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전봉석 2020. 7. 14. 05:52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예레미야 15:18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51:4).” 하는 다윗의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정이 전해지는 것 같다. 마음의 일을 어찌 할까? 머리로 판단으로 이성으로 주체할 수 없는 세계여서 저 혼자 안고 가야 하는 마음이 있다.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14:10).” 누구에게 말로 드러내려 하면 이미 그 의미는 희석되거나 발효되어 본래의 말을 잃는다. 하려던 말은 간 데 없고 슬픔뿐이다. 감정이 나를 끌어재끼니 휘둘려서 살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마음은 통회하는 마음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51:17).”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 이로써 옛 두려움은 물러가고 새 두려움이 마음을 다스린다. 곧 주를 경외함이며 저의 통치와 심판을 구한다. 마치 억울한 이가 호소하며 재판관의 공정한 판단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 앞에 나의 비참한 심정을 아뢰고 고하는 일로 애통하며 자복하는 상한 심령으로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31:18-19).” 주 앞의 심정이라. 이 마음은 내가 어찌 주체할 수 있는 대목의 것이 아니다. 곧 오늘 다윗의 고백처럼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18).” 주가 다스리실 일이다. 그러할 때 나는 입을 재에 문지른다. 혹시나 소망이 있을까 하여,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3:28-29).” 이렇게 말하면 자격지심이고 저렇게 생각하면 열등감 때문이란 것도 알겠는데, 내가 자주 시달리고 볶이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무엇을 꾀하면 오히려 서로는 불편해한다. 영락없이 상처를 덧내고 생채기를 낸다. 그래놓고는 또한 그게 마음이 아파서 나 혼자 돌아앉아 주의 이름을 부른다. 신기하지? 그러할 때 나는 한없이 주의 긍휼과 자비하심만을 구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3).” 마치 저의 심정 같다.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만히 고개 숙여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만을 바란다. 사람을 보다 저의 도움을 구하다 나는 도리어 고꾸라져 주께 더욱 면목이 없이 송구하기만 하다.

 

내 안의 만족함은 그 어떤 것이 아니었다. 또는 나의 무엇으로도 구원을 이룰 수 없고 누구를 돌이킬 수 없으며 저를 변화시키거나 바꿀 수도 없다. 다만 오늘 다윗의 심정과 같이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51:6-7).” 주께서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씻기셔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죄를 지우소서.’ 내가 아무리 덮고 무엇으로 대신하여 조금은 나은 어떤 것을 구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화근이 되어 서로를 덧나게 하기 일쑤이니,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59:4).” 내 안의 두려움은 노여움이었고 미안함은 자신에 대한 증오였으며, 이는 열패감으로 누가 뭐라 하는 이 없는데도 저 혼자 끙끙 앓는 자격지심이어서, 본래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비틀어서 본다. 그래놓고는 또 저 혼자 서러워서 눈물을 훔치고는 하는 일이었으니, 이는 다 나를 정하게 하려 돌이키심이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15:19).”

 

그리하여 이제는 세상 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외면과 저주를 두려워할 줄 안다. 이 두려움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로부터의 자유, 자신에 대한 자책과 자격지심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더는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마음은 참 다스려지기 어려워서 내가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는 데서 더욱 주의 긍휼하심을 느낀다. 가령 일련의 사회 사건을 보면 천태만상인 것 같으나 하나이다. 다들 자기 이익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것으로 정의구현을 외치고 의로움을 실현한다고 하지만 겉과 속은 엄연히 다른 것이어서 저들도 자기 속을 미처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빼도 박도 못하게 하시는 것이었으니, 양자의 영을 주심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8:15).” 너무 뻔뻔한 것 같지만, 그와 같은 몰골로 주를 바람이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고후 1:17).” 나로 하여금 주 앞에서 만 있게 하려 하심이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18).” 이는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19).”

 

말씀 앞에 승복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19-22).” 그러니까 이를 내가 이룬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 수고와 애씀으로 오늘의 내가 가능하게 된 것이라면 이 또한 모래성 같아서 허무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누가 생전에 그처럼 고상하고 고결하였는데 튀어나오는 증언이 추잡하고 더러운 행실인 것에 기가 막힌다. 누구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은 본디 그게 전부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두렵고,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두렵다. 그런데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는 성경의 일침이 이제 나는 든든하다. 쉬운 말로 나는 이제 붙들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흘러가는 일에 마음은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고 저 혼자 끙끙 앓듯 넌덜머리를 낸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어서 감사하다. 다시 살 수 없어서 감사하고, 돌이킬 수 없어서 감사하고, 내 힘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어서 더더욱 더 감사하다. 그러니 주님뿐이라.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주가 나를 그리 두셨다. 그러므로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이와 같은 확신이 내 것이라는 게 나는 참으로 든든하다.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삼하 23:4-6).”

 

조금은 민망하고 처량하였으나 자꾸 눈물을 보이고 지질하게 굴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 되었다 해도, 하나님은 내가 경배하실 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1:5-6).” 나는 주 앞에 서며 말씀을 붙듦으로 살아서 이제 남은 생은 온전히 주만 바라기를. 그리하여 나는 더욱 더 주를 확신하며 주를 알아간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8:13).” 다들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고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설령 세상은 온통 그러하다 해도 오늘 말씀의 고백이 내 것이 되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15:16-17).” 내 안의 주의 분노가 선하심은 이로써 세상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 전에 즐기던 것으로 세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19).”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51:3).” 이와 같은 죄과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소서.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6).” 고로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8).” 그리하여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