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전봉석 2020. 4. 27. 07:06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이사야 3:13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시편 122:8

 

 

농부는 열심히 일하지만 서둘지 않는다. 기다릴 줄 아는 걸음걸이로 작물들을 재배한다.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걸음걸이를 연상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3:13).” 주가 하신다는 것, 일련의 여러 상황이 말씀으로 집중하게 한다. 성경은 참여를 유지하게 한다. 감정을 느끼고 성경 가운데 내 이야기로 동화된다. 누가 말하길 이야기는 자장권을 갖는다고 했다. 자장권이란 자기(磁氣)의 작용이 미치는 범위로 어떤 사람이나 그 일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의 범위를 말한다. 가령 수천 년 전 여호수아는 여리고에서 라합을 구했다. 그것으로 그전의 신분은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꾸었다. 예수님은 나무 위에 오른 삭개오를 구하셨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19:5).”

 

뭇 사람들은 수군거렸으나 개의치 않는 이와 같은 자기권의 범위에서는 듣는 사람은 듣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이내 듣지 않는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6-7).” 누구는 그렇고 누구는 왜 그렇지 않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누구 이야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6:43).” 뒤로 돌아앉아서 나누는 이야기로는 전달될 수 있는 말이 한정된다. 그리하여 거절하는 마음에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그 결과는 참혹하여서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1:28-31).” 이는 오늘 날 저마다 뛰어드는 개인방송의 추세이고 자칫 개인미디어가 갖는 한계다.

 

수군거리는 자는 참여하는 자가 아니다. 뱉은 말의 진의도 알 수 없다. ‘개 눈에 똥만 보인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2:20-21).” 바울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면밀히 묵상하다 보면 오늘의 우리 자세를 바로 할 수 있다. 나는 마음이 앞서지 않기를 위해 기도한다. 그때 되면 또 그렇듯 앞서봐야 예기불안뿐이다. 이를 알면서도 마음은 요동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니어떤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는가?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하셨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9:11).”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못 오던 이들이 함께 예배에 왔다. 이상하게 말씀증거에 힘을 더하셨다. 아이 일로 짓눌리던 마음도 잠시 진정이 되었다. 예배 후 같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끼어들 게 없었다. 어디 분양하는 아파트 시세나 아이들을 두고 무엇에 투자하는 이야기로 온통 관심들이라장모는 소파에 누워 나는 책상에 앉아 서로 창밖만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는 것에 안도한다. 전에는 주체이길 바라던 것에서 이제는 벗어난 듯 안 듣게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관심 밖의 이야기라. 같은 이야기가 맴도는 가운데 다들 그러고 사는 일에 대하여,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115:4).” 말씀의 분명한 언급은 우리 스스로의 주인 됨이다. 그것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5-7).” 그런 걸 갈구하느라 내후년까지 내다보며 어느 지역을 운운하는 일이었으니.

 

우상은 뭐 엄청난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대신 내가 어찌 하려는 모든 것에서의 주체다.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8).” 모르겠다. 나는 이제 그런 이야기 밖에 있고, 다른 이야기 안에 있기를 바란다. 자꾸 나를 결부시켜 좋은 조건을 강조하며 끼어 들이려 하지만 그것으로 분산되는 나의 마음을 나는 염려한다. 즉 옳고 그름을 떠나 마음이 빼앗긴 데 시선이 가고 관심이 기울어져 온 마음이 쏠리게 되어 있다. 두 가지를 병행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변명 같지만 나는 그래서 더욱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이야기 밖에 있으려고 한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으려고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1:11).” 나의 안달은 병적이라 결코 내가 내 스스로 의연할 수 없음으로 더욱 더 주의 인자하심만이 간절하다. 모든 일은 주의 것이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16:33).” 나는 허술하고 헐렁하고 보잘것없으나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46:9-10).”

 

그 라합이 나였고 오늘의 삭개오가 나이다. 나는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내 이야기를 읽는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4:11).” 하나님의 주권은 전적으로 그를 의지함으로 생성된다. 나는 전적으로 저의 자기권 안에 들기를 바란다. 이를 벗어나게 할까 하여 소위 누가 말하는 내 책을 내는 일이니, 어디 누구처럼 무엇을 도모하는 일이니, 앞으로 몇 년 뒤를 내다보고 투자목적을 운운하는 일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열외이다. 다만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3:37).” 여기 두시는 이도 그리하여 내게 보내시는 일도, 맡아 감당해야 하는 목적도 모두 주의 것이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4:15-16).” 말씀의 주도권에 나는 승복하길 바란다. 그러지 못해 병이 날 정도고 약물을 의존해야 할 정도이나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9:4).”

 

그러므로 이제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122:8).” 다만 저들을 위하여 기도할 따름이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