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잠언 8:34-35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편 78:72
이러한 때에 지혜가 부른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일련의 사태가 그냥 그러다 말, 어쩌다 그렇고 그런 사태가 아닌 것은,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지혜를 붙들어 생명을 얻고 주의 은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잠 8:34-35). 나는 누구에게 함부로 발설하지 않으나 어디서 몇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그로 인하여 몇 명이 죽고, 어떤 소요가 일어나는지를 주목하며 주의 뜻을 헤아린다. 그것이 오늘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주요한 의미다. 그렇게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1).” 온 나라가 난리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지구촌 곳곳이 두려움에 떤다.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2-3).”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시 78:72).”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역사를 주목함으로 돌이켜 새 사람을 입게 하려 하심이다. 그런데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32-33).” 그 와중에도 누구는 이문을 남기려고 매점매석을 하고 거짓을 꾸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그것으로 한몫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사람 참 가지가지다.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이 미련함이고 이미 형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 8:36).” 누구 탓하고 뭐라 할 거 없다. 어디가 이단이니 뭐가 진리니 비진리니 설왕설래 할 것도 없다. 우리는 여기서 더욱 주의 사역을 목격할 뿐이다.
주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오셨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러므로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감히 내가 어찌 의로운가?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결코 어쩌다 그리 된 것이 아니다.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일이다. 주님은 오늘도 그러한 나를 위하여 은혜를 중재하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이를 위해 성령을 우리 안에 두셨다. 주의 영이 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그러므로 오늘의 이런저런 사태는 우리로 더욱 주를 바라게 한다. 성화의 은혜가 환난을 통해 인내로, 인내로 인해 연단을, 연단을 지나 소망을 이루게 하신다(롬 5:3-4). 곧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그러나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3).” 이러한 상황을 통하여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16).”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집인 것을 안다. 내 안에 주의 영이 거하심을 안다. 성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곧 우리를 깨끗하게 하심이다.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사 4:4).”
아이가 집에서 좀 쉬겠다고 하여 그러라고 한 뒤 모처럼 하루 종일 느슨하였다. 누가 두렵다며 문자를 하여 길게 위로를 적어 보냈다. 실은 나 또한 두려움과 어떤 불안이 수시로 엄습하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을 감당할 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주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여실히 느낀다. 결코 내가 저보다 좀 나아서 그리하는 게 아닌 것이다. 말씀으로 위로하고 말씀 붙들고 의지하며 씨름하며 이와 같은 때에 더욱 주를 바람이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정말이지 말로만 들었더니 이제는 몸으로 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되새긴다. 저절로 고백이 된다. 내가 누굴 위하는 줄 알았는데 그 마음이 주의 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수의 뜻과 생각으로 생활하게 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내가 시작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내가 저 아이를 바란 것도 아니고 이와 같은 사태에 나의 증상과 불안과 염려를 짊어지고 이겨낼 것도 아니어서,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이런 세대에서 우리로 흠이 없게 하시려고,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15-16).” 바울의 진술이 이것이었구나! 오늘을 견디는 까닭은 그저 다시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 곧 생명의 말씀을 밝혀 달음질하였던 이것이 헛되지 않고 이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시려는 데 있었다. 오늘 잠언은 이를 연거푸 외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잠 8:6).” 저가 무엇을 말하는가?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우리도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지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우리 안에 무엇이 없어야 하는지,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곧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소리치는 것이다(7-9). 그러므로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10).”
다들 그냥 돈돈거리며 돈에 환장하여 이런 시국에도 한몫 잡으려고 거짓을 꾸미고 악을 도모하는 세태에 과연 우리에게는 무엇이 중한가?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11).” 누구더러 뭐라 할 거 없고 뭐가 어떠네, 말을 보태 누구 탓이라 할 것도 없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12-13).” 한 구절 한 구절 그 의미마다 새롭다. 말씀으로 냉정해야 한다. 내가 아는 이 진리를 지키고 근신을 찾아 얻어야 한다. 이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미워하는 일이다. 그때에 내 안의 교만과 거짓과 악한 행실과 패역이 버려진다. 이를 미워한다. 고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17).” 오늘의 이와 샅은 사태와 소요 가운데서 평소 우리가 얼마나 주를 바라고 의지하며 그것으로 기둥을 삼고 기틀로 마련하였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누구는 쉴 새 없이 통화를 하고, 불안하니까 했던 말을 또 하고 말을 말에 보태 또 한다. 또 누구는 뜬금없이 어릴 적에 읽었던 위인전이나 동화를 읽으며 소일거리 하듯 새삼 명작이라며 즐거워한다. 별의 별 짓을 다 하며 누구는 무료함을 달래고 불안을 억누르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린다. 나는 저들을 보며 더욱 더 가만히 있어 주를 바라는 일이 곧 은혜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물끄러미 주를 바라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를 되새겼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마치 잔잔한 호수로 낚시를 나온 것처럼 저만치 찌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누구를 생각하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이름을 되뇌다 누구를 생각하였다. 말 그대로 종일 그처럼 가만히 있는 일이 복이었다. 물론 불안은 의지와 상관없이 엄습하였고 보다 예민하게 가슴은 저 혼자 뛰고 벌렁거리기 일쑤지만… 그것으로 나는 더욱 주를 바란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이 자체가 은혜요 은총이고 귀하고 값진 선물이었다. 오늘 시인의 고백이 새삼 크게 비추인다.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78: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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