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예레미야 14:22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시편 50:1
때론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아는, 다 아는 사람처럼 굴 때가 있다. 그 존엄과 위엄 앞에 떨 줄 모른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시 50:21).”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엄하신 존재를 묵상하게 하신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곧 이 모든 게 주의 것임을.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시 50:22).” 두려움과 떨림은 마땅한 일이다. 같잖은 것 앞에서도 긴장하고 떨며 조심하면서 하물며!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전 12:3).” 결국은 일이 터지고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그의 말씀 앞에 승복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살면서 그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심을 알지 못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주 앞에 나의 경솔함과 그 마음에 넘치는 불안을 안고 아뢴다.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렘 14:22).” 오늘 이 모든 일을 주께서 행하심이다. 누가 결혼하여 얻은 첫 아이가 기형이다. 의료사고로 병원이 이를 책임진다고 하나 그 슬픔을 위로할 자가 누구이겠나? 저들에게 둘째를 주시고 하나님이 희망을 더하셨다. 그런데 누가 위암이다. 부디 주 앞에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어머니의 마음이 미어진다. 주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바, 고통으로 감싸주셨구나. 이제 노년에 자식들 다 키우고 좀 쉬며 누릴까 하였는데 신장에 문제가 생겨 투석을 해야 하고 스스로 거동도 불편하게 되었으니, 저의 신세가 처량하게 되었다. 나름 인생 설계를 잘하며 살았다고 자부하였는데 큰 아들은 번번이 사업에 실패하고 그 좋은 학벌과 직위는 물거품이 되고 어디 김치공장에서 일을 한단다. 더욱이 하나 있는 손자는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온갖 추행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시 50:1).” 인생 어느 게 우리 뜻대로 되던가? 그런 가운데 감사뿐이다!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벧전 2:17).” 나는 내 곁의 사연을 접하면서 저들 인생이 어찌 우연처럼 놓이겠나? 주의 뜻을 살핀다. 말씀의 참 주인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지존하신 위엄 앞에 두려워할 줄 안다. 예배 마치고 집에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딸애의 누가, 또는 공부방으로 오는 아이의 어느 가정이…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주의 음성을 듣는듯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히 12:28).” 비가 오려는지 잔뜩 흐린 날이었다. 어디가 아프고 힘에 부쳐 월화 이틀은 아이를 오지 말라하였다. 큰 비가 온다 하기도 하고 아플 거여서… 나의 말에 다들 풋, 웃음을 지었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어느 가정의 어떤 이야기 누구의 사연을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를 읽는다. 이는 모두 그리스도의 편지라. 나의 사는 이야기는 그리 읽혀져 하나님이 드러나야 한다. 저가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내용으로 쓰여야 한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이런저런 사연이 괜한 게 없다.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이고, 내가 전하여야 하는 말씀이다. 나는 그리 듣고 이해하였다.
그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분이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5).” 내가 주께 바라는 한 가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이제 더는 세상 무엇에 눈길을 빼앗기고 마음을 두고 살고 싶지 않다. 이를 전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그럼 모두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하는가? 그 모든 게 주의 것이라. 공부하는 데서, 돈 버는 일에서, 공직에서, 직장 생활에서 ‘그의 성전을 사모하는 그것이라.’ 주의 임재, 그 두려운 영광을 사모하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욥 37:20-22).” 마치 주를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 다 아는 사람처럼 굴 때가 두려운 것이다. 누구와 이야기하다 ‘또 그 얘기냐?’ 하는 투의 반응 앞에서 나는 난감하다. 저가 하나님에 대해, 그의 존엄을 알면서도 그럼 그러한가? 돌이킬 줄 모르는 영혼에게,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나 1:5-6).” 이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복이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7).” 하는 고백이 내 것이라. 더는 잃지 않을 나의 중심이 되었다.
누구 이야기로 또는 내 자식 일로 마음이 어수선하다가도, 그리하여 내 마음이 견딜 수 없어 안정제를 의존하며 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해도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사 8:13).” 딸애가 월요일에 친구들을 만나고 누구를 위로한다고 할 때 그와 같은 사연에서 주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묵상하고 목도할 수 있기를. 아들이 공부하느라 단순한 시간 속에 갇혀버린 듯하나 그런 와중에도 심중에 주를 바라며 주의 참뜻에 중심을 다할 수 있기를. 비록 아픈 아이라, 저니까 이 자리를 지키는 한 성도로 족할지언정 그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이가 계시다는 사실 앞에 나는 두려워 떨 줄 알기를. 부디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어떤 조건과 대가의 의미가 아닌 것을…. 오직 말씀이 답이다. 세상만사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면서 노후를 대책하고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는 일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기를. 주신 바 한 날의 삶으로 족하고 그것으로 감사할 것이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나는 그 하나로 전부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그 사랑, 그 은혜의 값을 보답할 수 없어 오직 감사함뿐이다.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시 74:17).”
당장 죽은 자의 장례를 두고도 진영논리와 손익계산을 하고 있는, 부디 “학대 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21).” 두려워할 줄 모르는 곳에는 자기주장들뿐이다.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분깃은 그의 백성이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신 32:9).” 온 몸이 파스를 붙이고 일찌감치 안정제를 삼키고 이처럼 새벽에 일어나 주 앞에 앉은 나로서는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8).”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은 덤덤히 또 하루를 사는 것으로 주를 바람이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63:6).” 잠들다 주를 부르고 아침에 주를 찾으며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46:5).” 그러므로 내가 그의 성에 거하는 일이면, 이 한 날의 생으로 족하고 귀한 것을. 이에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50:4-5).” 주의 백성으로 주와 언약한 자로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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