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전봉석 2020. 3. 7. 07:11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28

 

 

모든 상황 속에서 그 마음을 주께 향하는 것,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다하지 못한 마음은 번번이 다른 곳을 향한다. 나름 일리가 있고 그것이 더 타당한 것 같은,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누가 얼마를 도와줄 테니 어디에 새로 짓는 아파트에 투자를 하면 어떻겠냐고, 누구의 제안에 나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설령 그래서 소위 대박이 난다 해도,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내에게 대신 말하였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오늘 우리에게 두신 사명과 이 가난은 복이라. 다들 어찌 살까, 염려하고 있는 때에 우리는 주의 도우심으로 산다. 맡기신 이가 또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저를 인정함으로,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오늘 말씀이 내가 이제 남은 생애 동안에 놓고 싶지 않은 말씀이었다(3:5-6). 오후께 누가 서울 어디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에 지은 아파트를 분양 받자고 제안하며 그리 한참 설전이 오갔다. 나는 영순위여서 넣기만 하면 될 텐데, 그러니 자신이 투자하겠다며 끈질기게 말을 보탰으나 마다하였다.

 

하는 것도 없이 그저 이러고 있는 게 꼭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 같다는 말에는 피식, 하고 웃어주었다. 뭐라 한들 나는 더 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다. 저들은 정말 하는 일마다 다 잘 되는 것 같다. 오늘 시인의 진술도 그것이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73:2-3).” 돈 놓고 돈 먹기처럼 하는 일마다 번창하고, 다들 죽어라죽어라 한다는 이 시국에도 배달로 하는 장사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탓에 되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돈을 아주 갈고리로 긁어모으는 것 같다. 그러니 부러운가?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4-5).” 그런 저의 눈에 우리의 사는 모양이 비루할 수밖에. 듣다보면 부럽기도 하고 괜히 주눅도 들어 할 말을 잃고는 한다.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6-9).” 그래, 누구 말처럼 한 번 사는 인생이면 저들처럼 사는 게 폼 나는 것 같다. 떵떵거리고 아쉬울 것 없이 손만 대면 뭐든 돈이 되는 마술 같으니까! 저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11).” 나는 저의 말에는 별로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같이 동요하며 그랬으면 하는 아내에게는 그러지 말자, 더 가난하고 더 비루해진다 해도 그러지 말자, 하고 타이르듯 말하였다. 그래서 우리도 돈이 좀 들어오고 누구처럼 떵떵거리며 살게 된다고 하자, 그럼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을 것 같은가? 내가 아는 한, 돈이란 갖고 또 가져도 모자란 것이고 이내 돌아버리게 하는 것이 돈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이를 호도하여, 그것으로 교회도 넓히고 뭔가 지역사회에 이바지 하며 좋은 일에 쓰면 얼마나 좋은가? 하고 누가 말할 때 나는 굳이 다음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멈추시고 내가 하던 것을 멈추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내가 아는 성경의 원리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46:10).” 나는 이게 단지 수동적인 게 아님을 잘 안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하는 적극적인 순종이다. 누구에게도 이참에 혼자 있는 연습을 하면서 그동안 미루기만 하던 말씀도 좀 보고, 묵상도 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연습도 좀 해라, 하고 일렀으나 저는 좀이 쑤셔 그러지를 못했다. 자꾸 누구 안 믿는 친구들을 만나 다음 일거리를 부탁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궁리를 해야지 이러다 아예 다음 일이 없어질까 하여… 저는 내가 뭐라 할까봐, 몰래 만나고 다녔다. 몸도 약해서 누구보다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도도 높은데. 그러니 그게 참,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이란 게 그저 무력한 태도가 결코 아니다. 이보다 더 간절하고 절박하고 처절한 충성은 없다. 결코 가만있는 게 가만있는 게 아니다.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19:36).” 설령 가만히 있다 해도 계속 또 말을 하고 설왕설래 너는 어느 쪽이냐며 문제를 바라보는 쪽이 갈리고, 진영논리로 해석하고 상대를 깎아내리고 모함하고 한담하는 것이 뉴스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것처럼! 그러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73:28).” 오늘 시편의 교훈은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어떻게 종일 이러고 있어? 하고 아내는 오후에 교회로 왔다가 지겨움을 호소하며 먼저 집으로 갔다. 햇살 좋은 곳에서 이참에 책도 좀 읽고 말씀도 깊이 상고하면 좋으련만 그러고 있는 게 고역이라. 그러느니 집에 가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밀린 일을 하는 게 낫겠다며 혀를 끌끌 차고 갔다. 그런 것이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편은 기도하는 것이었으니,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24-25).”

 

내가 누구를 강요하고 대신 그의 과제를 풀어줄 수 없는 일이다. 오전에 아이와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이어가면서 병적으로 아이가 내세우는 방어기제에 모처럼 자꾸 토를 달며 아이를 궁지로 몰아세운 것은, ‘누구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하는 식의 자기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이다. 가령 자기 때문에 엄마가 힘든데 그런 엄마 때문에 자신이 병들었다? 그래서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것이다? 저의 말에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즉 아이만 병적이라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다. ‘너를 위해서’, ‘사랑하니까하는 식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남은 생을 헌신하고 봉사하려고하는 따위의 신념도 같은 맥락의 것이다. 즉 굳이 그런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다 지 좋아서 하는 일을 가지고 마치 널 위해희생하는 것처럼, 아이의 병적인 태도도 그런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고 그래서 말하다보면 억울한 것이다. 그게 그러니까 엄마 때문에 자신이 지금 그런 병에 걸린 것이란 소리가 된다. 한참을 같은 말만 되풀이 되어 그만두었다. 어쨌든 그래서 병적인 것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모두 그런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기도하신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으로 기도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7:25).” 그 예수님이 오늘도 동일하시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때로는 대범하게 때로는 뻔뻔하게 그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의 이름으로 구하고 그의 이름으로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곧 오늘 나에게 두신 사명이 그저 잠자코 들어앉아 혼자 이처럼 말씀이나(?) 뒤적이며 가족을 제외하면 아픈 아이 하나 오는 주일 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작성하는 게 그 일을 전부하면, 것도 귀한 사명이라! 고작 부자의 대문에 앉아 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허기를 달래며 헌데를 앓아 개까지 와서 저를 핥는 게 저의 일과였던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의 사명을 굳이 예수님은 예로 든 것인데,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이 아침 변방의 나라 어느 소도시에 사는 별 볼일 없는 나는 이처럼 저를 묵상하며 주를 사모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어떠하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 천하를 호령하는 누구도 저의 것이요, 빙충맞은 나의 한낱 이 보잘것없는 날도 주의 것이라.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16).” 이를 앎으로 주를 바라며 주를 더욱 의뢰하는 삶이란 엄중하고 참으로 귀한 사명이었다. 결국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73:23).” 내가 하는 게 아니다. 고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28).” 이 복을 복으로 아는 것이 지혜이다. 그리하여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24-25).”

 

누구 말처럼 서울 이제 마지막 남은 역세권 노른자위에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채 오래지 않아 몇 곱절의 이익을 낼 수 있으니, 자신도 그래서 투자하는 것이라며 나를 독려할 때에. 됐다, 나는.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26).” 나는 오늘 말씀으로 족하다. 심지어 곁에서 아내는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러자는 말에 저들 과제는 저들에게 두신 것이니 다만,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3:3-4).” 오늘 이 잠언의 말씀이 해답이다. 다른 수고가 우리를 병들게 하기 십상이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5).” 또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6).” 됐다, 그럼.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73: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