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전봉석 2020. 2. 9. 06:5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욥기 18:21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편 46:10

 

 

수아 사람 빌닷의 말은 가볍기 그지없다. 그게 어디 친구인 욥에게 할 소린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와 저를 비교하다니. 그러면서도 저의 말이 틀린 게 없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4).” 마치 우울해하던 내게 하는 소리 같다. 속상해하는 것도 모자라 공연히 자격지심에 떠밀려 의기소침해지는 내 마음이 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 같지 않았던가? 마음은 멋대로 울렁거렸다. 앞으로는 홍해가 흐르고 뒤로는 애굽군대가 몰려들고 있다. 양 옆으로는 비하히롯과 바알스본 산이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 꽉 막힌 도로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말씀으로 위로하고 기운 내라하는 말을 쉽게 해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먹먹하였다. 오후께 집 근처 교회들을 둘러보고 어느 교회로 가야 할지 묻는데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울어버리고도 싶고 .

 

그러할 때 오늘 시편의 말씀이 나를 붙들어 세우신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46:10).”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천하 중에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1-12).”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일이란 아득하고 묘연하기만 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가시적인 성과도 전혀 없다. 하나님이 무얼 이루시려는가. 불현듯 혹시 엄마와 같이 교회에 가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집 근처 가까운 데로 가면서 상태가 그러저러하니 예전에 교회를 다녔던 엄마부터 또는 동생과 함께 그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운 교회로 나가는 데 따른 유리한 기회도 있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알겠나?

 

말씀은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게 아니었다. 어찌 살았고 어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만 보게 한다.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한다. 다른 데 두었던 마음을 거두게 한다. 말씀 붙들자. 말씀으로 서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4:12).” 마음으로만 다가가면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우울함이다. 늘 보면 공든 탑은 무너진다. 애써 잘 키웠다 싶으면 어떤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거나 멀어진다. 그럼에도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13).” 내 손에 쥐는 게 없는 것 같다 해도 나의 결산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음이다.

 

말 귀도 못 알아듣는 아이와 뚱하니 억지로 끌려오는 것처럼 나오는 아이만 올 텐데, 이 아이도 와야 오는 것이고. 나는 자꾸 주일이 오는 게 싫은 사람처럼 울렁거리며 혼자 못마땅해 하는 요나 같았다. 만사가 귀찮고 나야말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텐데, 토요일 오후는 의욕을 잃은 사람처럼 축축 늘어졌다. 자꾸 속상하고 울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러할 때 말씀이 내게 가깝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30:14).” 자 그러니 이제 어쩔 것인가? 말씀이 묻는다. 우울감으로 밤새 뒤척이다 아침에 일어나 말씀 앞에 앉았더니,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15-16).” 성경은 때로 모질고 단호하다. 그러니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여겨진다고 해서 어쩔 것인가?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24:15).” 두렵고 떨리는 일은 상황이 어떠하냐가 아니라,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내 신세가 처량한 것 같다가도, 그래서 의기소침해지듯 나 같은 이가 계속 이 일을 맡아도 되겠나싶다가도, 그럼에도 내게 두시는 하루라, 주일이라, 그런(?) 아이들이라그러니 어쩔 것인가? 택하라! 오후께 아내와 무슨 이야기를 하다 곧 중학교에 올라가는 누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녀석은 분에 겨우면 쌍욕을 해댄다. 그런 욕까지 먹어가면서 아이를 계속 받아야 하나? 돌본다고 한들 저 애가 달라지기나 하겠나? 아내는 어이없어하며 답답함을 호소하였으나 나는 뭐라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전에 같으면 의분에 겨워 당장 때려 치라는 식으로 그만두게 하고 오지 못하게 하라고 일렀을 텐데우리 기분이 그렇다고 안 하고 말면 그만이겠나? 그 영혼이 안 됐고 딱하고 속상해서 그러는 것인데! 애가 많이 모자라고 억눌렸다. 학교에서는 더하고 어딜 가나 그 모양이다. 그러니 다들 그처럼 내치고 몰아세워 문제 아이로 취급하는데 우리까지 그러면 되겠나싶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모세의 처지나 여호수아의 처지와 같은 현실이 턱턱 오늘에도 숨이 막히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우리가 갖는 믿음이란 본래 무모한 것이고 미련한 것이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돼도 않을 일을 그렇다는 말씀만으로 될 것처럼 믿는 게 믿음이다. 현실은 여전하고 오히려 더 꼬이고 되는 일도 없는데, 그런데도 믿을래? 하면서 현실은 우리를 조롱하듯 씨발년아!’ 하고 욕까지 하는데, 그런 아이를 내가 계속 맡아야 해? 하는 아내의 서러움 앞에서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때론 우리의 일이 가혹하다. ‘저런 애를 그래서 또 공들여 애쓴다고 애쓰면 지들 잘나서 잘 큰 줄 알고 때가 되면 훌훌 떠나버리기 일쑤인데아내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어쩌겠어! 난 그냥 돈 때문에 해!’ 하는 말을 뱉어내듯 던져놓고 서러워한다. 설마 그저 돈 때문이면 돈도 제대로 내지 않는 아이를 두고 씨름할 게 있겠나? 그런 상태를 그 부모도 아는데 알면서도 어쩌지 못해 늘 미안해하는 일인 것을!

 

그러니 저들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도 어쩌지 못해 짓눌려버린 영혼이라! 우리가 못하겠다고 그만두거나 내치면 저 아이는 또 어디로 가나? 말마따나 저 애는 학원마다 쫓겨나서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다. 누구는 갈 데가 없어 글방으로 오고, 더는 할 게 없어 나와 같이 앉아 성경공부를 한다는데 나도 나지만 저들 영혼의 상한 심령이 우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냥 그만두고 말면 될 일이 아니다. 아이가 쌍욕을 하곤 그 분에 겨워 심통을 부리다 울어버리면 그게 또 안쓰러워서 어르고 달래며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달리 더 아뢸 수 있는 말도 없다. 본인도 어쩔 수 없어 가까운 집 근처 교회라도 알아보는데 그 속이야 오죽하겠나싶어서,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자꾸만 마음이 까부라져 몸은 늘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의기소침함에 젖어 있다가도 그러니 내가 기도하는 수밖에!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신다. 보호하신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그러므로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19).” 싫든 좋든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의 것이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20).” 이는 엄연한 값을 지불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21).”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누구를 붙들 것인가? 너는 오늘 택하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24:15).” 여호수아의 결연한 음성이 귀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 같다. 어떠하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것이 아무런 성과도 없고 오히려 더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되고 끝내 아무런 소망도 보지 못한다 해도!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4:43).” 환영 받지 못하고 인정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빙충맞기 이를 데 없다 해도!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46:5).” 말도 안 되는 일 같으나 그러할 것을 믿는 믿음이 곧 내 것이라. 내게 더하신 은혜이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