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2:8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12:6
아무나 알 수 없고 할 수 없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이를 임의로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없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11:25).” 나름 난다 긴다 하는 자들은 저마다의 길로 간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6).” 그러므로 받는 자 외에는 아는 자가 없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27).”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이제 으쓱, 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오늘 이사야서의 첫 구절을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이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42:1).”
나를 구별하여 세우신, 이 구원의 은총보다 더 귀하고 감사한 게 또 어디 있겠나? 인생 뭐 없다. 어느 유명한 인사가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빚을 잔뜩 졌고, 누구는 암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사연이 덮쳐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고 보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별 수 없다.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이치를 알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내 의지가 아니다. 나의 노력이나 학식이 아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5-17).” 저가 오늘 말씀하신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곧 그 하나님의 영광을 나에게 주신 것이었으니… 이를 귀히 알고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게 하셨다.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 23:15-17).”
곧 하나님의 영광은…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 12:6).” 이를 오늘 시편의 말씀으로 다시 묵상한다. 말씀의 순결함이여.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저들에게는 감추시고 한 줌 재만도 못한 나에게는 알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13-14).” 이렇게 이번 한 주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에 두고 살았다. 시편 19편 말씀으로 설교원고를 작성하면서 말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 이 얼마나 신나고 흥분되는 일인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2-4).
아침마다 아이를 대하면서 저와 이어갈 수 없는 말의 세계에서 나는 주춤한다. 그래도 조금만 나아지면 저 아이의 생활이 한결 나이질 텐데… 뭐라 하면 속상하고 가만두자니 안타깝다. 가령 글을 쓸 때 ‘있었던 일’만 쓰라는데도 아이는 그걸 어려워한다. 횡설수설 현란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의 글을 지적하고 이런 표현으로 너의 사정을 누가 알 수 있겠나?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다 나는 주께 숨는다. 저 영혼을 주가 사랑하심을.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 6:3).” 아이는 주를 바라고 주께 찬미한다. 누구는 병적이라 하고 누구는 그게 저 애의 증상이라고 하지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이 놀라운 시편의 한 구절 말씀이 모든 얽힌 문제의 답을 준다. 화초를 몇 개 키우는데, 모든 생명은 주를 찬미한다. 두 팔을 뻗어 하늘을 우러른다. 한낱 미물의 볼품없는 군자란도 해를 향하여 잎사귀를 뻗는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하물며 이를 모르고 부정하며 사는 생명은 사람뿐이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1-23).” 그러니 누가 아이의 상태를 어떻다 하고 그래서 그런 것이라 하면 나는 속으로 그런 말 하는 이의 병든 영혼을 안타까워한다. 그 마음이 알 수 없도록 덮인 것이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전 3:19-20).” 그러니 내가 아이를 대할 때에 더러는 속상하고 열 받아서 뭐라 나무라다가도 그러한 형편과 처지에 두신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를 돌보고 담당하는 내가 복이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사람들이 사는 일을 가만히 보면 다 저들만의 세상이 있고 저들만의 신이 있다. 자기들의 영광이 다르니 누구는 돈의 영광에 취하고, 누구는 직위와 성공의 영광에 빠진다. 그 영광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무슨 예술대상 시상식을 잠깐 보면서 저마다 그 영광을 알고 감격하며 감사의 말을 남기는데… 기형적인 삶의 형태에 대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모든 영광을 받으실 이는 한 분이시라.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이와 같이 오늘의 말씀이 순결하여 나로 하여금 그릇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하신다. 주를 바라고 주만 의지하게 하신다. 전에는 저들과 같이 추구하고 바라던 영광에 대하여, 그것을 위해 한 생을 다 바쳐 나름은 가치 있는 수고와 노력으로 사는 게 가장 귀한 것인 줄 알았는데… 성경에 이름은,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죽도록 성실하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하루 한 날의 짧은 동안에도 감사할 것은 이어졌다. 어머니의 하지혈관이 4, 50%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막혀 있어 또 시술을 해야 하면 어쩌나 염려하였는데, 약물로 치료할 수 있게 하셨다. 이제 노년의 부모를 보며 생의 끝자락에서도 주의 은혜가 아니면 완주할 수 없는 인생에 대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이 저만치 마주 앉아 종일 공부를 하니까 덩달아서 허튼짓을 할 수 없어 나 역시 집중이 잘된다.
이런저런 염려와 근심이 떠날 날이 없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이제 말씀이 있지 않던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와 같이 한 구절 말씀이면 저절로 그 마음에 주를 바라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29-30).” 하시는 말씀 앞에서는 감사와 경배가 저절로 인다. 나는 내가 누구보다 연약한 것을 잘 안다. 주의 도우심이 아니면 누구를 위하기는커녕 나 하나도 지탱할 수 없이 나약한 것을. 그리하여 아침 일찍 아이가 오면 싫으면서도 좋고, 회의와 갈등이 오히려 주를 더욱 바라게 한다. 아침마다 일찍 나를 일으켜 깨우시고, 이처럼 말씀 앞에 끌어다 앉히시며 말씀으로 말씀을 이어가시며 말을 건네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남은 날들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라.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오늘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게 전한다.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20).” 언제쯤이나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23).” 그러므로 이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은총이고 축복이었으니!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곧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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