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2편 / 너는 내 아들이라

전봉석 2020. 1. 3. 10:06

20200105 주일

 

시편 2

너는 내 아들이라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2: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오늘 본문 시편 2편의 말씀을 4연으로 나누어 3행씩 묶어 읽으면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1(1-3)은 헛된 일을 도모하는 이 땅의 현실을 지적한다. 저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꾀를 내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한다. 그리고 장담하기를,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곧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복음을 가볍게 생각하며 현실을 빗대어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한다.

 

2(4-6)은 전능자 하나님께서 이를 비웃으신다는 것이다. 안 믿고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야 이런 말씀조차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다급하게 알리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듣던 두 사위들과 같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9:14).” 그런 세상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비웃으신다. 이에 진노하사 저들을 놀라게 하시며 이르신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6).”

 

3(7-9)은 우리의 왕이 누구인지 암시하고, 나아가 우리 자신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밝힌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음을 그저 자신의 선택이나 취향으로 여긴다. 오늘 말씀은 이를 엄연히 구분하며, 시편 2편의 화자는 우리가 바라고 구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내게 구하라!” 저는 전능자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저가 오히려 이 땅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셨다. 이제 우리 소유다. 우리는 우리를 얽매는 것들로부터 놓여났다. 전능자께서 이와 같이 하셨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4(10-12)은 곧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과 교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린다. 지혜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교훈이란,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이를 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이는 엄연한 경고다. 그때에는 돌이킬 길이 없다.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한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24:40-41).”

 

오늘 시편 2편의 주제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는 말씀으로 잡았다. 신년 예배 때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라는 1편의 복음을 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짓누르고 얽매이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그런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방패를 삼아 이 땅의 현실을 헤아린다. 내 곁에 여전히 믿지 못하고 사는 이들을 긍휼히 여길 줄 안다. 저들도 저들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것을 비판하기보다 헤아리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시금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저 구원 받았으니 그 기쁨으로 안이하게 살면 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다.

 

1.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로 누리게 되는 3가지 면책

 

1) 죄책으로부터의 면책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6:12).”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가 누구의 죄를 사할 수 있음을 알게 하신다. 곧 더는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는 자로 살게 하셨기 때문이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 자책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2) 삶의 고달픔으로부터의 면책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 일하나님의 일을 구분하지 않거나 스스로 그것을 혼동 없이 관리할 수 있다고 여기면, 그 첫 번째 드러나는 증상이 고달픔이다. 주의 이름으로 하면서도 늘 보면 죽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평가나 세상적인 기준의 승패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천국에서의 쉼과 안식을 맛보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3) 죽음 너머 심판에 대한 면책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즉 누구나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우리를 위해 성령이 증언하신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6).” 그러므로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5-16).”

 

 

2. 하나님의 자녀들로서의 헤아림

 

1) 함부로 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2).” 유난히 싫고 싫은 사람을 가만히 헤아려보면 그게 곧 나였다. 저에 대한 불만이나 불편함이 실은 여전히 내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사는 완고함이다. 그러므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8).”

 

2) 함부로 듣지 말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4:24).” 오늘날 온갖 거짓 진리가 난무하다. 오히려 저들의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이 합리적이다. 바로 그 합리적이라 하는 데서 우리는 믿음보다 상식을 더 추구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안의 죄성이다. 사람은 그리 선하지 못하다. 여전히 죄성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7:22-23).”

 

3) 자신의 것을 주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8).”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행위는 거룩을 실현하는 일이다. 준다는 것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고 나아가 희생을 자처하는 일이기도 하다. 쓰다 못 쓰는 것, 남은 것, 버릴 것, 없어도 그만인 것을 주면서 생색을 내고 기부를 운운하는 일만큼 끔찍한 가식도 없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11:1).” 무슨 소릴까? 준다는 것은 돌려받을 생각 없이 하는 일이다. 그 결과는 주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3. 하나님의 자녀들로서의 역할

 

1) 그리스도의 향기를 난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어디에 있든 좋은 냄새가 난다. 인상이 좋고, 말투도 좋고, 성격도 좋고 그 좋고 좋은 것은 엄청난 수련에 의해 배어나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다. 우린 또한 그러한 냄새를 분별할 줄도 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6).” 아무 데나 끙끙거리고 기웃거리지 말자.

 

2) 등불을 켜는 삶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5:15).” 몇 번 강조하였던 것처럼 빛이 되는 삶이란 게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니다. 희한한 사람들이 다 꼬인다. 만만하게 여기기도 한다. 빛을 보고 날벌레들이 날아들 듯이 또는 산 위의 동네처럼 뜨내기나 술주정뱅이들도 찾아드는 일처럼……. 그럼에도 우린 분명히 어둠의 빛이 되어주어야 한다.

 

3) 서로의 형편을 살핀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2:3-4).” 다들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하고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나오는 말

 

우리는 모순된 세상을 산다. 이 땅에서의 균등은 불가능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럼에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올해 우리의 표어는 찬양과 경배. 이처럼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이 결코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는 성경의 기본 강론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오히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10).”

 

그러므로 오늘 시인의 진술을 유념하자. 헛된 것을 도모하는 이 땅의 것들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우리는 전능자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런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죄책으로부터 자유하다. 고달픈 인생에서도 평안하다. 죽음 너머의 심판은 오히려 상급을 더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말씀의 교훈은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이는 창조주시다. 이 모든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