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39:1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편 75:7
유다의 시드기야 왕은 눈이 빠지고 그 아들들은 처형당한다. 고관대작들의 자제들은 도륙당하거나 끌려간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렘 39:17).” 하지만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시 75:4-5).” 아무리 말씀을 더하셔도 듣지 않더니, 기어이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7).” 말씀의 진술이 참혹하다. 갈대아인들에 의해 성은 무너지고 바벨론에 의해 함락 당한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8).” 시적 정황이 예레미야서의 내용과는 역사적인 시간대가 다르다 해도 그 모두는 한 이야기다. 오늘도 다를 게 없으니 주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기어이 ‘하나님이 쏟아내실 것이다.’ 마침 설교원고를 작성하고 한 주간을 보내는 동안 주의 심판을 묵상하였고 그 재판정에 우리가 설 수 있는 것은 대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하심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우리가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나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그게 아니면 우리도 멸망의 선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 75:7).” 오늘 시편의 말씀으로도 나는 여러 번 입에 머금고 되뇐다. 엄연히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우리는 주의 심판 앞에서 예외가 된다. 이와 같은 택하심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1).” 예외는 없다. 그런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 그러니 이를 누가 부당하다 하겠나?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4).” 주께서 하시는 일이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15).” 이는 조건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3-34).” 즉 심판으로 견딜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나 이 모든 값을 대신 지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우리는 변호받는다.
우리와의 이 친밀한 관계는 그리스도 자신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그 가운데서 긍휼하심으로 영광을 돌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의지다. 우리의 이해와 상식으로는 닿을 수 없고, 그 어떤 수고와 노력으로도 이를 길이 없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다만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18).” 이와 같은 주의 뜻을 가만히 묵상하고 되뇌다 보면 오늘의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며 감사할 따름인지,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23).”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누가 감히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나? 거주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 값은 엄청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죄를 대신 지심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야말로 전우주적인 역사가 이 값이다. 즉 나는 그 값을 주고 산 자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이 넉넉한 은혜로 하나님이 나를 감싸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로 반드시 은혜의 자리에 이르도록 이끄실 것이다. 결국 사탄은 멸망하고,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슥 3:2).” 우리의 더러운 옷은 벗겨 제거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히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4).” 그 곁을 천사들이 지킨다.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5).” 말씀을 따라 겅중거리듯 읽고 메모하고 묵상하면서, 주의 은혜에 나는 몸 둘 바를 알지 못했다. 나 같은 게 뭐라고 주께서 그렇게까지 사랑하시는가? 그 사랑의 권위는 스스로 가지시는 권위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주님은 당당히 아버지께 주의 권리를 주장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8).” 이 영광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주는 또한 내어주실 리 없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7:9-10).”
나는 주의 소유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10:3-4).” 예전에 아브라함의 기도에서도 드러났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그만큼 나에 대한 값은 엄청난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고전 6:2).” 내가 그의 속죄함을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이는 엄연히 피 값으로 주어진 몫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나는 이 여정을 존 번연의 <대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책을 읽으며 놀라워하였고 메모하면서 감사하였다. 사랑을 입은 자녀로 산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일인지,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1-2).” 어스름 날이 밝아오는 이 아침, 부지런히 메모하였던 것들을 보며 오늘 예레미야서의 참혹함과 시편의 절박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이 귀한 은혜를 어쩌자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사용하셨을까? 나로 하여금 재어준 구역 실로 아름다운 기업으로 삼으시려고,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곧 이것이 나의 산업과 나의 분깃이 되게 하셨다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5).” 그 주님이 나의 주인이요, 나는 주의 것이라. 심판 날에 나를 위해 대언하실 것이다. 아무도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고 정죄하지 못할 것이다. 나에 대한 소유권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 1:5).” 그 예수님이 나를 두고 강하게 주장하시는 것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5).” 나는 저의 살이요 저의 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이와 같은 말씀으로 감동하고 감격하며 책을 읽고 말씀을 준비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분에 넘치는 은혜이고 은총이었다. 다들 어떠네저떠네, 너무나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이 땅에서 오직 주를 바라며 주의 은혜로 감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가만히 공부에 여념이 없는 아들의 수고와 애씀에 안타까워하고, 먼 길을 출퇴근하면서도 코로나로 어수선한 직장 일에 마음이 어려운 딸애를 보며 안쓰러워하고, 장래를 위해 요양사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를 시작하는 아내의 노고를 지켜보며…. 주어진 모든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저들에게 주의 은혜와 감격이 더해지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시 75:1).” 곧 우리로 말씀 위에 서게 하심이다.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2-3).” 그러할 때 우리는 든든하고 두렵지 않은 것은 우리의 대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소유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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