다. 한 때 쓰이고 마는 것에 대해서는 연연하지 말자. 사람은 오거나 가는 것이고 같이 머무는 데는 여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5-6).” 어떤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다.’
내가 누구를 생각함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겠으나 그것으로 나는 항상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었다. 답답하면 답답해서, 속상하면 속상해서… 아이와 같이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핑, 하고 눈물이 도는 까닭은 그것이었다. 저 아이가 살아야 하는 남은 생의 고단함을 주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으로 감당하며 살까? 온전하지 못하면 온전하지 못하여 안타깝고 나름 잘났다고 하면 잘난 줄 아는 것으로 위태롭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찬양과 경배’였다. 주를 바라는 일, 주의 이름을 되뇌며 주를 의지하는 삶이 곧 그러하여서 이는 사람 보고 사람에게 기대하면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그런 거 보면 나는 때로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새해인데도 누구에게 따로 인사도 건네지 않고 받고도 그저 묵묵히 마음에 담을 뿐이다. 느닷없는 누구의 인사나 안부는 반가움보다 어떤 불안이 앞선다. ‘친절한 타인’으로 지내려는 내 안의 욕구가 좀처럼 마음을 열 수 없게 한다. 적당히 인사하고 빈말로나마 안녕하신가, 묻는 따위의 일에 있어서 이제는 신물이 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서로의 안녕을 두고 생각하는 사이인가? 어떤 문자는 그냥 답을 미뤘고 어떤 것에는 상대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늘 보면 그러는 이가 그러는 것이어서, 말만 앞서는 자에 대하여 나는 경계한다. 그러느니 ‘친밀한 사이’의 고단함에 더욱 신중하기를. 당장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우선이라. 그러려니 해도 되는 사람이 그럴 수는 없는 사이의 사람에 대하여는 염연히 다른 것이다.
말씀으로 믿음 안에서일 뿐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모르겠다. 이를 생각하다보면 내 안에 이는 열등의식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으로 연연하다 늘 번번이 나는 마음을 상하는 일이어서, 복음으로 믿음 안에서 살 일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도 하나님이 그리 두시는 데 따른 것이어서 굳이 내가 애써서 얻을 수 있는 만족함이란 신뢰할 게 못 된다. 아이들을 대하면서는 물론 친구라고 했던, 선생으로 나의 훌륭한 지인이라 여겼던 이들에 대해서도 다 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이라! 누가 더 낫고 모자란 게 아니어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잠 27:10).”
하는 데까지 하다 안 되면 별 수 없는 일이고, 그러려니 하고 여기는 정도의 사이면 그 정도에서 더는 애쓸 일이 아닌 것이다. 이 또한 맡기신 이가 맡아서 하실 것으로 나는 다만 그의 도구라, 여기에 두신 데 따른 이유와 목적은 내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나는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 일은 사람으로가 아니라 하나님만으로서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게 하심으로 맡겨지는 일이다. 마치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착각보다 무서운 불순종은 없다. 하나님을 너무 제한적으로 섬기는 일이 된다. 주가 이루시도록 오직 주만이 행하실 수 있도록, 나는 그런 점에서 나름 올해의 목표를 ‘찬양과 경배’로 잡았다.
그리하여 나의 남은 생이 다만 ‘목사니까’ 더더욱, 말씀만 붙들고 살 수 있기를. 공부하고 또 묵상하며 사랑하고 또 기도하며 묵묵히 주의 성전을 지키며 보내시는 이로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여서 찬양과 경배로 드려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무던하여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어떤 좋은 수로는 따로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서, 나는 굳이 궁색한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인사치레로 안부를 묻고 새해의 복을 비는 따위의 일은 생략하였다. 왜냐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 때의 그 무책임함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정말 나는 저들의 복을 전심으로 비는가? 안부를 묻는다면 실제 저의 안녕을 두고 주께 의뢰하며 기도하고 사는가? 그래서 나는 그저 또 그렇게들 오가는 새해 인사에서 주춤하며 말을 아끼었다. 더욱이 요즘은 어떤 멋진 모양이나 표지가 만들어져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것이어서 말씀 한 구절까지 그 밑에 달린 그림을 보면 더더욱 주춤하게 된다.
사람 일 아무도 모른다. 자신조차 모른다. 그저 나는 말씀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신뢰할만한 사람이 못 된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그러므로 말씀으로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오직 말씀으로만 살아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그래서 어느 해보다 말씀으로 말씀 붙들고 살자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9).” 이를 늘 찬양함으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1).”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0) | 2020.01.04 |
---|---|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0) | 2020.01.03 |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0) | 2020.01.01 |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0) | 2019.12.31 |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0) | 2019.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