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잠언 18:10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시편 88:13
종종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주를 찾을 길이 없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 23:8-9).” 분명히 곁에 계시는데, 여기 어디서 일하고 계시는 게 확실한데, 도무지 만날 길이 없는 심정이니 불안하기 그지없다. 필리핀은 주먹구구식으로 행정처리를 하느라 우왕좌왕하는 듯하고 그것으로 거리는 봉쇄되어 재외국민 투표는 무산될 것 같으니, 아들이 하던 일은 공중에 떴다. 당장 대사관도 재택근무를 실시할 것 같다고 하니… 들려오는 소식마다 촉각을 곤두세울 따름이다. 우리나라도 좀 진정이 되는가 싶으면 도로 확산이 되고, 문제는 이와 같은 일이 더욱 빈번하게 되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만 바란다.
내 속도 타들어 가는데 누구의 전화로 저의 사소한 염려나 투정을 들어주다 기운이 빠졌다. 그럼에도 위로하고 달래다 보니 그에게 들려줄 말이 말씀뿐이다. 주의 이름이 곧 우리의 견고한 의뢰이고 견고한 망대라.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시 88:13).” 나는 가만히 앉아 말씀을 글씨로 적어보고 되뇌며 묵상하였다. 그와 같은 것으로 저에게도 일러 마음의 평안을 구하였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이와 같은 욥의 간구가 우리의 것이 되기를 기도한다. 얼른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겠으나,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8-10).” 이와 같은 말씀 앞에 깊이 젖어들어 묵상할 수 있으니 복이다. 이미 그렇다면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11).” 단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위로를 얻는 게 아니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10).” 우리는 모두 주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선악간에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로이드 존스 목사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저의 생애를 글로 쓰려는 후배 목사가 저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목회하시는 동안 무엇이 가장 어려우셨습니까? 그러자 저는 병상에서 말했다. 나의 목회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지…. 이는 오늘 우리 모두의 고민이고 붙들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바울의 말처럼 이런저런 것 차치하고 몸을 떠나 얼른 주와 함께 영생을 누렸으면 좋겠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몸에 있든지 몸을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이는 누구라도 주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될 터인데……. 주를 기쁘시게 한 것만 유효한 것이다. 그러니 천국만 들어가면 된다는 식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었다. 요행을 바라는 것으로 거기가 어디든 여기보다 낫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니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그가 몸담고 살던 시절이 어떠했겠나, 짐작이 간다. 아,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는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토요일 오후 평일처럼 교회에 나와 있다가 이와 같은 말씀에서 새삼 그 귀한 진리를 깨닫는다. 인내가 필요하였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사 30:15-17).” 가히 오늘의 모습이 아닌가? 잠잠히 주를 신뢰한다는 게 이처럼 어렵다. 이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타고 더 빠른 것을 구하여 자구책을 찾는다. 그러는 거 아니라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이를 거부한다. 때가 되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이 많을 것인데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는 말씀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 ‘잠잠하라’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라, 아들애가 조기에 일이 마무리 되어 귀국한다고 해도 2주간 별도시설에서 격리가 된다고 하니… 염려는 자꾸 꼬리를 물고 근심은 부풀려져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고만 하신다. 안달하고 조바심을 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은 저 혼자 볶여 침울하기만 하다. 그래서도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여기서 내가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을 묵상하였다. 이처럼 주신 바 한 날 한 날의 성실함으로 잠잠히 사는 일이다. 보내시는 한 영혼으로 족한 것이고 누구의 사소한 걱정과 보채는 심정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저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게 두신 목회라. 사명이어서 ‘고작’ 그 일에서도 충성을 다하는 게 내 일이다.
가령 뉴스를 보다 의료진들은 바삐 움직이며 사투를 벌이는데, 누군 제복을 입고 그 문을 지키는 일이 고작이라. 한 번도 저의 노고를 생각하지 못했다가 ‘저러고 서 있는 일도 고역이겠다.’ 생각하였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저 시키는 대로 자리를 지켜, 어느 요양병동 앞에 또는 무슨 종교시설 앞을 지키고 있는 익명의 여러 경찰을 보다 울컥하였다. 저의 일은 종일 그 자리에 있어 들고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인 것 같으나 저에게 주어진 명령이라! 토요일이나 평일이나 요즘 나는 혼자 나와 늘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는 그 일이 내게 두신 사명이라. 만일 저가 뭔가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의료진의 일을 대신할 수 없고 누군가와 접촉하여 일을 벌인다면 그게 더 큰일이라. 내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란 잠잠히 주를 바라며 주의 이름만 의뢰하고 견고한 망대로 삼아 내게 두신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는 것이라 해도 그 명령을 다하는 일! 문득 나의 눈에 들어온 저의 미동도 않는 자세가 새삼 귀하게 다가왔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에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세상이 나를 몰라주고 괄시하고 때론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곧 너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이 내게는 증거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16).” 내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 곧 누구들은 자신들이 더 빠른 말을 찾고 더 빠른 무엇을 의지하며 천 명 만 명 수많은 사람들은 그리로 달려간다 해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1).”
그러므로 내가 몸 안에 있든지 몸 밖에 있든지, 오직 나의 목표는 한 가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었으니…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마치 내가 누구를 구원하는 것처럼 또는 이 교회가 무슨 천국으로 인도하는 단체나 방법이 되는 것처럼 행세해서는 안 된다. 누구와 통화하다, 너는 너의 구원을 이뤄가고 나는 나의 구원을 이뤄갈 뿐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단지 믿음으로는 쉽다. 믿습니다, 하고 천국에 거저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며 안이할 때는 저의 믿음도 가짜라. 오직 주만 바라는 일, 그 이름을 견고한 망대로 삼고 흔들림이 없이 잠잠할 수 있는 것, 두시는 자리에서 주신 이의 뜻을 우러르며 오직 주만 의뢰하는 일.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시 88: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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