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6 주일
시편 29편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들어가는 말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5-6).” 욥은 세 친구와 논쟁에서 자신의 믿음을 붙들었다. 저는 눈으로도 범죄 하지 않았고,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31:1).” 그릇된 길로 가지 않았고,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7).” 일찍부터 선을 행하였으며,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18).” 그리고 물질에 욕심을 낸 적이 없다고 한다.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24).” 이를 보면 마치 자기 의를 드러내는 말들 같다.
그런데 바울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한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3-4).” 하지만 이는 철저한 자기 성찰에서 오는 신앙고백이다. 먼저 욥은 말하길,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욥 9:20).” 왜?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13:28).” 하고 절규하였다. 바울도 스스로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이처럼 죄책에 눌려 죄과를 짊어지면, 다윗과 같이 비명을 지르게 돼 있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시 51:8).” 뼈가 꺾이는 것 같이 괴롭다. 아,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 어찌 이러고 살까?
사탄은 날마다 우리를 정죄한다. 저의 무기는 율법이다. 양심이 우리를 찌른다. 우리의 ‘그슬린 나무’ 같은 쓸모없음을 들추어서 하나님 앞에 세운다. 그렇듯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슥 3:3).” 하나님은 그러나 여호수아를 책망하시지 않고 사탄을 책망하셨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2).” 의인 욥은 이를 알고 있었다. 바울도 이를 알고 더는 자신의 허물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고 진술하였다. 베드로 역시도 자신을 소개할 때,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었다고 하면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 1:1).” 하고 운을 뗐다. 이처럼 감히 우리가 의인인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이기 때문이다(롬 3:24).
오늘 시편 29편의 말씀은 그런 우리로 의롭다 하시는 이의, <그 이름, 그분의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곧 그 이름은 찬양받으실 이름이고, 영광과 경배의 이름이다. 그분의 소리는 존귀와 권능의 소리이며 우리를 두렵고 떨리게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힘과 평안을 더한다.
1. 그 이름(1-2)
- 찬양을 받으실 이름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1).”
찬양은 감사다. 우리 일상의 언어다. 저는 우리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 이에 가장 기이한 일은 우리가 믿는 것이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 이처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35).” 어떻게?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18).” 곧 저는 우리의 전능자, 창조주가 되신다. 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입만 열면 흥얼거린다. 온통 우리의 집중은 주께 가 있다. 이것이 찬송이다. 아픈 데 자꾸 손이 가고, 귀한 데 자꾸 눈이 가는 것처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법이다.
- 영광을 받으실 이름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2).”
예배는 일상이고, 각자의 삶이다. 대면예배니, 비대면예배니, 온라인예배니, 무슨 예배니 하는 형식과 절차는 모두 예배의 일부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이는 모든 생물의 목적이고 의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이것이 오늘 우리가 주께로 영광을 돌리는 이유다. 이를 위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움과 송구함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죄인임에도 우리는 의인답게 담대히 주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고후 3:12).” 곧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7:1).” 이 의는 우리의 의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의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 3:12).” 매순간 여전히 더럽고 추한 죄의 옷을 입고도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2. 그분의 소리(3-9)
-권능의 소리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3-4).”
어지러운 사회에서 이와 같은 주의 권능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자는 복이 있다. 철썩이는 물소리에 다들 정신이 팔렸으나, 그래서 아무리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이는 우리의 영광과 찬송이 되시는 주의 소리가 이 모든 소리를 압도하신다.
- 두려운 소리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5-6).”
그분의 소리는 먼저 두려운 소리다. 우리는 두렵고 떨린다. 이는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사 51:12).” 곧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마치 엄마의 음성에 아이가 안도하며 울며 뛰어가듯,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이는 어떠하든지 주는 나의 구주시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옵 1:4).”
-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소리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7-9).”
때론 주의 소리가 불길을 가르고 적막한 광야를 가득 채우신다. 우리는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사 48:18-19).” 그러나 우리는 온갖 물소리, ‘다른 복음’의 소리에 솔깃하여 주의 소리를 자주 잃는다. 오늘 날 이 사회가 이처럼 어지러운 까닭은 교회가 들어야 할 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갈 1:6).”
3. 존귀와 권능의 주(10-11)
- 통치의 주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10).”
물 위에 하나님의 소리가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성경의 진리의 소리다. 곧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하는 소리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는가? 이 소리는 통치자의 소리다!
- 백성에게 힘과 평강의 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11).”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하든지 우리를 안전히 지키신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3).” 저는 이미 세상을 이기신 승리의 주이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저가 우리를 통치하신다. 저는 우리의 힘과 평강이시다. 이를 듣고 안다면, 다른 소리는 들릴 리 없다.
나오는 말
고통이 닥치면 우리는 누구나 보응으로 우선 받아들인다. 보응이란 나중에라도 죗값을 물리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고통이 오는 줄로 안다. 여기서 자책이 일고, 죄의식은 양심을 찌른다. 때로는 자식을 훈계하는 아버지처럼,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시 89:32).” 우리를 꾸짖으시고 야단치시느라 고통이 올 때도 있다. 심지어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우리로 세상과 함께 멸망을 당하게 할 수 없어 먼저 징계하시기도 한다. 이는 근신과 같은 것이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잠 3:21).” 그래서 지혜자는 우리더러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 왜?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3).” 진중한 삶을 요구하신다.
또는 자업자득으로 자기기만과 경거망동을 당하는 고난도 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가 그렇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이는 자기 부주의나 자기 잘못으로 오는 고난이다. 그렇다 해도 이는 결코 보응의 의미가 아니다. 보응은 믿는 자에게 타당하지 않다. 이미 우리의 모든 죗값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갚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죄는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여전히 죄 때문에 죄책감에 짓눌려 숨을 헐떡거린다면 저는 예수의 보증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오늘 우리의 권능은 그 이름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1).” 아멘.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30:11-12 / 기도와 감사 (0) | 2020.09.25 |
---|---|
시편 30편 /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0) | 2020.09.11 |
시편 28편 / 영원한 인도하심: 감사 (0) | 2020.08.28 |
시편 27:4-7 /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일 (0) | 2020.08.21 |
시편 26편 /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0) | 2020.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