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시편 86:17
다들 참으로 어려운 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고 아이는 들어앉아 폐인처럼 지내고, 가게는 사람을 내보내고 자신이 혼자 장사를 하는데도 할 일이 없고, 이러다 모두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며 아래층 국숫집 여자는 아내를 붙들고 하소연하였다. 옆 사무실 새로 연 피부실은 손님이 없어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느라 애를 썼다. 그동안 우리가 누렸던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절이다. 너나할 거 없이 모두가 죽을 지경이라. 그러니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 생각 저 생각 궁리를 하지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이를 붙들 줄 아는 것이 은혜였다. 그런 거 보면 늘 없이 사는 것 같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항상 우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을 안다(신 1:31). 그 어떤 “광야에서도…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 우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던 것처럼 인도하신다(32).
같이 두렵고 같이 어려워도 우리는 이를 통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나야말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은 저 혼자 불안에 떨고 조바심을 치기 일쑤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신뢰함으로 견디어낸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곧 오늘의 이 어려움은 목적이 있다. 나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신다. 나의 겉사람은 낡으나 나의 속사람은 새로워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것이 특권이고 은혜이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주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함께 하였다.
이로써 주를 더욱 알게 하신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7).” 그러니 말씀으로 비춰볼 때 이와 같은 은혜가 아무나의 것이 아니었다. 어디가 아프고 마음은 어렵고 근심과 걱정은 두통처럼 가실 줄 모르지만,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욱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는 마음을 주심인데, 나는 저의 백성이 되고 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수업이 몇 주째 휴강되면서 아내는 친정에 다녀오고 오후께는 잠깐씩 교회에 들러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돌아간다. 집안 정리를 하고 낡은 농짝을 모두 내다버리고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지 마치 새로 이사 온 것처럼 정돈이 안 돼 어수선하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시려고, 나는 요즘 연습하는 게 있다면 아내의 문제나 딸애의 문제에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좀 이상한 논리지만, 문득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남은 남이고 가족도 남이다. 누구도 같이 할 수 없는 문제와의 거리두기는 ‘하나님과 나’의 거리를 더욱 친밀하게 한다. 공연한 참견이 오히려 서로의 영적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연습은 인위적으로 소식(小食)을 하는 것으로 삼시세끼를 적게 먹고, 소유(小有) 곧 적게 가지고, 소사(小思) 곧 생각을 적게 한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삶에서 가진 것이 적을 때 가능해지는 일이다. 가령 누구와 통화하다 늘 저의 바쁘다, 정신없다, 하는 소리에 토를 달 듯 뭐라 한 마디 한 게 그것이다. 너무 애쓰지 마라. 그러느라 눈만 뜨면 주식을 살피고, 어디 부동산 시세를 둘러보고 온통 마음을 뺏겨서 만나는 사람도, 주로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일도, 하는 일도 온통 그것, 무엇에 빠져 있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결국 금요일에 오네, 주일에 오네, 하고 먼저 연락하였던 녀석은 못 올 것 같다면 문자를 했다. 그럴 줄 알았다. 일주일 전에는 시간이 날 줄 알았는데,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눅 14:18-20).”
바쁜 게 능사가 아니다. 그러했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일련의 사태를 통해 부여하신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신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하신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내가 가장 ‘팔자 좋은’ 것 같다. 매일매일 설교 원고를 다듬고 관련된 성경 구절을 찾아 메모하고, 마음이 내키면 붓을 들고 말씀을 옮겨 쓰기도 하면서… 누가 보면 유유자적 유랑을 즐기는 것 같으나 실제 그러하다. 아프면 아픈대로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근심과 걱정에 불안이 가중되면 또 그런대로 그렇게, 그때마다 후히 주시는 하나님을 나는 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구하고 찾는 이마다 주가 더하시는 은혜를 맛보아 안다. 오늘의 여러 모양은 곧 교훈이라.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신 32:2).” 이를 아는 게 지혜이고 잃지 않고 사는 게 충성이다.
곧 생명의 샘이라. 그래서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 13:4).” 저녁마다 같이 모여앉아 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 어제도 말씀 가운데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내 안에 이는 의심이 불안이 되고 불안이 조바심을 일으켜 신경질적으로 내몰지만, 오직 믿음으로! 그런즉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4-15).” 그런 것이다. 누구를 탓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나 이는 모두 자기 욕심이 나은 것들이다. 오늘의 기도는 이를 물리치게 한다. 은총이 아니면 나를 내가 감당할 수 없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시 86:17).”
늘 돌아보면 그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도우셨고 위로하셨다. 그러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 오늘 잠언의 말씀이 진리다. 곧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32).” 화날 거 없다. 속상해할 일도 아니다. 결국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1).” 이 놀라운 진리를 알면 더는 흔들릴 게 없다. 이 모든 것을 주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4).”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7).” 우리가 가장 위로를 받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고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9).” 그래서 오늘 16장 말씀은 읽고만 있어도 복잡하던 길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다. 골치 아플 거 없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17).”
그러므로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20).” 그러니 오늘 내가 얼마나 큰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21).” 고로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시 84:4).” 나도 주께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11).” 그리하면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12-13).” 그러므로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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