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전봉석 2020. 8. 6. 05:50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예레미야 38:12-13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시편 74:16-17

 

 

모든 것이 주의 것이며 어떠한 것으로도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신다. 구스인 이방인의 손으로 예레미야를 도우시고 빛과 해를 마련하시고 땅의 경계를 정하셨다. 내가 허물과 죄 가운데 있을 때도 별개의 사람을 붙이시고 나를 돕게 하시며 내가 모르는 동안에도 나로 하여금 주의 길을 가는데 기틀을 마련하셨다. 가령 신학부로 편입하여 공부할 때도 억지로 떠밀려 누가 학비를 다 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저와 나는 인간적으로도 그런 도움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랑이 우리의 지식을 넘친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3:18).”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왜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시고 이처럼 주의 길 가게 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말씀을 나누면서 나는 누구에게 그리 확신을 더해주고 싶었다. 한참 주저하고 망설이며 회의하고 갈등하고 있을 때라. 여기서 말고 저기서, 이것 말고 저것을 하면 좀 낫지 않을까하며 회피 아닌 회피와 방조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때였다. 나도 그러했고, 나라면 나 역시 멀리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 깨달을 수 있겠으며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을까?

 

본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염려이고 은근한 염려는 온갖 두려움을 내포하며 불안을 조장하여 교묘하게 미룬다. 그러기 위해 낭만을 꿈꾸게 하거나 자기 안의 여러 갈등을 동원한다. 내 안의 내가 하는 일인데, 그것은 우리의 죄성이다. 본디 하나님을 멀리하고 주의 길을 꺼려한다. 겉으로는 목사로 장로로 훌륭한 인품의 성도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나 실은 그 위장과 위선이 가히 자기 자신도 속을 정도이다. 도대체 어느 것이 나인지, 내가 나를 믿는 일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증인으로서의 소명을 부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8-9).” 오직 자기 뜻과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예수 안에서의 은혜 때문이라니! 나 같이 쓸모없고 진저리쳐지는 몹쓸 인간을 두고 어쩌자고 주의 사랑은 그처럼 확고하신가? 이는 나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나의 지식으로는 알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으로이다. 그리하여 내게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주셨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4:2).”

 

우리의 만남을 주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곧 저가 오고 내가 기다리며 저와 나누는 말씀과 말과 우리의 시간 속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심을 두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것으로 주께서 또한 상을 주신다니,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11:18).” 그러니 주를 경외할 수 있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주를 경외하였다고 상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그야말로 우리는 거저먹는다! 나는 저에게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일이 가장 쉽다, 믿음 안에서 주를 경외하는 일이 인생 그 어떤 일과 비교해도 가장 쉽다고 말해주었다. 정작 신앙생활이 어렵고 믿음이 버거운 까닭은 자신이 자신을 이고 지고 그 무게에 눌려서이다. 내가 하려니까 목회도 고역이라.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부르기만 하면 나타나는 놀라운 일이 생겨난다. 먼저는 불의에서 떠나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떠날지어다! 하는 명령형으로 서술되었지만 앞서 분명히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섰고 그 위에 인침이 있었다.’ 이 놀라운 사실은 불가항력적이다.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부르심의 소명은 괜히, 아무나에게 부여되는 은혜가 아닌 것이다. 또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나타나는 것은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을 엄히 경계하신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20:7).” 함부로 주를 부를 자는 주의 자녀 가운데 없다.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을 우리 안에 두셨기 때문이다. 하여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20:3).” 그럼에도 우리가 불현듯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 섬기는 경향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요구조건을 가지고 주의 뜻을 바라니, 본래 주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이는 어찌 감히 우리가 주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주의 이름을 부를 때면 나의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여실히 느끼고 주 앞에 부복하게 된다. 어찌 감히 고개를 들까! 다만 주의 풍성하신 사랑만을 힘입어 주의 성전에 들어감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5:7).” 누구와 만나고 함께 성경을 공부하면서 나누는 말 가운데 주의 영이 주도하신다. 생각지도 못한 것을 깨닫게도 하시고 전혀 정리가 안 되고 뿌옇기만 하던 일도 선명하게 보인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2:11).”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뭐 대단히 그럴듯한 행색과 모양을 갖추어 일을 꾸미고 이루어가야 하는 게 아니다. 내 곁에 두신 자녀가, 처와 그의 관심이 나에게 맡기시는 소명이라. 어디 멀리 어떤 영혼을 두고 막연하게 외치는 구호가 아니었다. 때로는 넌더리나고 진절머리 쳐져도 그게 오늘의 사명이라. 어떨 때는 자폐아가 오고, 분노조절이 안 되는 아이가 오고, 이를 구슬리고 어르고 달래는 게 일이라. 이를 그저 밥벌이로 생각하면 지겹고 한심하기까지 한 일이겠지만 핍절되고 황폐한 한 영혼이라. 안 믿는 가정에서 안 믿는 부모 밑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아이라! 나는 아내가 그 아이를 위해서 라면 한 그릇을 끓여주는 일이 귀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당장 저 아이에게 예수를 말하지 않고 성경 한 구절 들려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해도 그렇듯 주님의 마음으로 마주하고 대하는 일 자체가 소명이었다. 이를 위해 부르신 것이다. 소금이 소금이라 외쳐야 소금 맛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 다만 녹아지는 일!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15:11).”

 

우리는 이를 알기에 안 믿는 가정의 저 아이를 긍휼히 여긴다. 아니, 내 아들의 서툴고 어색해하는 긴장과 초조를 어른다. 위하고 참고 또 기다린다. 주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주의 사랑으로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내 자식이라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다. 내 처라고 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오직 주의 사랑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그러할 수 있는 까닭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12:28).”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맡기시는 게 아니다. 전혀 엉뚱한 미래를 꿈꾸게 하심이 아니다. 여기, 있는 그대로, 오늘의 나로 하여금 세우신 일이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믿음의 분량대로 그 주신 바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것이다. 그리하여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묵묵히 주신 바 오늘의 이 사명을 다하는 것! 때로는 진창에 빠져 거꾸러트림을 당하고, 갇힌 바 되어 놓임을 구하는 길밖에 없으나그런 와중에도 주께서는 미리 예비하신 손길과 여러 방편의 구제와 도움으로 우리를 부르신 그 소명을 다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38:13).”

 

때론 그 결과, 처지가 볼썽사납고 별 볼 일 없는 것일 때도 있으나,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74:12).” 고로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15).” 이 모든 게 주의 것이며 주께서 다스리시는 일이라.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16-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