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3 주일
시편 27:4-7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일
들어가는 말
말세의 징조다. ‘난리와 난리, 소문과 소문’이 끝이 없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주목해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4-5).” 오늘 날에도 보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거짓 목사와 별의 별 주장들이 난무하다. 이처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곧 일련의 현상은 괜한 게 아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7-8).” 더는 우방이 없다. 자국주의만 존재한다. 나라와 나라 간에 정쟁은 가열되고,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고 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전 세계를 뒤덮었는데도 다들 그런가보다 한다. 모든 정책은 진영논리로 빨려들고 민생은 정쟁화 되고, 당리당략에 끌려 다닌다.
거짓 목사와 저를 따르는 광신도들이 득세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는다. 수천 년 전 예레미야 시대에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하였고, 예레미야는 잡히고 우물에 던져졌다. 저의 돕던 바룩이 있었다. 저가 전하는 말씀을 기록하였고(렘 36:1-5), 이를 가져가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6-8). 여호야김은 말씀의 경고를 듣고,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기도 하였다(9-10). 그러나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두루마리 성경을 가져다 찢고 불태웠다. 바룩은 체포하였다(20-26). 이때 하나님이 바룩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5:5).
오늘 우리의 상황은 성경에 예언되었다.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다!” 그러니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주께서 하실 일이다.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즉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5).”
본문 이해
1. 나의 빛 나의 구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1).”
오늘 시편의 말씀은 우리의 푯대다. C. S. 루이스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사탄의 입을 빌어 한 말이다. ‘믿는 사람들의 믿음에 너무 주눅 들지 마라. 다만 저들의 신앙을 정치에 이용해라. 그리고 사회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강조해라. 그럼 자기들끼리 구원자를 세우고, 저들의 믿음은 금세 신념화된다.’ 오늘 우리 사회를 빗대어 한 말 같다. 혼재된 믿음과 신념 가운데 오늘 시편의 첫 구절은 우리에게 신앙의 구심점을 분명히 한다. ‘나의 빛, 나의 구원’은 저는 ‘오직 여호와, 저는 내 생명의 능력.’ 설령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 그렇다 해도 주가 막으신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3).” 곧 우리의 평안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 ‘내 생명의 능력 여호와’시다.
일찍이 욥은 고백하였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우리의 길은 사막과 같다. 사막은 길이 없으나 길이 없음으로 길은 하나다. 하나님으로만 충만한 길, 척박한 현실에서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62:2).” 하는 고백이 우리의 것이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6).” 이와 같은 믿음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주장에도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오직 나의 빛, 나의 구원자’만을 바라며 묵묵히 나아간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렘 45:5).” 주가 이루신다!
2.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일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4).”
저마다에게는 ‘행복추구권’이 있다. 누구는 이를 위해 인권을 운운하고, 누구는 물질을 의지하며, 누구는 권력을 가지고 또는 고상하게 보편적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은 저의 노년에 소회를 밝혔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그렇듯 인생의 헛됨이 신앙이 좋고 나쁘고에 따라 다른가? 오늘 시편은 ‘우리의 한 가지 소원’을 강조한다. 곧 ‘주의 집에 살면서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며 주님과의 교제를 사모하는 그것.’ 왜냐? 우리의 본향은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5).” 왜 그러실까? 이 땅에서 잘 살아남으라고 그러시는 것일까?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6).” 우리를 이와 같은 헛됨을 통해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다. 사막 같은 척박한 현실에서 ‘즐거운 제사’를 배운다. 이는 영원한 우리의 터전에서 우리가 누려야 할 노래다. 비록 오늘의 삶에서,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그저 별 볼 일 없고 구차한 것 같으나 우리는 주를 바란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시 27:7).” 주께서 긍휼히 여기심이라.
모든 인생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너머에서 모두는 주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82:1).” 그 어떤 불공평도 용납되지 않는다.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2).” 그래서 믿는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도 다윗도 바울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은 일갈하신다. 우리의 그 어떤 선행으로도 그 심판을 견딜 수 없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하지만 우리에게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저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죄인의 몸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러므로 혹시 ‘누가’ 즉 우리 믿음는 사람들이 다시 죄를 범하여도 저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신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3.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8).”
왜 우리가 주의 얼굴을 찾는지, 이제는 확실해졌다. 가장 큰 비극은 주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다. 오늘 시편은,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9).” 이는 엄청난 두려움이다. 왜 우리가 죄를 멀리할까? 자신의 죄악 됨을 몸부림칠까?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1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포기하실 수 없다. 버리실 리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히 12:28).” 결국 이 땅은 전부가 아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이는 엄연한 말씀이다.
4.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11).”
우리의 원수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고소한다. 우리의 죄악 됨이 ‘그슬린 나무’와 같아서 아주 추하고 쓸모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슥 3:2-3).” 곧 “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4-5).” 이 아름다운 옷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다. 그러므로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시 27:12).” 하는 오늘 시인의 고백은, 우리 안의 자책과 죄의식,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물리치게 한다. 그리하여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13).” 우리는 믿음의 조상과 아브라함과 다윗과 바울과 함께 나란히 저 ‘산 자들의 땅에’ 설 것이다. 이는 진리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14).” 이처럼 우리의 기다림은 그 어떤 인내와 수고보다 강하다. 주가 선물로 주신 믿음이기 때문이다.
나오는 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보증하신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그러므로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정죄하고 참소하여, 부끄러움과 수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해도, 우리의 대언자, 중보자, 보증인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 곁에서 주의 심판대에 서신다. 저는 모든 율법의 만족이 되셨고, 완성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사탄은 항상 율법을 들먹이며 아무리 정죄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오늘 우리의 곤고한 삶도 그래서 가치 있고 소중하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0-32).” 곧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단지 현실에 안주하고 자포자기하듯 살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는 대언자 되시는 예수께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이를 바로 붙들고 오늘 우리 앞에 국난을 올바르게 극복하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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